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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4일 08시 13분 등록

2002 3. 안이다씨는 3학년 복학생이다. 군입대전 방탕한(?!) 학교생활로 펑크가 날대로 나 너덜너덜해진 타이어 같은 학점 여기저기를 메우는데 정신 없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몇 달 전 만난 아리따운 여자친구가 그의 옆에 있었다. 고로 여친과 데이트도 해야 했다. 어디 그 뿐이랴. 그는 한 동아리의 수장이다. ‘할수있다!’는 복돌이 특유의 객기와 군바리 정신으로 맡은 회장직이지만 그 길은 험난하고도 고되었다. 매일 2시간씩 진행되는 동아리 수업을 챙겨야했고 3월에 있을 신입생 환영회와 봄 MT, 코앞으로 다가온 4월 학술 컨퍼런스 행사까지 몸이 두개라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그는 자신이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갰다.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 또는 4시까지는 과수업을 비롯한 과공부를 했고, 그 뒤부터 밤 11시까지는 동아리 운영에 할애했으며, 오후 11시부터 12시나 새벽 1시까지는 여친과 함께 공부 겸 데이트를 했다. 평균 취침 시간은 4시간~6시간정도. 대한민국 육군 포병으로 2 2개월 동안 밤새 타이핑을 한 끈기와 그는 군수행정병이었다 ㅡㅡ;;; – 그럼에도 수시로 투입되었던 작업으로 하루 한끼 밥먹듯이 한 곡괭이질과 평균대와 철봉을 오르내리며 단련한 탄탄한 근육 - 이때 까지만 해도 안이다씨는 70킬로를 육박하는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했다 ㅡ_;;; - 을 주에너지원으로 이 험난한 과정을 버티고 있었다. 아니 즐기고 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실제로 동아리 방에서 선잠을 자고,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강행군이었지만 이 활기 넘치는 시간들이 싫지 않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활기찬 봄날이었다.

 

2013 10월 어느 날 월요일 아침. 안과장이 일을 하고 있다. 맞은 편에서 원차장님이 안과장을 보며 이런 저런 문장을 던졌다. 하지만 음소거 된 TV 속의 조연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만 보일 뿐 원차장님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얼마 뒤 한통의 E-MAIL을 받은 뒤 원차장님의 심기가 왜 그리 불편해 보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표준인재 실행계획서 작성/제출 요망메일의 내용은 이랬다. 회사는 표준인재라는 개념을 설정해 놓고 그 조건을 달아놓았다. 그 조건에는 표준분량의 독서/ 표준이상의 외국어실력 / 표준이상의 열정 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몇가지 실행계획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안과장은 대뜸 이런 생각이 들었다. ‘21세기에 표준인재라니……’

 

안이다과장의 회사생활은 외적으로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니다. 그의 회사는 대한민국 300대 기업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고 업계에서도 상위에 랭크 되어 있다. 일류기업 정도는 아니지만 연봉도 낮은 편은 아니다. 회사 구성원들도 전반적으로 선하고 문안한 성격의 소유자들로 사내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타기업에 비해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문제는 최근 형성되는 회사의 방침들이다. 회사는 확장 일로에 있고 그래서인지 뭔가 틀을 만들어 법칙을 정하는 것을 좋아했다. ‘할 수 있다라는 군바리 정신을 선호하는 듯 보였고 위에선 관리자들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은근히 바라는 분위기였다. 더구나 최근 연봉책정이나 인사정책도 공시없이 다소 불명확하게 집행되는 터라 직원들의 원성이 커지는 분위기 인데, 그런 가운데 표준인재라는 용어까지 등장하였다. 아이 둘을 둔 40대의 원차장님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게 이해가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직원들의 은근한 불만이 높아지고, 회사에 활기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안이다씨의 2002년은 배고픈 시절이었다. 집에서 용돈을 받는 신세였으며 학교생활을 조금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하루 4~6시간 밖에 못자는 강행군이 1년 가까이 이어졌지만 그의 삶은 자신감과 활력으로 넘쳐 있었다. 반면 안이다 과장의 현재는 안정적이었다. 적당한 연봉의 안정정인 직장에 다니고 있다. ‘사오정을 넘어 토익 900점 이상에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그에게는 과분한 조건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안이다씨는 자신의 일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입사 10년차에 가까워지는데 언제나 제자리에서 뱅뱅도는 느낌이 들고, 진보가 아닌 퇴보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말은 안하지만 그래도 돈은 많이 주고 있지 않느냐라는 분위기를 깔고 있는 듯 했다.

