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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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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3일 09시 45분 등록

사부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편지

9기 유형선

 

형선아

맨 처음 너를 보았던 때가 기억난다. 2010년 가을이었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그 낡은 94년식 프라이드 베타를 타고 오면서도 당당함이 묻어 있는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네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구나. 그때 지나온 인생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더군. 내가 중간에 그만! 너무 길어라고 했었지. 그렇게 말리지 않았으면 정말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할 모양새더라. 지치고 힘든 내면을 꽁꽁 싸매어 두었다가 둑이 터진 듯 이야기를 하려 하더라.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참 가관이더군. 신부가 되겠다고 집을 도망쳐 나왔다고? 그리고 철학과를 선택했어? 그리고는 학생운동을 했는데 그것도 종교써클에서? 보험을 팔았다고? 그리고는 영업교육 트레이너를 했어? 지금은 전략부에 들어가 있고. 작년에는 144일 동안 파업도 했어? , .

 

무엇보다 너의 모습과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쩜 그리 문제를 피해 갈 줄 모르고 정면으로 부딪치려 하는지 놀랐어. ‘자유라는 가치가 내면의 제 1 가치라고 찾아내는 모습에 사실 놀랐었단다.

 

일단 네가 보여준 모습에서 너의 강점을 보면 무엇보다도 너는 말을 하는데 힘이 있어. 남들은 갖지 못한 너만의 특징이지. 남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주저함이 없어. 그 힘을 잘 살려야 해. 그러나 그 반면 워낙 자신이 믿는 바가 옳다고 믿는 성향이 강해서 때로 그 열정이 다른 열정과 부딪칠 때 힘들어하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이제는 그 장점을 잘 살려서 어떻게 남은 또 하나의 인생을 살 수 있을지 잘 키워보자.

 

너의 지원서를 보면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책을 쓰되 자녀에게 보여줄 책을 써보겠다는 점이었어. 흔히 사람들은 글과 삶이 일치하지 않지. 글과 삶이 일치하기 어려운 점이야. 그런데 아예 첫 독자로 자녀를 선정했다는 말은 그만큼 진실되게 글을 써보겠다는 의지로 보였어.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학생 운동하면서 사람에게 마음상처 받았던 것이 아직도 가슴속에 있구나. 진로에 대해 집안과 겪었던 문제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늘 아파하고. 그러나 사람에게 상처받는 이유는 결국 자기 문제라는 점을 요즘 서서히 깨닫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구나.

 

우선 네 내면의 상처부터 치료해보자. 아무리 책을 읽어도 아무리 사람과 어울려도 상처를 상처로 대하지 않으면 결코 아물지 않는 게 상처란다. 한 곁 걷어내고 내면을 보았더니 온통 상처투성이로구나. 피고름이 나는 걸 도대체 어찌 감추고만 살았나? 그걸 이렇게 꽁꽁 끌어안고만 살았으니 몸도 마음도 아플 수 밖에. 쯧쯧. 아주 미련 곰퉁이 같으니라고.  

 

이제 그 상처를 싸매 두었던 낡은 거죽을 걷어내고 칼로 피딱지 살을 도려내고 피고름을 짜내는 작업을 시작해 보자. 약을 발라주고 깨끗한 붕대로 다시 싸매어 주었으니, 지금이야 좀 아프더라도 꾸준히 약 발라주고 새 붕대로 교체해주면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새 살이 돋아 날게야. 그러나 상처는 아물겠지만 흉터는 남는단다. 그 흉터가 주는 교훈을 늘 새겨야 해. 이제는 남이 너에게 주는 상처를 비껴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할 때야. 이전에는 온 몸으로 화살과 검날을 맞아가며 싸워야 하는 순교자나 검투사의 삶을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새로운 기술을 연마해 보자.

