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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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성폭력, 가정폭력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다. 생존자 단어가 귀에 꽂힌다. 아이들이 그린 크레파스 그림을 싸들고 간석동 인천메트로 골목의 인천사회복지협의회 건물 6층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갔었다. 엘리베이터 옆에 장애인성폭력 생존자 이야기 마당 포스터가 붙어 있다. 요즘 어떻게 해서 ’성폭력 생존자‘라는 말이 나오나 모르겠다. 이게 트렌드인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게 치유가 된다는 걸까? 일다에서 요즘 재미 들리고 있는 것은 이혼으로 1살 반 된 딸과 헤어졌다가 20여년 못 만난 분이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는 글과 장애인 여성과 남성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꼭지다.
일다에서 이번에 읽은 건 좀 조마조마하다. 가정폭력의 가해자를 아빠라는 이름과 분리해서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엄마는 피칠갑을 하며 맞고 살았고, 신고를 받은 경찰은 ‘남의 집안일에 웬 참견이냐’는 말에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기어이 그녀가 가해자를 고소해서 재판에서 이겼는데도 내내 욕을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가정이 깨어지고 난 뒤에 그 가해자가 새로 만난 여자에게는 전혀 폭력을 쓰지 않고 지내고 있다는 데까지가 이번 주 연재분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이걸 계속 읽어 말어? 그런데 왜 그런 폭력이 새 여자와의 일상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글쓴이는 폭력은 권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지하철 노약자 장애인 칸에 뒤틀린 몸으로 전동휠체어를 가지고 어렵사리 탔을 때 자신의 전신을 스캔하는 할아버지들의 느끼한 시선, 그리고 쫒아 와서 자기와 어떻게 안되겠느냐고, 이래 뵈도 장애 있는 당신한테 이러는 건 내 눈을 상당히 낮춘 거라는 투의 그 졸림에 대해 남의 일인 듯 장애 가진 여성 본인이 하는 말을 읽는다. 아무래도 시설에 살던 이들이 1급 복지카드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지원되는 활동보조인을 활용하여, 장애 없는 사람들처럼 단독 가구로 주택가에 살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인 듯 하다. 탈시설화? 아직 전모를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 나는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일한다. 여기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이 있다. 그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세대 독립을 해서 시설로 갔을까? 그렇게 갔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인가로 돌아오는 얘기겠거니.
<일다>는 거기 가서 만화 좀 보라고 해서 알게된 매체다. 추천받은 만화 <권경희 임동순의 전원일기>는 다른 이름으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콩두씨 너무 혼자임에 얽매이지 말아요, 나는 함께지만 혼자이고 싶은 사람이예요. 혼자이든 둘이서든 씩씩하게 자기 길을 가면서 잘 사는 이들이 많이 있어요. 여자 둘이서 귀농을 했더라구요.’라고 말해주었다. 여기를 소개한 이는 블로그에서 만난 이웃이다. 한 번도 이 분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라는 정도만 짐작한다. 생면부지의 그분이 독립한 나에게 한 살림 보내주셨다. 택배박스를 열었을 때 깜짝 놀랐다. 아직 건지지 않은 매실이 담긴 락앤락 통과, 나무젓가락, 가위와 과도 세트, 커피 컵과 유리잔, 유리 차주전자, 수저 세트, 작은 핸드크림, 행주 몇 장과 상하지 않도록 매실청을 저을 나무 수저, 매실청을 어떻게 보관하고 거를 지에 대한 상세한 메모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녀는 수녀님 이름 비스무리한 이름을 하나 갖고 싶다는 나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다음번에는 책을 한 보따리 보냈다. 카톨릭 성인전 2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 전기, 이태석 신부님과 일본 수녀님의 수상록이 들어 있었다. 이 책들 중 절반은 읽지 못했다. 그 일본 수녀님의 책은 손바닥에 들어오는 거여서 읽었다. 그녀는 9살 때인가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가해자들은 폭도로 분류되어 모두 처형당했다. 그런데 그녀는 수녀가 된 뒤에 그 가해자들의 제삿날에 참여를 했고, 접수를 보는 이는 그 때 처형된 이 중 한 명의 부인 뱃속에 들어있던 유복자였다. 오늘 아침에 그녀가 보내준 매실청 통에다 깻잎순 장아찌를 담았다. 진간장, 식초, 설탕, 물을 계량해 부르르 끓여서 뜨거울 때 부었다. 어제 버스정류장 앞에서 어떤 할머니가 팔던 이천 원 어치였다. 할머니는 내게 달게 생긴 햇양파를 담아주며 “못생겼지요?”라며 미안해했다. 그 웃음이 어쩐 일인지 내내 기억에 남는다.
