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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5일 02시 44분 등록

 

뭐야? 하나도 안 빠졌잖아?”

아이를 낳고 나서 조금의 기력을 회복하자마자 병원에 있는 체중계에 올라갔습니다. 몸무게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죠?

 

아이를 낳으면 7kg은 줄어든다고 했던 녀석이 거짓말쟁이였던 모양입니다. 예전보다 15kg 가까이 늘어난 몸무게가 당황스럽습니다. 아이는 2.5kg로 작았고, 양수도 겨우 정상을 유지하는 수준이라 했지만 이렇게 변화가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 너무 잘 먹어댔던 걸까요? 입덧에 4시간 마다 밥을 먹어 주었고, 입덧이 끝난 후에도 나는 2인분 이니까.’ 라는 마음에 또 잘 먹긴 했지요.

 

더디지만 빠지긴 하더군요. 너무 커서 입지 못하던 옷이 겨우 맞기 시작할 때 쯤, 내가 가진 대부분의 옷들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팔은 지나치게 꼭 맞아 움직이기 힘들고 단추는 잠기지 않았지요. 거리에 날씬한 것들은 왜 그리 많은 걸까요? 단벌신사가 된 나는 화려한 그들이 부럽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자제하며 먹는 건데. 나는 무슨 근거로 아이만 낳으면 쑥 빠질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배는 들어갈 수 있겠지만 팔이나 다리의 살이 빠질 리는 없는데 말이예요. 배가 부른 후에는 뒤뚱거리며 조금 걷는 것이 운동의 전부였는데 평소보다 배는 먹어댔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지요.

 

살이 찌고 옷이 들어가지 않으며 나는 자신감을 상실했습니다. “난 이런 것도 잘 어울리지 않니?” 라고 물었던 여자애는 맞는 게 뭐지?” 라며 옷장을 뒤졌고, 들어가지 않는 옷에 한 숨 쉬었습니다. 헐렁한 티셔츠에 고무줄 반바지를 입고 들어가지 않는 옷들을 바라봅니다. 나의 부피는 커졌지만, 나는 작아졌습니다.

 

살이 빠지면 자신감은 저절로 생기는 걸까요? 이 생각은 아주 위험합니다. 살이 빠진다면 자신감이 회복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감을 잃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요. 자신감이 이렇게 조건에 따라 생기거나 사라진다면 세상에는 정확한 선이 있어야 할 거예요. “너 까지는 자신감을 가져도 좋아. 아니, 너는 안돼. 자신감을 가질 조건이 아니란다.” 이런 식으로 말이예요.

 

제법 통통한 나의 친구는 이제 뺄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이게 얼마나 비싼 살인지 아니? 밤마다 치맥(치킨과 맥주)로 다져진 고급 살이다.” 그녀의 당당함이 부럽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심리학자 프랑크 나우만은 <호감의 법칙>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코는 약간 올리고, 눈의 지평선 위 먼곳을 바라보고. 어깨는 편안하게 뒤로 젖혀 졌는가? 그렇다면 이제 뻣뻣하지 않게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면서 이 자세를 유지한다. 새로 걷기 시작한 자세 때문에 당신의 자신감도 커지는 것이 느껴지는가? 승자의 기분을 만끽하라. 세상은 당신 것이다.“

 

당당하게 걸어봅니다. 평소때는 잘 쓰지 않았던 근육들의 긴장이 느껴집니다. 허벅지의 안 쪽의 근육이랄지, 등의 근육이랄지 하는 것들 말이지요. 발걸음이 경쾌해지고 나를 둘러싼 공기가 가볍게 느껴집니다. 쉭쉭 지나가는 풍경들이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이 방법은 시작하는 것이 쉽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물을 마시러 가는 길부터 시작할 수 있지요. 오늘 아침 출근길부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부터.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습니다. 따로 시간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준비물도 없습니다. 운동화를 신었든 구두를 신었든 새로운 자세로 걷기 시작하면 됩니다. 걷고 있다가 난 어떻게 걷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자세를 고칠 수 있습니다. 매일 운동을 하고 그렇게 커지는 자신감을 느끼면 됩니다.

 

하루 중에 걷는 시간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많습니다. 큰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더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덩치가 커진 주차장은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늘리게 마련이지요. 지하철의 환승 역시 눈 깜짝할 거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최근 개통된 신분당선으로 환승하려면 한 구간은 걷는 듯 합니다) 자가용이 보편화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걸어야 할 거리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건물 내부에서 차를 타고 이동할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더군다나 관심사로 가득 채워진 공간의 쇼핑이란 몇 시간이고 가능합니다. 이 시간 동안만 운동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당당하게 걷기 운동을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 갔던 해외여행에서 나를 놀래킨 것은 금발의 파란눈을 한 어머님이었습니다. 거구를 자랑하는 어머님께서는 비키니를 입고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언젠가 적합한 몸이 만들어지면 한번쯤은의 목표인 비키니를 나의 기준으로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몸의 어머님께서 이미입고 있었지요. 그녀를 바라보다 부끄러워졌습니다. 비키니를 입기에 적합한 몸이 어디 있겠어요. 나는 그저 입을 자신이 없었던 것 뿐이지요.

