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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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남 1녀의 첫 째로 자라났다.
어렸을 적부터 눈이 크고 겁이 많았던 아이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발표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이었다. 아는 것이 있어도 발표를 시킬까봐 벌벌 떨며 손을 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아이였다. 그의 집은 지그마한 2층 집이었는데 2층에서 혼자 자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아이의 엄마는 안방을 그의 방으로 내주어야만 했다.
초등학교의 첫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 잘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후반기의 성적은 아이의 엄마의 기대만큼이었다. 학급 상위의 성적이었으며, 전국 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아오기에 이르렀다. 물론 12시까지 이르는 피나는 특훈의 결과이긴 했지만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는 학급의 1등을 도맡아서 해오기에 이르렀다. 작고 왜소한 몸이었지만 체육도 잘하는 편이었고, 수학은 감히 따라올 자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아토피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는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그건 그에게 장애가 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전학을 갔지만 거기서도 그는 여전히 학급의 1등 전교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결국 그 지역에서 내노라하는 아이들이 모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연히 순위가 밀릴 것으로 예상했던 그의 엄마는 첫 시험부터 그렇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학급의 아이들은 바뀌었지만 그의 등수는 바뀌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학급의 1등이었다.
당연히 순탄할 것이라고 생각되던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그건 바로 대학이었다. 그는 첫 대학 시험에서 쓴 잔을 마셔야만 했다. 상위 2.2%의 수능점수로 평소보다 떨어진 성적을 받았던 그는 한의대 2곳과 의대 2곳을 지원했지만 보기좋게 떨어졌다. 그에게 재수의 나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학원의 기대주가 되었고 학원비를 내지 않고 장학금만으로 학원을 다녔다. 이듬해 그는 평소때보다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았지만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그는 괜찮은 성적을 이어갔으며, 이제는 제법 활발해진 생활을 이어갔다. 그 지역에 선후배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생회장을 하게 되었으며, 졸업과 동시에 본대 인턴의 자리를 배정받았다.
자연히 되지 않을까 했던 레지던트의 자리는 그 해 갑자기 떨어진 낙하산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지만 대신에 용인의 정신병원에 레지던트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레지던트로 있던 동안 그는 5년 간 만남을 이어온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한지 1년 만에 자신의 계획대로 아이를 가졌다. 내년 2월이면 그는 짱이의 아빠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나의 오빠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활달했고, 말을 잘했다. 발표는 나의 차지였고, 아빠 회사의 모임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던 것도 나였다. 나는 2층의 내 방에서 혼자 잠도 잘 잤으며, 반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반장 정도는 잘 해 왔다. 나는 많은 것들을 그를 따라 했는데 이에 대해서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그가 한글 공부를 시작했을 때에는 거꾸라도 책을 들고 읽는 시늉을 하다가 한글을 배워버렸고, 그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도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보다 글도 빨리 읽기 시작했고 피아노 실력은 그다지 차이가 없었으며, 교내 산수경시부 선발 시험은 나도 통과를 했다.
중학교 때 첫 시험에서부터 나는 무언가 다름을 느꼈다. 다를 것이 없는 데 나의 성적은 그만큼 되지 못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성적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600명 중 19등이라는 당당한 등수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뿌듯하게 내밀 수 있는 내 성적표가 나오던 날 오빠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등수는 나보다 높았다. 그 날 아빠는 나의 성적에 기분이 좋다며 저녁외식을 나섰다. 하지만 나의 기분은 처음 성적표를 들고오던 그때의 기분이 아니었다.
점점 나는 따라잡을 수 없는 그를 인정해야만 했다. 어떻게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가 보였다. 아무리 칭찬을 해주어도 나는 나의 성적표의 숫자와 그의 성적표의 숫자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칭찬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방학때마다 나의 선생을 도맡아서 해주었는데 차라리 나는 다른 과외선생과 함께 하기를 다른 학원을 다니기를 희망했다.
나는 그가 수능을 보던 해에 처음으로 그의 수능 점수를 알았는데, 그때 나는 그를 따라잡을 수 없음을 인정했다. 나는 이 길로는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꾸준히 계속되는 그의 승승장구를 나는 다른 돌파구로 모면하려 했다. 그와 다른 길에서 나는 그보다 뛰어남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건 중학교때부터 이어져 온 나의 발버둥이었다.
