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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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주차 칼럼]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려는 이유
(9기 유형선)
나는 요즘 책도 열심히 읽고 글 쓰는 연습도 열심히 하고 있다. 작년 144일간의 파업 체험이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는 습관을 나에게 선물했다.
파업기간 동안 매일 매일 마음에 이는 폭풍과 폭우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붙잡을 것을 찾았다. 그래서 읽고 또 썼다. 읽고 또 쓰다 보면 마음이 잠시나마 가라 앉았다. 그러나 파업의 요동은 거셌다. 그 동안 의지했던 모든 것이 날려가고 쓸려 버렸다. 나 하나만이라도 날려가지 않고 쓸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때 만났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질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어디 있느냐?’
아주 예전부터 내 옆에 있었지만, 다른 것들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이 질문을 붙잡았다. 묘하게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했다. 온 마음과 온 체중을 실어 보았다. 역시 굳건했다. 내 안의 생존 본능이 그 질문을 붙잡으라고 외쳤다. 단순했다. 살기 위해 이 질문을 붙잡았다. 질문은 이내 내 몸을 휘감고 근육과 골수로 흘러 들어왔다. 지금도 이 질문이 나를 이끌고 있다.
어제 헌책방에서 김수환 추기경님 책을 샀다. 제목이 <바보가 바보에게>이더라. 아! 이거다 싶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를 대답해 볼 힌트를 하나 얻은 것 같다. 사실 요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진리와 지혜를 보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참 아는 게 없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 나는 ‘바보’로구나! 하는 명백한 답만 보인다.
바보는 바보를 알아본다. 바보는 바보랑 금방 친해진다. 그리고 바보는 바보끼리 절대 싸우지 않는다. 바보는 바보와 만나면 그저 좋고 행복하다. 헤어지면 보고 싶고 자꾸 생각나고 그립고 그런 거다. 반대로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싸우고 우긴다. 목소리 높이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는 그런 싸움판을 보다 보다 소리친다. 그만 좀 싸우라고 소리친다. 제발 좀 싸우지 말라고 외치는 거다. 그러나 그들은 바보가 외치니 ‘우어우어’ 소리만 난다고 한다. 요컨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치’란 것을 바보는 아무리 쳐다보아도 모르겠다. 허긴, 그러니 바보지! 예전에는 세상 이치란 것을 배워보려고 공부했다. 나 바보 아니라고 외쳐보려고 목소리도 높여보고 글도 써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이내 잘못된 방향임을 내 스스로 눈치챘다. 아닌 것은 아닌 거다. 나 바보 맞다. ‘우어우어’ 소리만 나오니 세상 사람들 마음에 들릴 턱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요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얼마나 바보 인지가 보인다. 창가에 스며드는 햇살에 온 집안의 먼지와 묵은 때가 보이듯, 책을 읽으면 내 안의 먼지와 묵은 때가 보여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듯, 자꾸만 책을 찾게 되고 생각을 글로 정리하게 된다.
진실된 배움은 즐거움이다. 스승님을 모시고 가르치신 데로 책을 읽다 보니 요즘 한가지 배운 것이 있어서 즐겁다. 나를 바꾸지 않으면 세상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고, 나를 바꾸면 세상도 서서히 바뀐다는 것을 배웠다. 세상 문제라는 것이 결국 내 문제였음을 알게 되니 기쁘고 즐겁다. 그러나 이것을 전하고 싶은데, 세상에 외치는 것까지는 바래지도 않는다. 그저 내 아내와 내 자녀들에게라도 이 기쁨을 설명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부족한 내 언변이 답답하기만 하다. 좀더 그럴 듯하게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답답해서, 진실로 답답해서 책을 자꾸만 읽는다. 글 쓰는 연습도 자꾸만 하고 있다.
이것이 요즘 내가 책을 읽고 글 쓰는 연습을 하는 이유이다. 바보가 외쳐보려니 힘이 든다. 그래도 좋다. 즐겁다.
2013-05-13
坡州 雲井에서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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