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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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어머니의 기억
“엄마..엄마...”
“그래..그래..”
엄마는 칭얼대는 아이를 꼭 안더니 토닥, 토닥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 옆의 병상에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자고 있다. 통증으로 보채는 아이를 달래다 같이 잠이 들어버린 것 같았다. 작은 침대에 기진맥진해서 지쳐있는 아이와, 같이 누운 엄마의 얼굴에는, 삶의 피곤함과 아이에 대한 연민이 함께 깃들어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원목실 수녀님들이 솜사탕을 만들어 선물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솜사탕을 받은 어른들이 더 좋아라 웃는다. 병원에서는 소아과 병동이 가장 살아있다. 아이들은 아파도 그 자체로 주위를 빛내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고, 젊은 엄마들이 간호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병동보다는 시끄럽고 활기차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점차 활기가 떨어져간다. 젋은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기가 점차 힘들다. 병실에는 맞벌이를 해야 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혼의 증가로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도 요즘의 새로운 트렌드다.
아픈 자녀를 둔 부모의 모습을 접할 때마다, 나는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와 그녀의 부모님을 떠올린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장영희 교수는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영문학자이며, 소녀같은 단발머리와 미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글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수필가였다. 그녀는 8년 동안 세 번의 암 진단을 받았다. 2001년 유방암이 발견되어 치료하였으나 척추로 전이됐고, 다시 간으로 전이되어 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삶이 담긴 글을 통해 희망과 감동을 증거했다. 그녀의 글은 그녀의 삶이었다.
세 번째로 암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좌절했다.
“그때 무척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신에게 내가 불운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내 자유의지와 노력만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오로지 건강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우월감을 느낄 사람들이 미웠고, 무엇보다 내가 동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존심 상했다.”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그녀를 버티게 한 건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읽은 헨리 제임스의 ‘미국인’이라는 책에는, 한 남자의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을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
그녀는 글을 통해, 장애인으로서 겪은 체험을 절절하면서도 재치있게 표현하며 오히려 비장애인을 위로했다. 절망에 빠졌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글에 환호했다. 그 어떤 사람보다 장애가 없는 여인이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녀는 암 환자와 장애우들의 희망이었다. 소아마비 장애와 암에 맞선 그녀의 삶 자체가 기적이었지만, 기적 같은 삶을 살다 간 장영희 교수를 있게 한 장본인은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그녀의 책 [내 생애 단한번] 에는, 그녀가 열 살 때 썼던 ‘엄마의 눈물’ 이라는 일기내용이 적혀 있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가 연탄재 부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살짝 문을 열고 보니 밤새 눈이 왔고 엄마가 연탄재를 바께쓰에 담고 계셨다. 학교 갈 때 엄마가 학교까지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면서 깔아 놓은 연탄재 때문에 흰 눈 위에 갈색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위로 걸으니 별로 미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올 때는 내리막길인데다 눈이 얼어붙는 바람에 너무 미끄러워 엄마가 나를 업고 와야 했다. 내가 너무 무거웠는지 집에 닿았을 때 엄마는 숨을 헐떡거리고 이마에는 땀이 송송 나 있었다. 추운 겨울에 땀 흘리는 사람! - 바로 우리 엄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엄마의 이마에 흐르는 그 땀이 눈물같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나를 업고 오면서 너무 힘들어서 우셨을까, 아니면 또 ‘나 죽으면 넌 어떡하니?’ 생각하시면서 우셨을까. 엄마 20년만 기다려요. 소아마비는 누워 떡 먹기로 고치는 훌륭한 의사 되어 내가 엄마 업어줄께요..
엄마의 땀을 눈물이라고 여기는 열 살짜리 소녀의 문학적 감성과, 소아마비를 누워 떡 먹기로 고치겠다는 소녀의 야무진 꿈이 현실적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사회적 분류에서‘1급 장애인’이었고 평생 목발에 의지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학교를 간다는 것은 일종의 전쟁이었다. 장 교수의 어머니는 두 다리와 오른팔이 마비 된 둘째 딸을 초등학교 3학년까지 업어서 등하교를 시켰다. 화장실에 데려가기 위해 두 시간에 한 번씩 학교에 와야 했고, 보조기 걸음을 놀려대는 아이들과도 대신 싸워야 했다.
