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 조회 수 2282
- 댓글 수 5
- 추천 수 0
세상에 쫄지 않기
“강의 부탁 드립니다. 대상은 이번에 입사 예정인 신입사원들이구요, 200명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그 경험들이 좋은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주제는 ‘끊임 없는 도전 의식’으로 합시다. 그게 좋겠군요. 강의 시간은 1시간 정도로 하시구요…괜찮겠지요? “
‘괜찮겠지요?...’
전화를 끊고 그의 마지막 말이 오랫동안 귓전에 맴돈다. 내 귀는 여전히 그와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는데 ‘괜찮겠지요?’라는 말, ‘나 이미 정했으니 거절일랑 하지 마라’는 자기확정 후 형식적 동의를 위한 절차적 부가의문문으로 이미 나의 강의는 주제와 런타임과 일정이 모두 정해 버렸다. 5월 중순, 인력개발팀장으로부터 받았던 전화 한 통은 6월 4일 강의 전 날까지 내 의식을 규정해 버린다.
‘강의? 내가? 200명? 말도 안돼.’ 했지만 이미 승낙하고 난 후다. 다시 가서, 안 된다고 말하자. “저기…생각해 봤는데 도저히 안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분들 앞에서 강의할 만큼 대단하지 않고요, 말주변도 없고요, 특히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떨려서 말도 잘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이렇게 얘기하면 되겠지. 보태어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빠뜨리지 말자. ‘No’한 뒤 ‘Thank you’는 붙여야 예의 바른 놈으로 보아 줄 테니.
그런 마음을 먹고 나니 올라가던 심장의 RPM은 급속도로 누그러졌다. 여러 사람 앞에서벌벌 떨리는 그 상황에 당면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내 뼈와 살에 흐르는 물리적인 피가 빠르게 안정을 찾는 모습이 신기하다. 마음 잘 먹었다. 수명 연장을 위해서도 잘 한 일이다. 그러나 박동이 잦아든 심장의 저 안 쪽 어딘가에서 큰 배의 엔진처럼 노도(怒濤)와 같은 떨림이 있음을 감지한다. 그 떨림은 고요했지만 강했다. 정중히 거절하러 가던 나는 멈추어 섰다. 나도 모르게 나를 지배하고 있던 일상의 관성에 조그만 반항이 시작된 것이다.
누누이 떠들고 다니지 않았나, 현실보다 강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거다. 나는 준비했다. 일상에서, 간간히, 불현듯 떠오르는 강연 모습을 상상하고는 그 감당할 수 없는 긴장감에 몸은 저절로 부르르 떨렸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함은 배가 되고 왜 이런 상황을 자초했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어릴 적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밝은 아이, 개구쟁이, 골목대장, 가끔 씩의 일탈을 즐기는 탕아, 주름 없는 성격의 아이였다.
‘쭈라’는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덩치 큰 아이들에게도 겁내지 않고 곧 잘 결투에 임했었고 높은 학년의 형들에게도 아닌 건 아니었다. 그러다 많이 맞고 터졌지만 그렇더라도 그 앞에서 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철이 들며 조금씩 변해갔다. 보 잘 것 없는 자아를 알게 되었는지 군중 앞에 나서는 것이 유난히 부담스러웠고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 이 보내는 시선에 주눅드는 모습을 보았다. 기어이 그런 피해갈 수 없는 상황들이 거듭되고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이 감당하기 힘든 '인지부조화'였다. 내 생각은 여전히 그네들을 휘어잡고 떠들며 춤추고 있지만 몸과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200명 앞에 선 나를 상상하는 것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 넣는 일이었다. 챌린지다. 모험이다. 절벽 위에 나를 세웠다. 결심한다. 떨어지자. 떨어져 죽든 날아오르든 그것은 신이 하는 일이다. 나에게는 강의라는 사회적으로도 미끈한 커리어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200명을 앞에 두고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도전이었다.
전쟁 같은 사무실에서도 다가올 강연 날이 잊히지 않았다. 한 살배기 딸 아이의 두려움 없는 웃음에도 연단에 선 내가 포개어졌다. 강박 수준의 날들을 보내고 단테도 보았을 검은 점을 하고 있는 달도 어김없이 기울었고, 강의하는 날 아침의 해는 끼니와 같이 다가왔다.
동 틀 무렵 일어나 어제와 똑같이 머리를 감았다. 아무렇지 않으려 애썼다. 좋은 와이셔츠를 입었고 구멍 나지 않은 검은 양말을 신었다. 보지 않던 전신 거울을 한번 보았고 ‘합’하고 주먹 쥐고 기합을 넣어보려 했으나 아무렇지 않기 위해 힐끔 쳐다 보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던 의지는 강의가 임박하여 여지 없이 무너졌다. 감당할 수 없는 초조와 긴장이 득달 같이 들이쳤다. 침을 삼키면 목구멍이 찢어졌고 찢어진 목구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는 그리도 컸다. 주저앉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하면 볼만 하겠지.
이윽고, 사회자는 나를 소개했고 나는 200명 앞에 마주 섰다. 이제 빠져 나갈 구멍은 없다. 400개의 눈동자에 나는 전율했다. 그때부터는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지배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지 못한다. 사회자가 나를 소개한 뒤로 나는 자아를 잃었고 강의가 모두 끝난 뒤 귀청을 때리는 박수 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깨어 자아는 되돌아 왔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상황은 이미 끝난 다음이다.
멍청한 얘기를 했고 그나마 한 얘기들은 두서가 없었고 중언부언 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군가 나에게 손을 들어 질문을 했는데 동문서답한 기억이 생생했다. 실망을 넘어 절망 수준의 자괴감이 들어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절망을 감내하고라도 끝내 얻은 것이 있으니 ‘다시 말할 수 있었던 경험’이다. 유치하고 어설픈 말을 쏟아 내더라도 내 자신의 콤플렉스에 당당히 맞버티며 견뎌낸 神의 한 시간이다.
오늘 하루 만큼은 데카메론을 제쳐두고 통근버스에서의 달콤한 잠을 나에게 선물한다. 버스를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바람이 불었고 나는 ‘다시 시작이다’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