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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라는 군대 리얼 TV 프로그램에서 여성 아이돌 그룹이 위문공연차 등장하니, 패닉상태로 빠져드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들은 어느 한 종교의 교주이고 혈기왕성한 군인들은 그 순간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신도들이 된다. 그런데 그런 섹시코드와 비주얼로 중무장한 여러 걸 그룹들에 비해, 뭔가 어설프며 조금은 수준 떨어져 보이는 팀 하나가 등장해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촌티가 폴폴 나는 체육복에다 엇박자로 뛰는 직렬 5기통 빠빠빠 엔진 춤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들 열광을 해댄다. 크레용팝. 상한가의 인기에 힘입어 인터넷에는 각양각색의 패러디 영상도 넘쳐난다. 무엇 때문일까. 연예계란 서슬 퍼런 정글의 세계에서 B급 정서란 콘셉트로 대시한 그네들에게 그렇게 관심과 환호를 외치는 이유는. 대중문화 평론가인 강태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대중이 천편일률적인, 획일화된 콘텐츠에 절대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 규격화된 틀에 박힌 상품들의 모습에 식상한 대중이기에 색다른 아이템을 갈구하던 그들이기에, 그네들에게서 차별화된 남다름의 인자를 발견한 것이리라. 이는 세일즈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직장 신입사원 시절. 낯선 여인 하나가 출몰 하였다. 누구지. 잡상인인가. 사무실에는 직종을 막론하고 많은 객들이 내방을 해댄다. 물건을 팔러 오거나 신장개업한 점포를 홍보 하거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목적성을 가지고 찾아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단연 많은 개체수를 차지한다. 00보험, 00보험 등. 보험 회사는 어찌 그리도 많은지. 공통적인 것은 그네들의 옷차림이다. 성별을 떠나 모두가 말쑥한 정장차림. 누가 봐도 한눈에 그쪽 계통에 있는 분이구나라는 인상이 들 정도로 그들은 복장과 인사가 정형화 되어있다. 그런 군집 속에서 여인은 단연 눈에 띄었다. 샤프, 핸섬, 젠틀 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주변에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동네 아줌마 모드로.
“안녕 하세요. 신입분이신 모양인데 사탕 하나 드세요.”
촌티가 베어 나오고 세련되어 보이지 못한 멘트, 도회적인 이미자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과 첫인상은 솔직히 아니올 시오다 이었다. 사회생활 초년병인 내가 보아도 프로보다는 아마추어 냄새가 나는 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렵고 살벌한 이 시장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오지랖 넓은 걱정까지 들었다.
“그리고 시간 되실 때 이 상품 하나 천천히 살펴보시고요.”
명함과 함께 카탈로그를 내밀며 사라지는 그녀. 나는 내용을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쑤셔 넣어 버렸다.
“일전에 전해 드렸던 상품 설명서 한번 읽어 보셨나요?”
시골 아낙네 같은 순진한 얼굴로 재방문시 나를 향해 웃음 짓는 그녀. 난 뽀로통한 얼굴로 대꾸를 하지 않았다. 솔직히 대답할 의무가 없었기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멋쩍은지 자리를 떠나간 그녀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내방을 하였고 한 번씩 얼굴을 맞대고 나니 슬슬 부담이 생겨났다.
‘저 여자가 계속 찾아오네. 나 참. 어떻게 해야 하지. 무언가 액션을 취해야겠군.’
나를 향해 의식적으로 접근하는 그녀를 향해 한마디를 내뱉는다.
“불필요하게 수고하지 않아도 되니 저한테는 들리지 마세요. 나는 보험 이라면 아무 관심이 없고 그 용어만 들어도 이가 갈리는 사람이니까.”
너무 모질게 말을 하였나싶어 표정을 살피니 그럼에도 그녀는 생글거리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다른 분들에게 인사드릴 때 함께 들리는 거니까요. 상품에 관심 없으시면 그럼 이거라도 드세요.”
다시 사탕을 내민다.
이렇게 그녀와 마주하다보니 훌쩍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럼에도 그녀의 태도는 한결같다. 매주 한번은 사무실을 방문하여 눈도장을 찍고 인사를 하며 유익한 자료와 껌, 사탕 등을 돌린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반응이 있든 없든 비어있는 책상의 자리에도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고 간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그녀가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업종은 다르지만 아마도 같은 세일즈 계통에 있으니 더욱 관심이 가게 된 모양이다. 보아하니 자가용도 없이 힘들게 뚜벅이로 영업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상담 화법이나 옷차림도 화려해 보이지 않는 그녀. 궁금증이 들었다. 얼마나 판매고를 올리는 걸까.
얼마 후 뜻밖의 사건이 발생 하였다. 자형이 위암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평소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고 술 담배도 조절하며 건강을 자랑하던 양반 이었는데, 초기라고는 하나 수술이후 자국의 흉터가 선명 하였다. 암이라는 질병이 무서운 거구나라는 경각심이 새삼 다시 듬과 함께 나에게 건네는 자형의 말 한마디가 계속 신경을 쓰이게 한다.
“처남.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있어보니 미리 암 보험을 들어놓지 않은 게 제일 안타깝더라.”
사건 이후로 보험에 관한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면서 관심이 조금씩 동하게 되었다. 그러면 누구에게 상담을 할까 생각을 해보니 수많은 보험 세일즈맨들 중에서도 그녀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려 졌다. 이유가 뭘까. 유능하고 상담 잘하며 커리어가 대단한 분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오히려 보험 냄새를 풍기지 않으며, 가까운 익숙한 벗들처럼 자연스레 다가와 마주쳤던 A급이 아닌 친근한 B급 정서의 이미지 탓이리라.
처음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 역시 항상 세련됨 보다는 푸근한 그 표정 그대로 그녀는 반가운 모습이다.
“어머. 웬일이세요. 나만 보면 본체만체 하더니.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요.”
고객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했던 사이여서인지 그녀는 가벼운 농담을 나에게 던진다. 겸연쩍은 듯 헛기침을 하고 본론을 꺼내었다.
“그냥 알고 싶어 그러니 암 질환에 관련된 상품 있으면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아마도 그녀에게는 이게 웬 떡이냐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그녀의 답변은 오히려 나를 갈등에 빠지게 하였다.
“그런데 혼자 가입할 생각이신가요. 사모님도 함께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뿐만 아니라 사무실 직원 중 태반이 그녀의 고객이다. 이는 아마도 내가 선택한 이유와 별반 다름이 없어서 이리라. 점점 더 안면이 트이자 실적을 많이 올려 해외 시상을 가게 되었다고 자신의 자랑을 해댄다. 금융 상품을 상담할 수 있는 시험을 쳤는데 붙었다고 또 좋아하는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여느 분들처럼 외적으로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달변가도 아니지만, 그녀는 참 그들과는 남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무언가 거짓말 할 것 같지 않고 속이지도 않으며 한번 인연을 맺게 되면 진실하게 자기 일처럼 잘해줄 것 같은 그런 것 말이다. 줄기차게 오랫동안 한길 업종만 들이파고 있는 그녀의 현재 모습이 이를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다. 그래서인가 지나가는 말투로 궁금증을 물어 보았다.
“어르신이 연세가 있으신데 들 만한 추천 상품이 있나요.”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낚이고 말았다.
당신은 어떤 경쟁력이 마음에 와 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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