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비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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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선물
살아오면서 감사 할 일이 참 많다. 그 中 가장 감사한 일을 꼽는다면 아마도 J언니와의 만남일 것이다. 1991년 9월 첫 학기 첫 수업이었던 화학 수업에서 교정을 가르며 걸어오는 그녀를 단박에 한국인이라고 알아볼 수 있었다. 늘 백팩(backpack)에 청바지, 티셔츠(sweatshirt) 차림이었던 나와는 다르게 핸드백에 게다가 가죽재킷과 가죽치마, 거기에 화려한(?) 화장까지… 그녀의 첫 인상은 ‘랄라리’에 깍쟁이 같았는데. 그럼에도 그녀의 밝고 환한 표정과 경쾌했던 그 발걸음은 20년에 지난 지금에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녀는 그렇게 밝고 경쾌한 그러나 사려 깊고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한 그런 사람이다.
우리는 첫 수업을 같이 들었지만 서로의 옷차림 만큼이나 너무 달랐던 성격 탓에 (당시 그녀의 성격은 매우 직선적이었던 반면 나는 내향적이고 조심스러웠다) 거리감을 느껴 쉬이 친해질 수 없었던 어느 날. 교수님 사정에 의해 수업이 취소되면서 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신이 나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누었는지 지금은 기억에서 희미해졌지만 수업이 있던 건물 1층 계단에서 한 시간이 넘게 이어진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하게 하였고 그 후로 대학 4년을 넘어 대학원 2년 동안 라면박스 2개가 넘을 정도 분량의 거의 매일매일 주고받던 편지에, 좀 더 젊은 시절의 내 일기장에, 국제전화 청구서에 지금까지 그렇게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은 그녀는 미국에 나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순간에도 또 가장 기쁜 순간에도 내 삶의 자취를 가장 먼저 나누며 위로 받고 싶고, 축하 받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 소울메이트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나와 J언니 같은 그런 관계가 아닌가 싶다. 서로의 성격은 너무 다르지만 가치관이 같은 우리.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받기보다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우리. 사람간의 관계에서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이기 보다는 마음과 마음이 먼저 맞닿기를 바라는 우리. 그렇기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특히, 연애에는 젬병이라서 나이 마흔을 넘어서까지 싱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다. 그래도 언젠가는 해변가에서 석양에 지는 노을을 바라다보며 칵테일 한잔을 하면서 지나온 세월 속에 함께해 온 추억을 이야기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정겨운 노년의 그림이 그려지는 그런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요즘은 편지나 전화보다는 카카오톡으로 또 페이스북에서 더 자주 접하는 그녀의 안부이지만, 20년 전 날이 밝아오는 줄도 모르고 밤새워 전화통에 붙어 있다가도 끊을 때엔 “자세한 건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던, 그리고 전화를 끊고도 못다한 이야기로 편지지를 채워 갔던… 내 젊은 날의 반짝이던 시절을 함께 한 그녀. 또 내가 가장 아팠던 순간, 내 상처의 밑바닥까지 내어 보이며 흐느끼던 나에게 언제나 귀와 어깨를 내어주었던 그녀이기에 난 그녀를 만난 것을 살아오며 가장 감사한 일 또 그녀는 내 삶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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