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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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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2일 12시 34분 등록

 

우리 산골짜기 마을에는 감귤나무만 없고 웬만한 과일 나무는 한 그루씩은 다 있었다. 밤나무는 앞산에 지천이었고 복숭아 나무는 산 복숭아였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집 복숭아 나무는 윗집에 딱 한 그루 있었는데 해거리를 해서 한해는 얻어 먹을 수 있었고 한해는 먹지 못했다. 감나무는 밭마다 한 그루씩 있었고 감의 사촌인 고염나무도 있었다. 고염은-우리 시골에서는 ‘곰’이라고 불렀다- 쪽두리감 모양으로 도토리만큼 작게 작았다. 어찌나 주렁주렁 열리는지 가지가 쳐졌다. 고염은 감에 밀려 과일 축에 끼지도 못했지만 꽃은 예뻤다. 열매가 작은 데가 씨앗이 대부분이라 먹을 게 별로 없어 사람들은 잘 먹지 않았다. 오히려 그건 다행이었다. 산새들의 든든한 양식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익었을 때 씨 없는 것으로 잘 골라 따먹으면 맛이 꽤 괜찮다.

 

자두 나무도 있었고 자두처럼 생겼으나 자두보다 작은,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그것도 있었으며 대추나무는 말할 것도 없이 당연 많았다. 앞마당에 작은 은행나무도 있었는데 열매는 보지 못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같이 있어야 잘 자란다는데 또 한 그루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해 아버지 산소 다니러 갔을때 내가 살던 집은 내려 않아 형체를 찾아보기 힘든데 그 은행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 자라 노란 옷을 입고 있었다. 삐쭉 키 큰 것을 보고 그때야 수놈인 줄 알았다. 살구나무도 있었다. 윗 마당에 있었는데 노란 열매가 향긋했다. 잘 익은 살구는 모서리를 누르면 예쁜 씨앗이 그냥 드러난다.

 

대추나무는 앞밭에 듬성 듬성 있었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초록빛이던 대추에 붉은 빛이 돌이 시작했다. 나의 경험으로는 건조시켜 쪼글쪼글한 대추보다 붉게 익어 나무에 달려있을때 따먹으면 달맛이 입안에 확도는게 가장 맛있다. 한개를 입안에 넣어 우물우물하며 씨를 발라 먹는게 제맛이다. 한가지 주위를 준다면 대추씨 양쪽 끝이 뾰족하기 때문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붉은빛이 반을 넘지 않은 것은 먹지 않는게 좋다. 대추는 익지 않을때는 단맛이 하나도 없다. 근적한 즙이 있고 하여간 아무맛이 안난다.  나는 가을이면주머니가득 대추를 따 넣고 먼 길을 오가며 먹었다. 그 싱그러운 대추를 맛볼 기회가 흔치 않지만 나는 잘 익은 생대추를 지금도 좋아한다.

 

흔하지 않은 하나는 호두나무다. 호두나무는 정말 컸다. 사람들은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다람쥐와 청살모는 보란 듯이 타고 다녔다. 그 나무아래가면 다람쥐와 청살모는 자연 만나게 된다. 그러니 그 호두는 그 녀석들 차지였다. 정상적으로 호두껍질이 벌어져 알맹이만 떨어진 걸 가지려면 발 빠르고 눈치 빠른 그 녀석들 하고 경쟁해야 했다. 거의 같이 무르익어 많이 떨어질 때 나무 밑에서 몇 개 줍는 게 고작이었다. 그대신 청살모들이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는 호두를 가질 수 있었다. 그건 장마나 태풍이 주는 선물이었다. 가을이 가까운 시기에 부는 바람은 키 큰 호두나무의 호두를 엄청 떨어뜨렸다. 동생과 나는 호두 나무아래 덤불을 헤치며 파란호두를 주었다. 그 때의 호두는 청살모들이 보기엔 아직 익었다 할 수 없는 상태인지라 그 녀석들은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느긋하게 주우면 되었다.

 

주운 호두를 물이 불어난 도랑으로 가지고 와 돌에 간다. 파란 껍질은 아직 익지 않아 알맹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갈아보면 안에 열매는 딱딱하게 여물어 있다. 전체를 갈아내어도 골골이 달라붙은 껍질 때문에 깨끗하진 않다. 그걸 말리면 껍질이 떨어져 깨끗한 호두를 가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호두를 많이 먹었던 기억은 없다. 겨우 공기 놀이용으로 다섯 개를 크기가 비슷한 녀석으로 골라가지면 땡이었다. 단지 동생과 나는 그걸 갈아서 열매를 취하는 게 재미있었다. 호두의 그 짙은 청록색이 돌에도 짙푸르다 못해 검게 물들고 우리도 손가락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재미있었다. 깊은 가을에 호두를 청살모들에게 마음 편히 가지라고 주기 위해서는 그 의식이 필요했다. 진짜로 우린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았다.

 

그 호두나무 옆에 윗집과 우리 집이 사용하는 우물이 있었다. 향나무가 우아하게 틀고 서 있는 아래 작은 우물이었다. 그물은 길가에 있어 누구나 오가며 먹을 수 있었다. 이 우물에 대한 얘기도 엄청 많은데 다음기회로 넘겨야겠다.

 

그 과일 나무들은 일부러 가꾸지 않았다. 누구네 것이란 것도 없었다. 그 과일 나무는 모두의 것이었고 우리 것이었다. 적게 열린다고 가지치기를 하지도 않았다. 너무 많이 달려 가지가 부러질듯하면 꺾어다 방에 걸어두기도 했다. 생기면 생기는 대로 열리면 열리는 대로 취하고 두었다. 동네에 사람이 어른 여섯명에 아이는 나와 동생 밖에 없었으니 과일은 남아 돌았다. 

 

 

 

IP *.12.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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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3 21:33:00 *.108.69.102

아아!  천국이 따로 없네요. 

 하긴 골세앙바드레가 천국이 아니면 어디가 천국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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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8 09:53:06 *.153.23.18

한 동안 베란다에서 기를 만한 유실수를 뒤졌어요. 저는 대추나무가 좋겠다 생각했어요.

어디 영농조합에서 종자를 개량해서 작은 수종으로 만들었다는 걸 듣고는 멈추었지요.

도시에 살면서 자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방법이 뭘까요?

글을 읽으며 자연 속에서 천지를 모르고 지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되네요.  

추석 잘 보내세요^^ 제주도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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