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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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일주일이 흘러가는가 싶더니 어느덧 월요일이 코앞이다. 내일 아침부터 직면해야
할 상황들이 대성씨의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최근 회사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과감히 단행한 시스템교체. 하지만 이로 인해 떨어지는 업무
효율성은 나아질 줄 모르고 있다. 엔화약세, 원화강세, 중국발 경기침체 등 언급되는 용어들 마다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힘들어지는 듯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회사의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다. 규모의 경제와 시스템 교체를 통한 업무혁신을 내세운 올초였지만 경기침체로 인해 투자확대는 비용부담으로 돌아왔고,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기간 안에 전사시스템 교체를 목표로 하다보니 외관만 좋아졌을 뿐 업무혁신은 고사하고
기본적으로 돌아가야 할 프로그램들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니, 안팎으로 총체적 난국인 형세이다. 월초에는 발표한 지난 달 실적도 겨우겨우 적자를 면했지만, 차 떼고
포 떼면 이마저도 빨간 불이다.
회사 여건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대성씨의 책쓰기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또한 만만치 않다. 회사는 점점 더 집중력
있는 근무 또는(그보다는) ‘오랜 시간’ 근무하기를 바라는 눈치이다. 가족들은 대성씨의 프로젝트 참여에 적극
지원해주기로 했지만 순간 순간 비치는 분위기는
‘나 지쳤소… 이제 나도 힘드오….’ 이다. 거기에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는 언제나 눈에 밟힌다. 이런 상황에
그는 일주일에 35시간 내외를 투입해야만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나마도 쉽지 않아 30시간 정도를 투입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던 대성씨가 드디어 탈이 났다. 지난 토요일 아침 시작된 복통에
설사로, 수차례 화장실을 들락거리더니 조금 뒤부터 머리가 아프고 몸살이 오더니 갑자기 몸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장염인 듯 해, 하루 이틀 굶고 누워있으려 했는데, 일요일에 있을 회사 영어시험을 생각하니 앞이 막막해졌다. 결국 대성씨는
전문가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병원을 찾았다. 진단은 역시나 급성 장염.
‘급성이니까 안먹는게 가장 좋지만 그게 힘드시면 흰죽에 보리차만 드세요. 주사 맞으시고
약도 드시고요’. 대성씨는 내일 있을 시험을 언급하며 링거(영양주사)를 맞겠다고 했다. 처방이 끝나고 옆에 있는 응급실에 누웠다. 곧이어 간호사가 왔고, 대성씨의 오른 팔에 얇지만 날카로운 빛을
반사하는 큼지막한 주사바늘을 꽃는다. ‘뜨끔!’ 유난히도
아프다. 그날 따라 더 아프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대성씨였지만, 허기는 그리 중요한게 아니었다. 내일
있을 시험, 그리고 그 뒤를 기다리고 있는 방대한 양의 프로젝트 과제,
아픈 날 쉬지도 못하고, 이 좋은 가을 날 가족들과 쉬지도 못하고……‘도대체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거야’ 대성씨는 다시 한 번 뒤돌아
본다.
대성씨의 프로젝트는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주 35시간씩 2년을 투입하는게 공식 일정이다. 1년이면 1,820시간이고 2년이면
3,640시간이다. 주
40시간 근무가 공식적으로 언급되는 시대이기도 하거니와, 대성씨가 아무리 농땡이를 친다해도
주 25시간이상은 족히 투입되는 프로젝트이니 어림 잡아도 3,000 시간
이상을 투입해야 함을 감안하면 직장생활 못지 않은 고난(이도)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고 하여 좋은 결과로 이어질 보장은
없다. 통계적으로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멤버들의 20~30% 정도만이
책쓰기에 성공했다. 수익성까지 고려하면 ‘가격(비용) 대 성능(수익)’ 비가 안좋아도 한참 안좋은 프로젝트이다. 합리적으로 따진다면, 대성씨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회사와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성씨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도대체 ‘왜’?
대성씨의 ‘책쓰기 프로젝트’는
일종의 R & D 이다. 일반적으로 회사는 매출액의 10%를 R&D에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먹을거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성씨도 그의
프로젝트를 이렇게 보고 있다. 지금이야 압축 과정이니 상당 시간을 투입하고 있지만, 프로젝트 이후 그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의 10%(하루 2~3시간)를 R&D, 즉
책읽기와 글쓰기에 투입할 수 있는 습관과 기본소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그는 월급의 5~10%를 프로젝트 관련 교재구입과 활동비로 쓰는 것 같다. 또한
프로젝트 참여는 대성씨에게 즐거움을 준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
거장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이를 나누는 즐거움, 마지막으로 이를 대성씨만의 것으로 재생산해내는
즐거움.
저명한 비즈니스 철학자 게리 하멜은 21세기의 혁신적인 조직의 롤모델
중 하나로 IBM을 꼽았다. 1980년대 까지 업계와 미국의
고속성장을 주도하던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 회사는 1990년대 말부터 침체에 빠졌다. 몇몇 전문가들의 분석결과 IBM 내의 신규사업 추진은 상당 수가
실패하였고 이는 막대한 자금 동원에 따른 수익(결과) 보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중도포기 또는 예산삭감으로 이어졌고, 우수인재 영입 실패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IBM은 ‘EBO 프로젝트(Emergng business opportunites : 신규사업 기회창출을 위한 연구소 중심 사업 발굴 프로그램)’ 구성하여 막대한 자금의 비용투입, 실패를 탓하지 않는 문화 조성, 기업전략 부서와 실행주관 부서의 혼합구조를 통한 책임감 고취와 전문지식 교환을 가능케 하였다. EBO에서 실행한 첫 5년간의 프로젝트 중 약 90%이상이 총 150억 달러의 연간 매출을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성공 또는 실패'라는 결과에 관계없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IBM 의 승리라고
볼 수 있었다.
대성씨의 프로젝트 또한 그렇다. 아니 적어도 대성씨에게는 그런 개념이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의 일종, 꾸준한 투자를 통해 결국엔 (심리적, 개인적, 경제적인) 성공을
가져다 줄 것만 같은 R&D이자 도전이다. 이런 거창한
의의에 프로젝트 수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갖게 되니, 이 정도면 그가 장염에 허덕거리면서도, 아이가 눈에 밟히면서도, 회사일과 사생활의 그 묘한 균형점을 찾으면서도
충분히 할만한게 아닐까? 대성씨는 오늘도 그렇게 생각하면 언제 끝날 줄 타이핑을 하고 있다.
보르헤스는 "인생은 시간이다!" 라고 함축해 말하더군.
우리는 순간 순간 깨달음에 도달하기는 하지만, 그 유지(習)를 위해서 역시 초심을 능가하는 몰입이 따라야 함까지는 계산에 넣어두기가 쉽지 않았던 듯하이. 배움이 항상성을 띠며 일상의 즐거움이 되고, 나아가 그것들이 쌓여 혁혁한 변혁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열정?+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애시에 겁내거나 지루해 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네. 공부하게 되면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것(철학이나 진화에 따른 고차원적 돌입)들에 대한 투자 또한 만만찮고 그 가닥을 놓지 않고 지속하는 힘 또한 필요하게 됨을 알게 되더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평상심과 항상성이 조화롭게 될 때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던 뽕맛을 보게 되는 듯하더이다. 자신을 잘 추스려 나가고자 반추하는 그대 모습에 응원보내네. 영차~ 영차~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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