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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3일 22시 02분 등록

남자란 동물은 오랜 옛날 사냥꾼의 핏줄을 이어 받았기에 태생적으로 전투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다. 목표물에 대한 타깃과 창을 들고 냅다 찌르는 공격 욕구 그리고 어떻게든지 잡겠다는 포획의 속성까지. 그럼에도 여성 대비 신체적인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평균수명뿐만 아닌 자신의 기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걸까. 나는 그 까닭의 하나를 억압된 감정과 표현 능력의 미숙함에 근거를 두고 싶다.

사람은 자신의 생긴 모습을 찾고 그 원형 그대로 특질의 결을 살려 살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하지만 사회 그중 이윤을 매개체로 하는 조직이란 집단은 그것을 쉽게 용납하질 않는다. 성과창출이라는 과제 하에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은 채 끝없는 진보와 업적을 요구한다. 그러다보니 인간 존엄성이라는 근원적인 물음은 뒤켠으로 물러 나가고 pokerface라는 단어가 앞자리를 차지한다. 말 그대로 싫고 좋음의 감정표현의 기복 없이, 삼성 라이온스 야구단에서 돌부처라 불리는 오승환 투수의 표정처럼, 종내 속마음을 읽을 수 없는 고수의 숨결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여성들의 감정 특성처럼 슬프면 울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상이 변하는 그런 있는 그대로의 표현방식을 터부시한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레크리에이션 강사 출신이라는 경력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 당시 대구에서 피날레를 휘날리며 나름 잘나가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꺼려지는 행사장이 있었다. 입담과 재담으로 날고 기었던 그에게도 통용이 안 되는 무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 장소는 교도소, 교장 선생님 그룹, 과천 정부청사 공무원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이었다.

첫째, 교도소. 분위기도 살벌할뿐더러 무대의 진행자나 좌석에 앉아 이를 즐기는 사람이나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여는데 익숙지 못하다. 어두운 표정에다 거기다 차카게 살자 등 팔뚝에 적힌 문구들은 천하의 김제동이라는 프로마저도 간담을 서늘케 하였었다.

둘째, 교장 선생님 그룹.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들을 나름 학창시절을 보람 있게 보낸 이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모두가 엄숙하고 근엄한 얼굴들. 어쩌면 국민들이 요구하는 모습이었을 수도 있으나 미국의 클린턴, 오비마 대통령의 표정에 비하면 어딘가 비장함과 결연함이 물씬 묻어나온다. 오래전 고이승만 대통령 시절 한일전 국가대표 축구경기시, 승부에서 지면 현해탄에 빠져 죽을 각오로 이기고 오라는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는 그런 사진들인 것이다. 그랬다. 우리의 아버지들도 그러했다. 가난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일념하나로 소총 하나들고 월남의 정글 속으로, 뜨겁다 못해 살이 익을 수 있는 뜨거움의 현장 중동에서, 낯선 독일이라는 나라의 지하 갱터 광부의 소임으로써 달러를 벋어 들여 우리 경제의 근간을 살찌우게 했다. 사치스러운 감정을 논할 여유가 없는 삶의 치열함 그 현장속의 주인공들 이었기에. 이런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의 교장 선생님들도 근엄함 그 자체다. 덕분에 어린 시절 운동장에 학생들을 집결시켜 놓고 그들의 훈시를 듣는 자리에서 따뜻함과 유쾌함을 느껴본 기억이 전혀 없다. 그렇기에 그런 분들을 앉혀놓고 즐거운 레크리에이션 자리를 마련하여도 속마음을 보이질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일. 아니 웃고 싶음에도 주먹을 불끈 쥐고 감정을 삭인다. 이유는 하나. 그렇게 살아온 현실이라는 과정 외에 교장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의 신분과 그것에 따른 대중들의 기대와 역할에 부응해야 했었기에.

셋째, 과천 정부청사 공무원. 그들은 최고라 칭하는 엘리트들이며 가지가지 수많은 교육을 받아본 전문가 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인지적 수준의 능력과 빠르고 정확한 업무 수행 능력은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그렇기에 청중의 반응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일반 유명 강사들도 그들 대상으로 강의를 할시 긴장을 하고 진땀을 흘리곤 한다. 이유는 하나. 당사자들이 반응을 보여야 할 때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대 앞에 서는 이들은 청중의 추임새로 먹고 사는데, 팔짱과 다리를 옭아 메고 너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라며 방어적인 태도의 완벽함으로 장식된 그들 마음문의 빗장을 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 집단 특히 아줌마 부대로 일컫는 그녀들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문화센터, 강습회, 평생 교육센터 등 여러 현장에서 그들은 지적 수준과 외부의 화려함에 관계없이, 루이비통 가방 혹은 남대문시장 몇 만원의 짝퉁으로 치장을 하더라도 대개는 열려있는 가슴으로 참여를 한다. 남자들처럼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군단의 철벽 수비로 쫓고 있는 사냥감의 퇴로를 차단하는 방어막이 아니다.

