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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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3. 역사 --- "역사의 현장, 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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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역사 속 한 장면 - 일본군 위안부, 자발이냐 꾀임에 의한 동원이냐?
3-2. 어떻게 쓸 것인가 – 역사기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먹먹함
3-3. 창조적 거장 따라잡기- 내 안에 창조성 있다
3-4. 영감을 주는 역사서- 삼국유사에 빨대 꽂다
3-5. 만나러가야 할 길 – 나를 붙잡아 끄는 역사 속 사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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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룡사 뜨락에서
일연스님, 스님께서는 제게 딱 걸리셨사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저는 스님을 만나려 다시 이곳에 왔습니다.
황룡사 이곳 뜨락에서 스님을 뵙게 되오리라 여겨졌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돼 있음’을 느낍니다.
밝음을 보고(見明), 밝음이 있으면 반드시 어두움이 덮쳐 올라오며(회연), 곧이어 밝음과 어두움은 하나로 연결돼(日然) 있다고 스님께서는 당신이 가졌던 3가지 이름으로 제게 깨달음을 주시지 않으셨사옵니까?
저는 보랏빛 영감(靈感)을 얻습니다.
스님이 전하는 ‘삼국유사(三國遺史)’를 따라 들어가면, 보라색 비 내리는 안개 자욱한 숲에 이릅니다. 저는 보랏빛 비를 맞으며 700년 전의 당신을 만나서 1000년 전, 신라 땅으로 빙그르 함께 빨려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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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금은 벌판이 된 황룡사 절터에 서면 온 몸에 전율이 돋는다.
내 눈 앞에는 벌판의 황량함은 사라지고 ‘불도국’ 신라가 주춧돌을 놓고 대들보를 세우며 분주하게 세워진다. 불도국에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신라 땅 경주는 하나의 사찰이었다. 깨닫고자 하는 자들의 땅이었다. 이런 상상은 나를 흥분시킨다. 내가 경상도 부산에서 태어나 가장 처음으로 경험한 외지 땅이 바로 경주이기에.... 불국사의 ‘불국’이란 말이 주는 어감은 마치 천주교도들이 교황이 계시는 바티칸에서 느끼는 느낌과 비슷할 듯하다.
초등 4학년 즈음 눈 비리는 아주 추운 겨울..,
불심 강한 연로한 할머니를 모시고 9명이나 되는 우리 가족 대식구는 처음으로 온 가족 여행을 경주로 떠났다. 연년생으로 생산(?)된 5명의 여 자매들은 모두 똑같이 치마로 된 보랏빛 새 잠옷을 하나씩 입게 되었다. 내 생의 첫 잠옷 있었다. 그리고 ‘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불국사 닮은 큰 여관에서 내 생애 첫 외박을 하였다. 여관의 중앙 로비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따라 바닥에는 레드 카펫이 쫘악 깔려있었다. 방방마다 목욕탕이 있고 수도를 틀면 뜨거운 온천물이 펄펄 나왔다. 따뜻했다. 밥도 여관 안에서 다 해결되었다. 한 상 가득 차려 나비넥타이 맨 남자 종업원 두 명이 무려 9명의 식사를 한꺼번에 방으로 날라주는 광경은 어린 내 눈에는 감동 그 자체였다.
부산에 살며 눈 구경 제대로 못한 나로서는, 하얀 눈 덮여 있는 경주 땅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거기다가 알아서 다해주는 으리으리한 여관 로비를 예쁜 보랏빛 잠옷을 입고 종업원들의 눈인사를 받으며 저벅저벅 걸어 다니는 나는, ‘김춘추’스러운 영민함과 패기를 지닌 신라 땅의 진골쯤은 된 듯 뿌듯했다.
석굴암 불상을 보기 위해 올랐던 좁고 기나길었던 눈 덮인 오솔길, 첨성대에 달빛이 내릴 때 경주 월성 돌담길을 걸었다. 그곳에서 만난, 반은 사람이고 반은 귀신인 ‘도화녀와 신라 진지왕의 아들’ 비형랑. 산인지 무덤인지 신기하기만 했던 몽긋몽긋 솟은 오릉들. 신라 땅 경주는 내 어린 시절의 ‘역사적 상상력을 모조리 잡아먹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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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고등 시절의 여행, 대학 시절의 경주답사, 그리고 그 이후로도 수없이 경주를 방문하여 어른이 되었다. 나는 상상력 가득한 ‘아이들의 성장 환타지’ 이야기를 쓸 참이었다. 도대체 경주가, 그곳의 역사 유적들이 나랑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나는 왜 계속 그곳에 끌려서 가게 되는가?
경주는 ‘샘’이다.
안개 가득한 자우림(紫雨林)의 보랏빛 빗물이 고여 드는 샘이다.
일연은 자신이 쓴 역사서 <삼국유사>에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떠 온 ‘영감(靈感) 가득한 샘물’을 흠뻑 젖혀놓았다. 알 듯 모를 듯 끌렸던 신라 땅, 경주! 나는 그의 책 <삼국유사>에 빨대를 꽂아 보랏빛 영감 가득한 샘물을 온 몸으로 빨아들인다.
나는 왜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보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마음이 끌렸을까?
모든 동인(動因)은 내 안에 있다. 나는 나만의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며 해석하고 내 안의 퍼즐 조각을 맞추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내가 그러함을 자각하든 못하든 간에.
나는 세상과 역사와 그것들을 기록한 책 속 이야기와 연결돼 있다. 나는 <삼국유사>가 주는 영감을 마시며 과거 그들의 이야기들을 현재의 이야기로, 나의 이야기로 재탄생시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연속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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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문무왕, 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를 비추고 있는 김유신, 신령스런 소리로 나라의 혼란을 풀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만파식적. <삼국유사>에는 고장난명(孤掌難鳴), 세상 사람을 지켜주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세상의 무언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 사람을 살게 한다. 사마천의 <사기>가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개탄과 한이 서려있는 역사서라면 일연의 <삼국유사>는 세상의 밝음과 어둠 모두를 하나로 연결한 일연(日然)의 깨달음이 녹아난 역사서다. 그래서 그 필체는 담담하다. 깨달음을 얻었기에 일연은 비극적 이야기의 고통도 신비롭고 세련되게 풀어간다. 나는 그의 필체에서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일연은 인간의 삶이 아름답게 승화되는 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하나로 연결됨’에 대한 깨달음이다.
앞으로, <삼국유사>가 나의 이야기에 어떻게 범벅되어 묻어날까?
지금 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2013년 7월 22일 서은경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