우리 할머니는 행상을 했다. 봄에는 딸기를, 가을, 겨울에는 사과를 팔았다. 나는 할머니가 좀 골골한 사과를 담아오던 커다란 밤색 인조 가죽가방을 기억한다. 그 가방을 머리에 이고 오셨다. 빨간 것도 있고 노란 것도 있었다. 노란 사과는 좀 퍽퍽했다. 과일을 팔아서 아들 여덟 살 때부터 상고를 졸업시켰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서른여덟인 그녀보다 그는 열세 살이 많았으니 이미 오십 줄이었고, 1년 있다가 태어난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니 그는 육십이 넘고, 그녀는 사십대 중반이었겠다. 그러니 공사판에서 그가 일을 구하기는 어려웠겠지. 손수 지어 주었다는 할머니가 자랑하던 그 집, 시원한 변소에 앉아서 그가 그녀를 위해 심어준 목단, 황매화, 목련, 철마다 꽃을 볼 수 있었던 그 길가 집 가까이에 딸기밭과 사과밭이 있었다. 그래서 과일행상을 할 수 있었다는 걸 나는 어른이 되어 그 집에 가보고야 알았다. 할머니는 내가 간다고 하면 애국수를 삶아 채반에 건져놓고, 옥수수를 2통 삶아놓고, 비벼주려고 이웃이 가져다준 상추를 쫑쫑 채썰어놓고, 안 기다린 척 했다. 할머니와 나는 작은 꼬뿌잔에다 밥숟갈로 커피와 설탕 프림을 퍽퍽 퍼 넣고 남은 못 마실, 혀에 쩍쩍 들러붙는 노인 커피를 깔깔거리며 마셨다. 할머니는 아이가 하나 더 들어섰는데 못 먹여살릴까봐 지웠지, 근데 그냥 낳았어도 내가 다 키워냈을 거라고 껄껄 웃었다. 사람은 나이들 수록 솔직하고 단순해지는 것 같다. 어떤 사람에 대해 내가 고민을 할 때 내 말을 듣던 이가 물끄러미 물었다. “콩두씨가 할머니가 되면 이걸 무엇으로 회상할 것 같아요?” 나는 영화 타이타닉의 로즈 할머니가 아니라 우리 할머니 생각을 했다. 씽크대 아래 칸 문을 열면 참기름병과 미원 봉다리 옆에 할머니가 가끔 마신다는 소주병이 있고 병 위에 소줏잔이 엎어져 씌워져 있다. 너도 한 잔 주랴 물었을 때 나는 괜찮다고 했었다.
이번 주에 데카메론을 읽었다. 데카메론의 절반은 음담패설이었다. 절구공이와 양념절구, 수도사의 악마를 처치하기 위해 지옥을 빌려주는 농부 딸, 그리고 애인과 자다 현장에서 딱 걸린 수녀를 호통치고 있는 수녀원장 머리에 얹혀 건들거리는 사내의 빤스 끈다리 얘기. 재미있었다. 나는 이 유명한 두꺼운 책의 절반이 야설이어서 깜짝 놀랬다. 통쾌했다. 이 사실을 전파하기 위해 몇 가지 야한 얘기를 열심히 외웠다. 몇 개는 복사를 떠서 읽어줄까 생각중이다. 그런데 그 책의 앞에는 페스트로 속수무책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던 때의 이야기가 몇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씌어져 있었다. 보카치오가 이탈리아 피렌체시에서 10만 이상이 죽어나가던 이 돌림병을 목격한 건 서른 다섯 살, 1348년이었다. 흑사병 초기에는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사과나 달걀만한 가래톳이 생기고, 나중에는 납빛의 반점이 온몸에 돋아난다. 사람과 동물에게 마른 풀에 불이 옮겨붙듯 전염되었다. 묘지가 부족해 성당마다 커다란 구덩이를 파놓고 배에 짐을 싣듯이 시체를 포개 쌓았다. 가족, 이웃에게 외면당했다. 페스트를 피해서 언덕 위 별장으로 피난한 10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한 100개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 데카메론이다. 10명 멤버는 페스트가 창궐하는 와중에 성당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채 만났다. 보카치오는 마흔살에 데카메론을 완성했다.