진눈깨비 내리는 날이면 딸을 학교에 못 데려다 주게 될까 봐 새벽에 일어나 연탄재를 부숴서 집 앞 골목길에 뿌려놓았다. 비가 오면 한 손으로 딸을 받쳐 업고 다른 한손으로 우산을 든 채, 딸의 길과 방패가 되는 어머니의 하루하루는 슬프고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걸핏하면 수술을 하고 두세 달씩 입원해야 했던 병원생활, 장애를 이유로 시험보는 것조차 거부했던 학교들을 찾아가 시험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렸다. 그것은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번역문학의 거두였던 아버지 장왕록 교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렵사리 중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그야말로 산 넘어 산,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대학들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내가 입학시험 치르는 것을 거절했다. 마침내 아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을 찾아갔고, 미국인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시고 “무슨 그런 질문이 있는가.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는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라고 반문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고두고 그때 일을 말씀하셨다. “마치 내가 말도 안 되는 것을 물어본 바보처럼 말이야. 그렇지만 그렇게 행복한 바보가 어디 있겠냐”고….
콧날이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흘렀다. 소아마비로 불편한 딸을 둔 아버지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얻었을 위로와, 기쁨의 크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 탓이었다.
투병생활의 어려움을 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척추에 방사선을 쏘이면 식도가 탑니다.
물 한 방울만 먹어도 마치 칼을 삼키는 듯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목을 나긋나긋하게 돌리며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일,
온 몸의 뼈가 울리는 지독한 통증 없이 재채기 한 번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고 믿었다. 만일, 그녀에게 문학이 없었다면, 투병생활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위대한 개츠비처럼, 아무리 미미해도 삶 속의 희망을 감지하고, 삶의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본인의 일어섬을 통해, 문학의 힘이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2년 전 5월 9일,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해 주고, 하느님 곁으로 떠난 문학소녀! 그녀의 57년 삶은 그녀의 다짐처럼 크고 당당했다. 문학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하는 그녀의 책을 읽으면, 희망을 갖지 않고 사는 것이 죄악으로 느껴진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우리가 위로받지 못할 때,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위로의 손을 내밀어 준다.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난 여전히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새 봄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다. 자신을 넘어뜨린 신을 원망하면서도, 신은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믿어야 하는 어려움! 남들이 천형(天刑)이라 말하는 장애를 천혜(天惠)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외로움이 왜 없었을까? 그것을 견디고 그녀가 기적같은 삶을 살아온 것은,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어머니는 장애를 지닌 딸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흘리신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어머니의 기억은 '세상의 슬픔은 눈물로 정복될 수 없다'는 가르침이었고, 자신에게 절망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해 준 커다란 끈이었다.
장영희 교수가 병상에게 마지막으로 쓴 엄마에게 남긴 4 문장의 편지.......
“엄마, 미안해 이렇게 먼저 떠나게 되어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엄마 딸이라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타계하기 직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말도 “엄마”였다.
열이 펄펄 나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고, 눈물로 한숨을 짓는 세상의 어머니들!
정상적이지 못한 아이를 업고, 타인의 눈총에 아랑곳없이 병원층계를 오르내리는 어머니들!
의사와 병원이 자식을 단념해도, 좌절과 포기라는 말이 옹색해져 버리는,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맹목적인 믿음 앞에서,
희망과 사랑이 기적처럼 펼쳐지기를....
[p.s]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문장을,
그녀의 책에서 만나고 만든 노래.
[중간에 가사를 잊어먹고 조금 틀리고...]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ukIpMaRhv8I$

잃어 버릴뻔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글이다.
마음이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네...(알고 있었지만^*^ ㅎㅎㅎ)
노래는 역시 너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잊고 있었던 옛날의 모습들이 보였다.
(지금은 아저씨의 모습이지만....)
다시 돌아보는 시간들은 늘 감동이 되는 구나.
어머니의 사랑, 젊은 시절의 열정과 사랑, 그리고 추억들...
그럼에도 이제는 서로가 다른길에서 각자의 삶에 충실하고 있음에 감사를,,
그리고 너의 노래를 통해 어머니늘 만날 수있음에 감사를...^*^
힘차게 새로운 날을 살아가자.
어머니가 있어서 다시 설 수있음에 감사를 드리며 어머니에게 웃음을 드릴 수있는 자녀들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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