성인이 되고난 이후부터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이제는 그와 성적을 비교하지 않았다. 다른 방면에서 그는 나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다. 나는 그보다 게임을 잘했고, 영화나 만화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으며, 만나는 사람이 많았다. 연애도 그보다 많이 했으며, 언제 어디서건 나는 나를 잘 꾸밀 줄 알았다. 그런 나에 비해 그는 공부외에는 전무했다. 게임도 나보다 못했으며 여전히 학교생활밖에 몰랐다. 옷발은 그런대로 괜찮았더라도 센스는 형편없었으며, 세상엔 그가 모르는 것이 많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 대한 끝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나보다 말도 못하고 심부름도 제대로 못하고 혼자 자지도 못하는 그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열등감을 안겨 주었음을. 누군가 비교하지 않더라도 내가 내 스스로 그와 나를 비교했으며 나의 성적에 대해 만족감을 가지지 못했으며 아무리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에게 절망해야 했음을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차라리 나보다 더 낮은 아이들이라 느껴지는 곳에서 안주하고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꼈음을. 그것을 느낌과 동시에 우리 가정은 더 이상 나에게 편안한 자리가 아닌 것이 되었음을. 그보다 나은 나를 발견해내기 위해서 나는 부단히도 노력해야만 했다.
내가 연구원 레이스를 하고 있던 당시에 그는 군대에 갔다. 그는 각 가족에게 편지를 남기고 떠났는데 나에게 남긴 편지에 내가 부러웠노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어디에서건 활달하게 말을 잘 하고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펼치던 내가 부러웠노라고. 자신은 작은 체구와 아토피 때문에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웠다고 그래서 공부를 했다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보는 그는 완벽했다. 더할 나위없이 완벽했다. 학생 때는 학생의 역할에 충실했으며 대학에 가서는 활달하게 회장과 대의원을 해오던 아이였다. 언제나 부러움에 대상이었고 같은 환경 아래서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내가 부러웠노라고 말을 한다. 자신은 그런 미스토리를 쓰지 못했을 것이라며 지금도 나의 연구원 생활을 뭔지 잘은 모르지만 대단하다고 인정해 주고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나는 그와의 비교에 열중해서 나에게 열등감을 선물했는데 그는 그런 내가 부러웠다고 말을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나는 그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싶었는데. 나도 그런 멋진 자리에 있고 싶었는데. 그는 내가 부러웠단다. 그에 비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보이는 내가 말이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닮고 싶은 자를 따라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각광받는 방법이다. 기업들도 본 받고 싶은 기업이 있으면 주저없이 따라한다. 그래서 우리는 롤 모델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정하고 그들을 무작정 따라해보기도 한다. 전에 만난 어떤 이는 너무나 닮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의 걸음걸이를 따라하고 그와 같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기도 했단다. 이 방법은 많은 이들에게 검증받은 방법임이 분명한데 왜 나의 경우에는 이토록 허무하고도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일까. 그래 나는 인정한다. 오랜 시간 그처럼 되고 싶었던 내가 있었음을. 그리고 그를 따라해 본적도 많이 있었음을.
나는 먼저 내가 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먼저 존재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내가 없는 채로 막연히 그의 행동을 흉내내고 있었을 뿐이다. 이는 롤모델을 따라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연히 나는 그보다 조금 나아 보이는 내 모습에 우쭐하고 그보다 못해 보이는 내 모습에 심히 비관적이 되었다. 처음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나는 마치 내가 그인양 그렇게 생각하고 그에 미치지 못한 내 자신을 인정해주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항상 나를 몰아세웠다. 더 이상 갈곳이 없게 만들기라도 할 것 처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난다. 너무 유명한 책이니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었던 짧은 이야기를 옮겨본다.
어린시절부터 나는 나 자신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난 빌리 위들던처럼 되길 원했다. 하지만 빌리 위들던은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걸음걸이를 흉내냈고, 그의 말투를 모방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가 응시한 고등학교에 따라서 응시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빌리 위들던은 변했다. 그는 허비 반데먼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는 허비 반데먼처럼 걸었고, 허비 반데먼처럼 말했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난 허비 반데먼처럼 걷고 말하는 빌리 위들던처럼 걷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는데, 허비 반데먼은 조이 하벨린처럼 걷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이 하벨린은 코키 새빈슨처럼 걷고 말하고 있었다.
그 결과 나는 코키 새빈슨처럼 걷고 말하는 조이 하벨린을 모방하는 허비 반데먼의 복사판인 빌리 위들던처럼 걷
고 말하게 되었다.
그런데 코키 새비슨은 또 누구의 걸음걸이와 말투를 항상 모방했는지 아는가?
바로 도비 웰링턴이었다.
어딜 가든지 내 결음걸이와 말투를 모방하려고 애쓰는 그 머저리같은 녀석
도비 웰링턴 말이다!
작자미상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중 너 ‘자신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