외적인 상황이나 조건을 보면 안이다씨는 배고픈 2002년 보다 배부른 2013년을 만족스러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하다. 들여다보면 그는 성취감이나 존재감과 같은 내적인 요인에 의해 삶의 활력을 얻기 사람이다.  안이다씨에게 2002년은 경제적인 부분을 제외한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해였다. 그가 열심히 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그가 열성적으로 수업과 행사를 준비하면 동아리 사람들은 그만큼 즐기고 열심히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그 때는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는 만큼 얻는다라는 희망 말이다. 하지만 그의 2013년은 그렇지 못하다. 회사에서는 일방적인 정책 수행과 최고수준의 업무 만족도를 바랄뿐 직원들의 바람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이 정도 월급을 주고 있으니, 회사의 정책에 따라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직원들의 성취감이나 만족도를 신경써 달라는 것은 배부른 돼지의 투덜거림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사실 희망이라는 면에서는 더더욱 절망적이다. 열심히 생활하고 연차가 올라가 20여년 쯤 되어서 부장되고 25년 즈음 되면 임원이 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소신을 비출 수도 없고 경영진 눈치보며 비추지도 않는 몇몇 사람들을 보면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이것이 안과장이 자신의 미래와 진로에 대해 심히 고민해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원의 내적 만족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방향타가 고장난 배처럼 안과장의 마음은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다.

회사는 얼마 전 전사시스템을 교체했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 위해 외적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회사입장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아직 불안정해 속도 면에서는 조금 느리긴 하지만 과거 직원들이 엑셀과 같은 툴을 통해 1~2시간동안 작업해야 하는 데이터 분석을 3~5분안에 처리하고 있으니 확실히 데이터분석 측면에서는 진일보했고 업무적으로 편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안과장은 마음이 편치 않다.  

좌뇌가 해야 하는 일을 시스템이 해주고 있다. 결국 회사는 좌뇌형 직원들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그 수요가 급격히 줄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회사가 지금 당장 우뇌형 인간을 양성하는 인사/교육 정책을 펼치지도 않고, 딱딱한 업종의 성격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않다. 회사 정책에 물들어 5 10년이 지난 뒤 갑자기 우뇌형 인간을 원하거나,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인재상을 원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앞으로 들어올 팔팔한 젊은 20대는 외국어와 소프트웨어 스킬 면에서는 나보다 월등할텐데 나는 어떤 차별성을 가져야 할까? 이런 현실에서 내적만족도운운하는 건 정말 배부른 소리일까책상 앞의 모니터를 보고 있는 안이다씨의 마음을 오늘도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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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 10:02:34 *.46.178.46

세가지 정도의 소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가지를 택해서 끝가지 써보자는 마음으로 썼는데, 초반과 달리 중 후반으로 가면서 글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일정부분 손을 볼 생각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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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7 11:34:33 *.216.38.13

대수씨의 재기발랄함이 여기서도 느껴집니다. 또 다른 세가지 소재도 정말 궁금합니다. 각 칼럼들이 하나의 실험들을 해보시는 것 같아서 다음 칼럼이 어디로 나갈지 궁금도하고, 또 기대도 됩니다. 꼭 세가지 소재에 대한 부분도 나중에라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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