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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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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3일 22시 27분 등록
어느 날, 회사의 팀장 한 분이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평소 친했던 사이인지라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내용은 이랬다.
모든 직원과 팀들이 회사를 위해 단합하며, 회사의 공유 비전을 향해 한마음으로 나아가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팀간(혹은 개인간) 충돌이 있을 때에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될 터인데, 도무지 개인이든 팀이든 양보는커녕 이기적인 주장만 한다는 것이다. 팀장님은 “모두들 나 같이 생각하면 좋을텐데..”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달래셨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여,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날이 온다면 팀장님의 고민은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나 같은 순진한 이상주의자들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그 날’이 오늘 아니면, 내일은 이뤄질 것이라고 자위하며 그 날을 갈망한다. 아무런 방법론을 갖지 못한 채로 말이다. 이들은 『뛰어난 직원은 분명 따로 있다』의 저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제대로 교육만 받으면, 개인의 이기심보다 집단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태도를 가진 채,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의 문제점은 그 날의 도래가 과연 언제냐는 것이다.

이기주의가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네이버 국어사전)라고 한다면, 실제로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기주의를 인정하기는 무척이나 꺼림칙한 일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하지만, ‘자기기만’이 인간의 본성이라 할 만큼 인간의 뚜렷한 특징이라면(『대담』 p.297), 우리 모두의 자칭 ‘개인주의’를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정말 개인주의인지, 허울만 좋은 이기주의는 아닌지 말이다.
자기기만이 도덕적 타락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렸다는 도정일 교수의 주장은 우리를 좀 더 편안하게 만든다. 자기기만이 ‘인간의 본질’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질은 ‘그것’을 더욱 ‘그것답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자기기만이라는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나 기독교 유신론적으로나 타당한 주장 같다. 기독교 유신론은 인간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할만한 힘이 없다고 말한다. 기독교 내에서 인간은 자정 능력이 없다.
생물학적 입장은 도정일 교수님의 말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생물학은 백 번 죽어도 ‘이기적 유전자’론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게 생물학이 보는 진화의 동력이니까요.”(『대담』p.515)

물론, 사람들이 교육을 받으며 성숙해질 수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을 통한 성장 역시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즈음에서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은, 교육을 통해 성숙해지는 것이 유전자 속에 깊이 박힌(혹은 하나님을 멀리하려는 죄의 경향성을 가진) 이기주의를 소멸케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숙이 이기주의를 초월하느냐, 대체(代替)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지금 나의 지성으로는 ‘초월’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긴 하지만, 확신의 단계까진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초월이든 대체든, 이기주의를 정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현실적인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뛰어난 직원은 분명 따로 있다』의 저자의 말을 다시 인용해 본다. 그는 “제대로 교육만 받으면, 개인의 이기심보다 집단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주장을 진실로 내세운다.
“인간의 이기심은 몇 백만 년의 진화과정에서 본능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어줍잖은 교육이 이를 바꿀 수는 없다. 좋은 집단이란 개인의 건전한 이기심을 인정하고, 개인과 조직의 이익이 만나는 접점을 합리적으로 찾아내는 곳이다.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막연히 인간의 이기심에서 찾는 사람들은 일종의 위선자들이다.”
나는 이것을 대체(大體)적으로 받아들인다. ‘대체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건전한 이기심’이라든가, ‘진화과정’이라는 설명에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주장은 나의 이상주의에 현실주의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라 믿기에 동의하는 것이다.

팀장들은 팀원들이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한다고 한탄하고, 사업 본부장들은 팀장들이 자기 팀의 이익만을 생각한다고 안타까워한다. CEO는 사업본부장들이 다른 사업부에 대한 배려없이 각자의 주장만 내세운다고 답답해한다. 이들은 모두 범위가 다를 뿐, 다들 ‘이기주의’라는 공통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나라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기업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CEO라고 해서 ‘이기주의’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막연히 인간의 이기심에서 찾는 사람들은 일종의 위선자들”이라는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도덕심 차원에서만 찾는다면 분명 미흡한 사고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나는 인간이 생물학에서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타적 사회를 꿈꾼다. 오늘 이 암울한 글을 쓴 목적도 이타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은 분명 암울한 것 같다. 하지만, 불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할 단계가 있기 마련이다.
도정일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유전자의 이기주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비이기적이고 이타적인 사회를 만들까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기초 과정은 인간이 이기적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 문제의 원인이 인간의 이기적인 태도 때문만은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것을 이해한 후라면, 이제 이타적인 사회로 가는 방법론을 고민해보자. 체 게바라의 말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우리 모두 이기적 인간을 인정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사랑과 정의의 물결이 바다처럼 넘실대는 사회를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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