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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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옛 직장 동기를 만나 술 한잔을 했다. 오십을 목전에 둔 그 친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앞으로 5년만 더 회사를 다닐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만년 부장이지만 이제는 임원 승진에 미련도 없다고 했다. 지난 해 친구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임원과 선임 부장들이 회사를 떠났는데 본인은 살아남은 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정리된 부장들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자녀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해운 물류 부문의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재 취업이 힘든 상황이다. 이제는 50대 중반에 퇴직하는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가는 듯 하다. 조기 퇴직자 대부분은 특별히 가진 기술이나 자격증도 없다. 일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 밖에 없다. 불황이니 '머리 굵은' 그들을 받아 줄 회사도 거의 없다. 지금도 회사에 하루 하루 목숨을 연명하는 40~50대 중년 직장인들의 미래의 모습이라면 너무 서글픈 현실일까.
연초에는 25년 만에 두 명의 대학 동창을 만났다. 역시 주된 화제가 남은 긴(?) 인생을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립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한 친구는 몇 년 전에 국어 교사에서 상담으로 보직을 바꾸었다. 학생들의 진로와 인생 상담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스트레스 덜 받고 62세 정년까지 건강하게 일하고 싶은 이유도 있을 듯 했다.
행복의 중요한 조건 하나로 일할 직장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맞는 예기다. 1년 전, 권고 사직 후 9개월 넘게 비자발적 실업 상태로 있었다. 200백만에도 훨씬 못 미치는 월급에 일요일 하루만 쉬는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는 직종인데도 나이 때문에 번번히 거절을 당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직업훈련원에 다니며 새로운 직업을 찾아 보았지만, 역시 경험 부족과 나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20년 넘게 쌓은 경험과 노하우는 동종 업계에 재취업 가능성이 희박한 이상, 아무 쓸모가 없었다. 좌절, 불안, 무기력 등의 부정적 감정이 고개를 쳐들며 순간순간 심신의 건강을 위협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중소기업에 재취업을 했지만 아직도 불안 요소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다. 그냥 내일 기약 하지 않고 오늘이 직장 생활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다니고 있을 뿐이다.
은퇴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은퇴를 맞고 있다. 직장에 머물고 싶어도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다.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거나 연기하는 임금 피크제 도입이 전 산업 분야에 적용되고 정착화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물론 평균 임금 하락, 청년 고용 악화 등의 문제점도 있지만,은퇴자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뾰족한 대안이 없는 듯 하다. 퇴직 후 식당 등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많다. 어느 한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개인 창업자의 약 47 %가 창업 후 3년 만에 망한다고 한다. 창업도 자발적 창업보다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생계형 창업이 많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영업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뛰어들어 얼마안가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십이 넘어 일이 놀이가 되어 즐길 수 있으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즐길 수 없더라도 회사에 다닐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시한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곧 회사를 나갈 수 밖에 없는 불행의 그림자가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다. 그 불행은 자신 만의 불행으로 그치지 않는다. 가정과 사회의 불행으로 연결된다. 뻔히 예견된 일이지만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가 가난을 구제할 수 없듯이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은퇴 후의 초로의 중년 사람들의 재취업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을 것 같다.
스스로 마음을 단련해 퇴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과거 화려하게 누렸던 직책이나 재직했던 직장은 하루 빨리 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아울러 과거의 화려함은 자신이 결코 잘나서가 아니라 회사라는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이 어느 특정 종교의 가르침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처지를 냉철히 인식해 낮은 데로 임하는 것이다. 다시 초심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면 길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며칠 전 들은 나이 지긋한 한 택시 기사의 말이 생각이 난다. “ 시중 은행의 잘 나가는 지점장에서 은퇴 후 택시 운전을 할려니 내려 놓을 것이 많더군요. 다른 사람의 이목, 자존심 등. 하지만 내 인생 이잖아요. 지금은 일할 수 있어 손자 용돈도 주고, 마누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행복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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