 

몸무게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찌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지요. 변동하는 몸무게가 우리의 자신감의 크기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몸무게가 자신감의 크기를 결정한다면 우리는 매일 아침 몸무게를 달아보며 어제보다 200g 쯤 자신감의 크기가 늘었군.” 이렇게 말해야 겠지요. 하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의 과식으로 500g 쯤 늘어나도 어제와 같은, 어쩌면 그보다 큰 자신감을 말할 수 있어요. 몸무게가 나의 자신감의 한 부분을 구성할 수는 있겠지만 전부가 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당하지 않으면 살이 빠져도 충분치 않습니다.

 

나의 몸무게는 예전을 회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장염에 걸려 이틀 쯤 물만 마시자 회복이 되었지만 또 찌고 빠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2~3kg 가량 늘어있습니다. 작심하여 빼지 않는 이상 빠지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난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잘 먹고 뒹굴며 티비도 봅니다. 2~3kg 늘어난 몸무게가 나의 자신감을 2~3kg 줄어들게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여전히 비키니는 입어보지 못했지만 올 여름에는 적합한 몸이 아니라도 입어볼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당당하게 걸어야겠군요.

 

배우들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걷는 길. 레드카펫. 어디서든 우리만의 레드 카펫을 깔 수 있습니다. 집 앞의 마트에 두부를 사러 나가는 길에도 옆집에 놀러가는 길에도. 걷기 전 잠시 멈추고 머릿속으로 그려보세요. 돌돌말린 빨간 양탄자를 발끝으로 톡 건드리면 데굴데굴 굴러 내가 걸어야 할 길에 깔립니다. 우리는 가장 당당하고 멋지게 걷기만 하면 됩니다. 거기가 바로 나의 레드카펫이자, 런웨이입니다. 어떻게든 걸어야 하는 순간 대충 걸을 것인가 새로 배운 걸음걸이로 걸을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금 런웨이의 모델처럼, 레드카펫 위의 영화배우처럼 걸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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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09:34:07 *.252.144.139

루미야, 이 글은 자칫하면 너에게 백만 안티팬을 선물할지도 모르겠다.

애기 엄마가 여성복 44사이즈를 입으면서 살쪘다고 푸념하면 어쩌니?

나는 처녀적 44였다가 큰 애 낳고 55, 둘째 낳고 66을 입는다. ㅜㅜ

 

나도 이제 살을 빼야겠다는 강박은 버리기로 했다.

목표는 건강하고 활기찬 삶이지 모델 몸매는 아니니까.

그래도 너무 방심하면 안되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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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7 10:59:43 *.78.83.25

백만 안티라... 이건 정말 무서운 일인데요~ ㅋㅋㅋㅋ

이건 아이를 낳자마자의 순간이니...

한 달만에 학교를 복귀하며 예쁜 언니들을 보고 느꼈던 순간인데....

개인사정을 조금 더 추가하면 구체적이니 상황으로 보일 수 있겠군요..ㅋㅋㅋ

나도 깡마른 몸보다는 탄력넘치는 건강한 몸을 원하지만..

운동은 얼마나 하기가 힘든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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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11:20:52 *.161.240.251

'날씬한 것들' 에서 빵 터지고,

당당하게 걷는 것으로 루미식 처방을 내리는 모습에 끄덕거린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맨발로 걷는 모습을 보고

가장 아름다운 걸음 걸이였다고 감탄하는 이를 본 적이 있어.

거리낌 없이, 세상에 위축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그들을 빛나게 해주었던 거겠지.

 

우리도 그 걸음걸이로 빌딩 숲 한 복판을 걸어 다니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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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7 11:01:19 *.78.83.25

당당함. 자기가 느끼면 다른 이의 시선은 별로 상관없는 듯 해요.

깊이는 떨어지지만 "뭐 어때?" 라는 내 모습과는 겹쳐지는 글이 된 듯 해요.

오빠다움으로, 나다움으로. 그렇게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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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12:15:07 *.38.222.35

ㅋㅋㅋ.. 나도 얼마 전에 몸과 관련된 글을 쓰다가 지금 미완성 상태인데..

쓰다보니 글이 산으로 바다로 목적없이 흐르고 있더란 말이지. 그래서 잠시 보류..

 

다시 써야겠다. 레드카펫. 나도 가끔 지난번 북페어 때 언니가 했던 당당한 워킹 처방 이후에

가끔 어깨를 쭉 펴고 시선을 약간 위로 두고 걸어다니는데, 기분이 꽤 좋아지더군.

 

아주 좋은 처방인 것 같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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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7 11:03:48 *.78.83.25

상쾌해지는 느낌이 있다니까.

발랄하고 경쾌하게. 명랑하게 말이얌.

아무것도 아닌데 그저 걷는 법만 바뀐건데 그렇게 되는 거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걸음는 사랑스럽고

전장에 나가는 걸음은 비장한 것을 봤을 때

나의 심경을 드러내는 걸음걸이라고 보는 거지.

그럼... 걸음걸이를 바꾸면 심경 또한 변화하지 않을까? 하는

뭐... 이런 것에서 출발한... ㅋㅋㅋ

좋은 처방이라는 말이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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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18:31:32 *.114.49.161

댓글 죽 읽다가 저는 루미선배님의 안티팬이 되기로 했습니다.

아니 44사이즈라니...아아아 ^^ 애기엄마도 아닌데 66인 사람은 어쩌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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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7 11:05:03 *.78.83.25

앗... 안티팬은 아니아니 아니되오... ㅋㅋㅋㅋㅋㅋ

전 원래 뼈가 가느다란 사람이랍니다. 살이 쪄도 잘 드러나지 않죠.

그냥... 마른 초등생정도로 생각하시면 되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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