‘오늘 한번 시원하게 웃고 가요.’

‘어제 남편이란 한바탕 하였는데 오늘 스트레스 원 없이 풀고 가야지.’

‘애들 진로 설정으로 머리가 아픈데 좋은 자리 왔으니 수다나 왕창 떱시다.’

그렇기에 진행자의 멘트 속에 10월의 마지막 밤 이용 오빠의 ‘잊혀진 계절’ 노래가 나오노라면, 그녀들은 그 곡조의 가사와 감정에 푹 빠지고 동화되어 유치원 꼬맹이들처럼 합창을 재잘댄다. 세상살이에서 이 같은 맞장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 혼자 용빼는 재주로써 살아가기 보다는, 남과 어울려 올망졸망 기분 풀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그녀들은 몸소 보여준다. 반면 직장생활을 통해 나름 한가닥 하던 중년의 남자들은 어떠할까. 쌓아온 내공과 스펙에도 불구하고 제2의 은퇴 설계를 하노라면 한숨부터 나오는 현실을 마주한다. 조직의 일원으로 속해있던 그 방어막이 인생 후반기에는 적절한 도우미가 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그들에게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찾아오고, 그토록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나름의 테두리를 쳤던 그들에게 쓰나미의 충격이 몰려온다.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마눌 님을 뒤로하고 혼자 안방으로 와서 누워 있노라니 눈물이 절로 솟아난다. 누가 볼세라 휴지로 자국을 닦아내지만 내려앉는 무게감으로 인해 옴짝달싹을 하지 못한다. 왜지. 왜 나에게 이런 힘듦이 찾아오는 걸까.

형에게 수술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의사는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간암 말기입니다. 복강과 폐로까지 전이가 된 상황이라 항암 치료 및 방사선 치료가 의미가 없습니다. 1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나는 이런 장면을 많이 보았었다. TV 브라운관 속의 연기자들의 대사로써. 그렇기에 그런 장면에 나름 익숙해 있었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않았다. 그런데 실제는 달랐다.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당사자가 당연히 제일 힘들어 하겠지만 조카 녀석은 그리고 중요한 병원비 부담은 어찌할까나라는 현실적인 생각에 계산기가 돌아간다. 복수가 차서 임산부처럼 배가 불룩 올라와 있는 형이란 존재. 그는 나와 어떤 관계일까. 그리고 그 의미는.

 

형이라는 사람은 형제로써 일반적으로 기댈 수 있는 동생의 뒤를 받쳐주는 하나의 백그라운드적인 상징이 아닐까 한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형은 그 기대치에 턱없이 모자라는 사람이다. 여덟 살이라는 나이 차이 덕분도 있겠지만 한 번도 살갑게 대화를 나누거나, 목욕탕에 함께 가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스킨십이 없었기에, 형제의 우애라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하지 못하였다. 거기에다 장남에 대한 기대가 넘쳐서인지 어머니가 밀어주는 사업이란 종목을 벌이는 족족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았다. 덕분에 그 여파는 집의 외형을 말하는 평수를 좁혀 나가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고, 가세가 기울어지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담당 하였다. 그럼에도 어머니 당신은 형을 감싸고만 돌았다.

“개가 순하고 너무 착해 빠져서 세상을 몰라서 그래.”

착해 빠졌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로인한 경제적 심리적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은 우리들은 어떡하고.

“너희 형이 경제력이 없어서 그러니 네가 집안에 도움을 줘야 되지 않겠니.”

위와 같은 명분으로 때때마다 손을 내미시는 어머니. 화가 났다.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누구 때문에 이런 여파를 겪고 있는데. 형이라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고사하고 일이나 벌리지 않았으면 하였지만 현실은 그대로였다.

세월이 바뀜에도 형은 전혀 변하질 않았다. 그런 가운데 끝내 어머니가 병환으로 몸져눕고 병원비와 간병비의 고민 앞에 처음으로 나의 속마음을 감정적으로 표현 하였다.

