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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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에서 정인이 “장롱 속에서 면허증을 꺼냈듯이 이젠 하나씩 꺼낼 거야. 내 꿈도, 일도.” 라 말하며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눈이 아려왔다.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그녀가 너무도 예뻐 보였다. 입에 불평불만을 달고 살았던 정인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정인은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외로움 속에 자기를 돌보지 못해 잊고 살았던 자기를 발견하면서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녀는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것을 다시 찾은 것뿐이다.
‘난 너무 부족한 게 많다고...’
남들과 비교했을 때 온통 모자란 것뿐인 내가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내가 미워졌다. 왜 이것밖에 안 되냐고, 도대체 넌 잘하는 게 뭐가 있냐고 스스로에게 마치 남인 듯 따지기도 했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이러니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와는 너무 거리가 먼 얘기였다. 온통 못난 것 투성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가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안고 살게 만들었다. 도움이 되진 못하니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어깨에 늘 걸쳐 있었다.
몇 년 전 머리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을 나오면서 제일 먼저 전화를 한 곳은 부모님도 친구도 아닌 다음날 자원봉사를 가기로 한 센터였다. 못 가게 되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그곳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내 지나친 책임감으로 인한 행동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못 되니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자동적으로 그 곳에 전화를 먼저 하게 만들었다. 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서도 그랬다. 병실에 앉아 나는 수술하게 되었다며 친구들에게 연락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맡고 있는 일을 수습하기 위한 전화만 했다. 당시 직장인도 아니었던 내게 꼭 해야만 하는 일이란 사실 없었다. 머리를 열어야 하는 큰 수술을 앞두고도 나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문병 온 사람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어 보였고 수술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불안감은 느끼려 하지도 않았다. 내 감정에 지나치게 무뎠다. 병원에서 어떤 불안감도 표출하지 않았던 나는 몰랐던 긍정성을 발견하게 되었다며 오히려 그런 모습을 반겼다.
“자네가 지금껏 아주 오랫동안 용서해주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어. 자네가 용서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자네의 남편, 아버지, 사람들의 리더 역할은 끝장난 거나 다름없게 될 걸세. 자네의 꿈을 현실로 바꾸어주고, 자네의 미래를 위해 도와주는 힘은 용서라는 걸 잊지 말게.”
데이비드는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 입니까? 밖으로 나가시기 전에 꼭 알려주십시오!”
대통령은 데이비드의 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간단하게 말했다.
“바로 자네 자신일세. 자신에게 화를 내지 말게. 자네 자신을 용서하게. 그리고 다시 시작하게.”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 중>
그랬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적대시하며 외면하고 있는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 없는 내가 너무 못 마땅했다. 이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왜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게 했냐며 하늘에 원망만 가득했다. 몰랐다. 스스로를 지독하리만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을. 큰 수술을 앞두고도 전혀 감정을 느끼려 하지 않았던 나를 보게 되었지만 ‘별거 아닌 일’로 그럴 수 있는 일로 치부해 버렸다.
그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보다 먼저 나부터 나를 사랑해야 하는데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만 앞장서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나에게 미안하단 말은 하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저 마음 아래에선 나를 괴롭힌 게 당연하다고 여겼으니깐. 괴롭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사랑할만하게 뭐가 있어야 사랑하지라며 나를 새롭게 변화시켜 줄 유일한 방법은 감정은 철저히 외면한 채 끊임없이 몰아치는 것뿐이라 여전히 굳게 믿고 있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몸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열등감은 내가 못난 것들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못난 마음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준 상처만 생각했지 스스로가 만들어 낸 수많은 상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나를 인정하고 싶었지만 인정할만한 것이 없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그 마음부터 시작된 스스로에 대한 경멸은 나를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 뿐이었다.
언니 글을 다시 만나니 너무나 반갑네... 자주 올려줄꺼죠???? ㅋ
1년을 걸으면서 생각하기를...
왜 나는 나 자신의 아픔을 별거 아닌 것처럼 초라하다고 느꼈을까?
아픈데. 울어도 되는데. 죽겠다고 엄살 부려도 되는데.
언니의 전화하는 모습이 웃는 나의 모습이랑 겹쳐졌어요.
나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거란..
다른 이의 아픔을 공감할 수도 없으며.
나의 삶마저 서늘하게 만든다는 것 이제야 깨달으며...
이제 자주 볼 수 있는 거죠? ㅋ (은근한 부담)
언니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너무 예쁜 것 알아요?
이쁜것들은 다 죽어야하는데.... ㅋㅋㅋㅋ
귀와 이마가 드러나는 짧은 커트의 매력적인 모습을 어디선가 본 듯 합니다.
미선선배님, 저도 자기사랑에 관심이 많아요.
미선선배님이 다루는 주제가 열등감이라고 언젠가 읽은 것 같아요. 이것도 많이 흥미롭습니다.
궁금해요.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실지요. 그래서 더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쏘스를 얻고 싶어요.
근데 머리에 종양이 생겨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혼자서 감당하는 모습은 안쓰럽습니다.
사람, 내가 아니라도 성당에서, 강물을 보면서 흘리더라도
고인 눈물을 알게 하고, 흘리게 하고, 지켜보아주는 대상이 어딘가에 있으면 좋겠는데 말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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