 

남이 던지는 칼날을 몸으로 막지 말고 피해. 너는 피하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익혀야 해. 그리고 거기서 그쳐서도 안돼. 던지는 칼날을 피하는 보법을 연마하면서 보다 상대에 가까이 다가가 상대를 끌어 앉는 방법을 배워야 해. 태극권이라고 할까? 뭐라고 이름 붙이는 건 네 자유야. 결국 너는 너만의 방법을 터득하게 될 거다.

 

내 책을 읽으며 말도 참 잘 하더라. ‘혁명은 곧 독재이며, 독재를 할 수 있는 대상은 세상에 자기 자신 밖에 없고, 그러므로 혁명은 곧 자기 자신을 향해야 한다!’ 그럴 듯해 보이는데,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 자기 자신에게도 독재를 해서는 안돼. 너의 내면을 힘으로 제압하려 하지마. 물 흐르듯, 바람이 흐르듯 풀어주고 잘 관찰해. 그 물줄기 혹은 바람을 따라가봐.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바람은 압력이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더냐! 억압하는 곳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야. 끌어올리려 하지 말고 풀어주는 곳으로 흐르도록 해. 그리고 가장 낮은 곳이면서 동시에 가장 풀린 곳으로 가서 너의 내면을 맞이해 줘. 그리고는 올라타는 거야. 힘으로 끌고 가려 하지 말고 서서히 다가가 올라타는 거야. 이것을 자꾸 연습하면 되는 거야. 그걸 수련이라고 하지.

 

쉽지 않아.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거야. 그러니 매일 연습하는 거지. 다행히도 아내와 자녀를 매일 같이 마주대하며 사랑하면서 사랑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 잘하고 있어. 아내와 자녀를 사랑해 주듯 자기 자신을 사랑해 주는 거야. 물 흐르듯, 바람 흐르듯.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누르고 죄이는 곳에서 풀어주고 놓아주는 곳으로. 그리고는 올라타는 거야. 거기까지 매일 꾸준히 연습하면 한 삼 년 걸려. 그러면 그 다음 어디로 가야 하는 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야. 두려워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마.

 

9기 동기들 보니 한 명 한 명 모두 너의 모습 같아 보이지 않아? 내가 그렇게 뽑았어. 너 뿐 만이 아니라 다른 동기들도 모두 너의 모습에서 자기자신 모습 보는 것 같다고 하게 될 거야.

 

네 필명을 못 정해 주어서 미안한 마음이 좀 있어. 그런데 좀 더 네 모습을 지켜보자꾸나. 네 내면의 모습을 좀 더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필명도 정해 질 것 같아. 나보다 네가 더 먼저 깨닫게 될 것 같기도 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

 

그래, 이제 시작이구나. 꼬옥 끌어안아 주마.

 

추신. 책 쓰는 거 잊지 않고 있지? 책 쓰는 거야! 약속 한 거야!

 

스승이 제자에게

IP *.6.5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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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6 17:19:35 *.20.202.74

유 형, 이 글 읽고 많이 기쁘고 떨렸을 테지요?

이 글 올리면서 눈시울 뜨거웠겠군요.

이 글 읽으며 내가 지금 그렇네요.

 

마지막 말씀 저렇게 선명하게 주셨으니 그보다 큰 가르침과 방향 없음을 잊지 않으시리라 믿고, 응원합니다.

 

여우숲에서

백오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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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1 19:07:26 *.62.164.48
감사합니다. 응원이 참으로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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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2 07:23:36 *.152.83.4

"끌어올리려 하지말고 풀어주는 곳으로 흐르도록 해"

 

왜 우리가 같은 과(?)인지 알 것 같네요.

그대와 백오 그리고 나.

우린 같은 과 맞아. 백오를 처음 만났을 때 한눈에 알아봤었거든.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

 

한 10년 지금 마음처럼 살아가십시다.

그리고 어느 날 노인네 만나면 이렇게 살았노라고 말하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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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6 06:51:15 *.65.153.156
자로형님~ 술 한잔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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