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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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남에 삽니다.” 이
발언은 사람간의 관계. 특히 첫 모임에서 마법과 같은 힘을 준다. 사람들은
갑자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더 따뜻한 표정을 지어준다. 특정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그를 완전히 다르게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가 깔끔하다면 그의 패션감각을
칭찬하고, 그가 후질근하다면 그의 소박함을 칭찬한다.
“저는 의사에요.” 이
발언 역시 좌중을 앞도하는 힘이 있다. 잠깐의 정적 혹은 환호성을 이끌어 낸다. 특히 들어가기 힘든 직장, 소득이 높은 직장일 수록 반응이 좋다. 사람들의 호감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반응이 즉각적인 곳은 맞선
시장이다. 하지만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어른들의
모임. 자기만의 고정관념에 빠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례 짐작하는 것이다. 직업이, 그들의 연봉이 곧 그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걸까? 왜 우리는 직업이나 사는 지역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걸까? 실상 그가 재산이 많은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 방법도 없으면서, 단지 직업이 좋다거나 부자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호감을 보내는 것일까?
알랭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이러한 시대흐름을 속물적인 사회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외적인 것들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을
‘속물(snoberry)’로 규정하고 있다. 맞다. 속물이다. 세상에
찌들고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들. 사람간의 관계어서도 무엇이 이득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힘이 있고, 돈이 있을 것 같은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 속물적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발버둥을 친다. 대학을
가기 위해 고시촌에서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부터, 목숨을 걸고 턱을 깍는 여자들까지 우리는 속물적인 무기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뻐지지 않으면, 좋은 대학을 가지지
않으면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봐 걱정을 한다. 그들에게 내면의 아름다움은 사치다. 그건 다음 문제다. 속물적인 기준을 넘고 나서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현대를 사는 우리는 힘을 원한다. 내면의 힘이 아닌, 남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힘. 불빛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속물들은 그 힘을 보고 달라 붙는다. 좋은 직장, 값싼 지역의 아파트, 혹은 직장에서의 높은 지위를 통해 우리는 속물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 별것 아닌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내
의견에 조금 더 지지를 보내준다.
사마천 사기의 맹상군 열전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재상이던
맹상군은 평소 빈객을 잘 보살펴 주었다. 하지만 초나라의 비방으로 제나라 제상에서 쫗겨나자 빈객들은
뒤도 보지 않고 맹상군 곁을 떠났다. 그리고 맹상군이 다시 재상이 되었을 때 염치없게 그의 곁으로 돌아온다. 화가 난 맹상군에게 풍환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낫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맹상군은 풍환의 가르침에 깨달음을 얻고 다시 빈객을 맞았지만, 난
이들 빈객들에게서 속물의 냄새가 느껴진다. 힘들었을 때 옆에 있어주지 않고, 지쳤을 때 어깨를 빌려주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맹상군이라는 사람은
재상이라는 그가 가진 권력, 그의 재산이 전부였다. 그가
가난해지고 지위가 낮아지면 또 떠날 사람들인 것이다. 맹상군은 이제 제상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그에게 제상이라는 직업은 단순히 직업이 아니다. 수많은
속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큰 무기였다.
이천년 전의 맹상군의 일화,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속물적인 사회 분위기. 돈과 명예를 가지지 않으면 사람이 떠난다는 사실. 작은 차를 타면
무시당하고, 이쁘고 날씬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들까지. 이처럼
속물적인 세상, 내적인 가치보다 외적인 것들만 보려는 사람들. 이
정글같은 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은 예술이다. 자기안의 예술성을 갖는 것이다. 누군가 내 직업을, 혹은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비웃는다면 ‘두고봐, 당신보다 더 잘될꺼야.’ 라고
생각하지 않고, ‘머 그러라구, 난 그림이나 그리고 책이나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그런 여유와 넉넉함. 그리고 누군가 외적인 것으로 날 무시하고 날 슬프게 한다면, 고통받고
자존감을 잃어가는 대신 내안의 예술성을 통해 표현하고 극복해 나가는 것. 그것이 해답이 될 것이다.
또한 속물적이지 않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과 어울리는 것도 방법이다. 항상
내편이 되어주었던 엄마처럼 내가 가진 외적인 것들로 판단하지 않고 내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 그들과
어울리는 것 역시 좋은 해결책이다. 그리고 변경영이 그런 곳이 됐으면 한다. 예술에 관심을 가진 속물적이지 않는 사람들의 집단. 직업이나 학벌, 기타 외적인 것들보다 그 내면을 바라보고 이해해줄 수 있는 모임.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면 이 속물적인 세상을 버티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속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쉽지
않은 숙제다. 정말이다. 속물이 되지 않기. 그게 속물적인 세상을 버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S그룹에 다닙니다... 도 꽤 반향을 불러 일으킬 껄요? ㅋ
농담이구요.
준영씨의 주된 관심사여서 그런지 글 한 편이 말끔하게 빠져 나왔네요.
물론 변경 사람들이 대표주자지만
한 발만 나가봐도 요즘은 속물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힘 받기 좋던데요?
나도 안 읽었지만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책도 제목만으로도 암시가 강하고,
김희경의 '내 인생이다'에는, 준영씨가 생각하기에는 노땅으로 보일 사람들도 과격한 전환에 성공하고 있고,
'밥장' 같은 사람 한 사람의 경로만 연구해봐도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다 나온다우.
문제는 선택이겠지요.^^
나도 보통이 아저씨 책 읽고 내가 왜 불안했나 하는 또 하나의 측면을 깨닫게 되었지. 알랭 드 보통 책 중에 '불안'이 가장 좋았어.
'불안'과 같은 글쓰기, 매력적이고....
내 주변에는 속물이 많다. 작은 속물 위에 조금 더 큰 속물있고 그 속물 위에 더 큰 속물있고... 나 역시 속물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속물 절대 안 하고 안 될 거야 소리 치며 밤마다 내면에 울타리를 치고 치를 떨기도 했지만, 내 몸에 속물 물이 들까봐
주변 속물(?)에 과민반응 보기기도 했지.
좌우사방이 속물이니 속물들과 범벅되다보면 내가 속물인지 그들이 속물인지....-.-!
그런데
누가 속물일까?
어느 수준 부터 속물일까?
이른바 진짜 '속물'들은 절대 자신이 속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속물' 근성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속물'은 상대적인 것 같아.
누구에게는 누가 더 속물처럼 보이고 속물처럼 보이는 누구는 또 더 속물보다는 덜 속물이고.
상급수, 하급수 물의 청정도 처럼.
이런 속물에 대한 고민& 분노를 한 때 엄청 하다가...
요즘은 속물 고민에 대한 마음을 한 거풀 거뒀다.
그리고 이른바 속물은, 속물 심리는 뭘까 관찰 중이다.
그냥 바라보는 중.....
준영아
내가 쓴 말이 말이 되는 지 모르겠다.
"좀 다같이 돕고 아름답게 평화롭게 살면 안되냐요?"하고 막 고함치며 외치고 싶지만
그렇게 해 봐도 세상이 끄떡도 안 하고...
나만 나가 떨어지거나 미친 년 처럼 보여서
언제부턴가 전술을 바꾸었다....
내가 스스로 영향력 있는 상급수 되어
속물 아닌, 예술적이며 함께 나누는 삶을 보여야겠는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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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이래 속물들은 늘 존재한다.
이 속물들의 수를 잘 읽고 지혜롭고 강한 멘탈로 살아야
속물의 수에 휩쓸리지 않을 듯......-.-
준영아
함께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