“형이 도대체 이날 이때까지 집안에 보태준게 뭐냐. 형으로서 역할도 못하면서 인간 말종처럼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지 않느냐. 어머니가 저렇게 병원에 계시는데 도대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런 나의 표현에 섭섭하고 너무 심한 말을 해댄단다. 심한 말? 웃기고 있네. 내가 얼마나 이런 말들을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참고 있었을 뿐이지.

 

그러했던 형이란 사람이 지금 병상 침대에 누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오늘은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 의사 선생님의 힘을 빌었다.

“환자는 지금 본인 상태가 어떻다고 보이나요. 간수치가 내려가지 않아 약 처방도 그렇고 별다른 치료할 것이 없어요. 6개월 정도밖에 남질 않았습니다 ……. 주변 정리를 하시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내려갈 것을 권합니다.”

나는 외면하였다. 저승의 귀로에 서서 하데스의 판결을 내리듯 갈림길의 결과를 통보하는 그의 말에 반응하는 형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보고 말았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 떨어뜨리는 고개. 이어지는 외마디의 말.

“그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네요.”

그와 나 사이 남겨진 공간과 이어지는 침묵. 시계의 초침은 흘러간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조차 피하고 싶은 이 순간. 스틱스 강을 건널 채비를 하고 있는 그 앞에 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걸까. 왜 막내인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걸까. 왜 내가 형의 병원비까지 짊어지고 그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있는 걸까.

“지금 통증이 없다고 하지만 형이 언제 어떻게 더욱 안 좋아 질지는 모른다. 호스피스 병동도 환자의 의식이 있을 때 갈수 있다고 하니 생각을 해봐라.”

말을 덧붙였지만 그의 눈동자는 허공을 맴돈다. 퀭한 얼굴에 어둠의 그림자가 이어지고 생각과 의지는 정지되어 있다. 나는 애써 웃기는 말투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애쓴다.

“술좀 작작 먹지. 봐라. 결국은 이렇게 되었잖아. 거기다 맥주를 그렇게 들이켜 대니 배에 복수가 더차지. 양이 적은 소주를 먹었어봐라. 아마 오늘은 잠이 오지 않을 거다. 덕분에 긴긴 밤을 불면으로 지내겠지.”

이제는 조카에게 통보할 차례다. 시팔. 왜 내가 이런 감당하기 힘든 책무를 담당해야 하는 거지.

“아빠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생인 조카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아빠가 6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없단다.”

말이 없다. 부녀지간에 말없기는 마찬 가지군. 어깨를 여리게 흐느끼며 어린 소녀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눈물을 참는 것은 나와 똑같군. 안았다. 품에 안았다. 어쩌나. 이제 어쩌나.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으면 이제 너는 어쩌나. 내가 조카를 품어야 하나.

 

라디오를 켰다. 음악이 나온다. Eric Clapton의 ‘Danny Boy’ 기타 연주. 슬프다. 더럽게 슬프다. 속으로부터 끓는 눈물이 다시 올라온다. 무던히 참는다. 그럼에도 방울방울 그놈은 눈 밖으로 왜이리 스며 나오는 걸까. 꺽꺽대며 참는다. 마눌 님에게 이런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돼. 힘듦은 나 혼자로 족하기에. 나는 남자잖아. 태생적으로 속으로 참는데 익숙한. 그런데 가슴이 너무나 아프다. 숨쉬기가 힘들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내 가슴을 누른다. 이러다 내가 먼저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나. 창문을 열었다. 폴 발레리가 말했던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그도 같은 하늘아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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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16:49:39 *.43.131.14

어깨가 너무너무 무겁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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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9 07:21:32 *.39.134.221

죽음에는 세종류가 있다고 하지요.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들의 죽음.

그들의 죽음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세상에 이런일도 있구나 정도에서 그칩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나의 죽음....천국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같이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믿는 사람은 나의 죽음은 지금이 끝입니다. 여기가 마지막 입니다. 더이상 아무것도 없지요. 그러니 나의 죽음은 감당할 만 하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너의 죽음입니다. 인간에게 인간소리가 아닌 짐승의 울음소리를 토해내게 하는 것. 그것은 너의 죽음 때문일 겁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입니다. 자신은 부인하고 싶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사랑이지요.

애증과 원망이 함께한 사랑말입니다.

 

너의 죽음 앞에 자유로운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저는 없다는 것에 500원 겁니다.

짐승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곁에서 그렇게 울고나면 무거운 어깨도 백짓장만큼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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