엘리자베쓰 퀴블로 로스씨의 어떤 책에서 (아마도 <인생수업> 아니면 <상실수업>이었으리라) 읽은 적이 있다. 자식과 부모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섹스를 요구하는 배우자, 애인, 자신을 이해, 용서하지 못하겠더라고. 이 죽음의 여의사는 말했다. 죽음과 상실의 느낌이 너무 강해서 사실은 그 반대의 살아있음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하는 상실의 표현이라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위로가 되는 것,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 음담패설이든, 사랑 얘기든, 이상향에 대한 것이든, 소주 한 잔이든, 무한도전이든, 꽃 한 송이든, 금방 한 따끈한 밥 한 그릇이든, 유행가든, 연속극이든 뭔 상관있으랴? 생명, 살아있음, 그리고 위로를 주는 것이면 되지 않겠나?
관주날, 술 마시느라 늦는 아버지를 데려 오라는 엄마 심부름을 갔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엄마는 쪼무래기들에게 과자만 쥐어줄 뿐 쉬 남편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매달 우리를 올려보냈다. 광산 일을 끝내고 다이알 비누로 씻고 나와 구매소에서 닭을 삶고 동태탕을 끓여놓고 막걸리를 마시며 월급날을 자축하던, 꼬마인 내 눈에 거인이었던 여러 아버지들의 앞뒤 안 맞는 큰소리와 땡고함으로 불러대는 ‘저 푸른 초원 위에도’ 그런 것이었나? 하늘을 두 개 쓰고 사는 남자에게 도시락을 싸들려 보내 놓고 집에 남은 내 어머니는 무엇을 하면서 견디었던가? 외지에서 광산 사택에 살러 들어와서, 사고로 남편을 잃어버리고, 그 동네에 남기로 한 여자들은 새끼들을 데리고 또 어떻게 견디었나? 내 직장의 남자동료들이 쉬는 시간마다 주차장에 모여 피는 담배연기도 그런 위로를 주는 것인가? 내게도 이런 것이 있나? 나도 생존자라고 느낄 때가 있었나? 있다. 나도. 일 년에 한 번 강남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대기석에 앉아서 기다릴 때다. 내 옆에는 무섭고 무거운 이름의 병명을 가진 이들과 보호자가 앉아 서로 이전부터 깊이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진심어린 안부를 묻는다. 어떤 이는 마스크를 쓰고, 머리가 맨들맨들하다. 그이들이 진짜 생존자고 나는 그들의 병에 나의 상황을 비추어 위로받는 배역쯤 되겠다.
퀴블러 로스 책은 정신과 교수님이 너무 강조하셔서 저도 읽어봤었어요. 그녀는 죽을 때 "이제 별나라로 떠납니다."라고 말했다더군요. 그 정신과 교수님은 이 말을 참 좋아하셨죠.
영화 제목은 기억이 안나는데, 산장에 갖힌 애인들이 그 곳에서 시체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옴짝달짝 못하는 공간에서 섹스를 하죠. 줄거리만 따다 붙여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었습니다만, 퀴블러 로스가 든 예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멋없이 이야기 하자면, 남산의 소나무들은 환경오염으로 죽을 때가 되면 솔방울을 많이 만들죠.
저에게도 살아있다는 느낌 때문에 황홀한 순간이 있었을까요?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하자고 생각해두곤 잊어버렸습니다. 살아서 즐거운 게 뭘까요? 버킷 리스트도 미션 클리어 해야 할 과업이라면 삶이 너무 버거운 것 같아요.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후회없는 삶인지?
살아 있음을 느끼는 때는 바로 우리의 요즘이 아닐까요? 아주 뽈딱 잘 일어나게 되요. '오늘도 살았구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