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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4일 04시 09분 등록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관리팀장으로부터 한가지 부탁을 받았다.  회사에서 고졸 사무보조 여직원 채용을 하는데 면접을 해달라는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어 흔쾌히 승낙을 했다. 1명을 채용 예정인데 7명이 지원을 했다. 그 중에는 대졸자도 있었다. 지원자들의 경력을 보았다. 1년도 안되어 여기저기 이직을 한 사람도 있고, 계약직 또는 아르바이트로 일을 한 사람도 있었다. 면접에 임하는 자세도 다양했다. 상대방 눈을 보며 차분히 또렷또렷하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선을 줄곧 아래로 두거나 평범한 질문에도 대답을 머뭇거리는 지원자도 있었다. 나는 두 가지만 중점적으로 보고 질문했다. 하나는 지원자들의 눈을 보았고, 다른 하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했었는지를 물었다. 왜냐하면 눈을 보면 그 사람이 정신적, 심리적으로 건강한 지 , 그리고 열정의 소유자인지 여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나 입사가 간절한 사람, 그리고 열정이 있는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다. 그리고 일을 즐긴 적이 있다면 그 일이 자신의 기질, 적성, 그리고 재능에 맞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자신이 어떤 분야에 어떤 직업이 자신에게 맞는 지를 몰랐다. 어쩌면 이들한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일하는 재미에 빠진 시기가 있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3년을 외국 회사에서 쓰라린 경험을 한 후 친정 집으로 재 입사한 후였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주어진 조건 없이 맨땅에 헤딩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던 터였다.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때에 다시 첫 직장에서  일을 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30대 후반이지만 백의종군의 자세로 일을 했다. 전 직장에서 3년간의 경험은 나를 더욱더 단련시켰고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을 갖게 했다. 재 입사할 때 회사는 다른 사람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직급을 입사 동기보다 한 직급 낮게, 고용형태도 정규직이 아닌 1년 계약인 비 정규직임을 알려줬다. 당연히 임금도 낮았다. 나는 내게 맞는 일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다른 조건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1 년 후에 회사는 승진과 함께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었다. 그 후 5년 동안 회사는 세계 경제 발전, 특히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에 힘입어 성장과 수익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속한 부서도 신규 사업분야에 시장진입 비용을 내지 않고 성공적으로 연착륙을 하였다. 업무량은 늘어났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시장을 조사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이 나를 흥분시켰다. 업무의 자율성과 그에 따른 책임감도 주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일요일 저녁이 되면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 진다고 하는데 내게는 그런 월요병의 증상이 없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월요일에 출근하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단순히 영업이익이 난다고 흥겨운 것이 아니라 농부가 황무지를 개간하여 거기에 작물을 심고 거름을 주고 가꾸면서 끝내는 결실을 맺는 것처럼 일에 희열을 느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 중독이 아니고 몰입이었다. 내게 있어 몰입은 열정과 인내를 동반했다.   

 

미하이 칙센미하이에 따르면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기보다 업무에 충실할 때 몰입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는 일을 더 즐길 뿐만 아니라 더 잘하게 된다고 했다. 그의 말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한때 밑의 직원들한테 열정을 자주 주문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어느 한 임원은 요즘 젊은 친구한테 충성과 열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대신 어떻게 하면 적게 일하고 농땡이 치면서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없나에 관심이 많은 것이 요즘 젊은 직장인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고정관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다시 새로운 일의 세계에 들어왔다. 다시 몰입을 느끼고 싶다. 부담스럽게도 회사는 내게 단기적인 성과를 원하지만 장담을 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 성과에 연연하여 허황된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다. 불가능한 것을 된다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예전처럼 일을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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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 10:43:46 *.216.38.13

부산에서의 새로운 커리어 2.0시대를 맞이하셨네요. 아이디도 제이와이로 바꾸시고.. 축하드립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글에 삶의 진국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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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 11:08:51 *.46.178.46

웨버님의 글을 간결하고 딱딱 떨어지는 맛이 있습니다.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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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 14:38:17 *.58.97.140

제이와이님 안녕하세요.

변신하셨군요~*

이제는 제이와이라고 부르겠사와요...^^

 

제이와이님을 통해

부산 부둣가 새벽 공기 소식도 들을 수 있고

자타르타의 뜨근 찜찜한 더운 기운도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그간 몰입하였던 열정을 분출하는 모습 볼 수 있어 기쁩니다.

 

하지만,

짧은 마라톤 빤쮸 입고 뛰는 모습 못 보고

10첩 반상 차려 초대하는 모습도 못 보고

숲 해설 들으며 함께 산길 걷고픈 꿈 못 보고.......ㅠ.ㅠ

 

하나를 얻을 지면

하나를 잃는 것이라고 했던 가요?

 

하지만!

제이와이님이 '정반합' 내공을  무림의 고수처럼 부려서

이 동생의 기대에 부합하는 뭔가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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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17:00:37 *.43.131.14

차분하고 힘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분명 신명나게 일하실 겁니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커다란 힘을 주실 듯 해요.

 

글 속에서 칙센하이머가 한 말이 저에게 콕 박혀요.

변경연은 너무나 재미가 있지만, 일 속에서 몰입을 해야 저에게 구원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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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 18:59:47 *.91.142.58

오라버니...

 

그렇게 일을 즐기다보면 분명 좋은 성과도 따라올 것이라고 믿어요!

오라버니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 Bravo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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