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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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철학이 사색하는 우주의 위대성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 또한 위대해지고 우주와의 통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우주와의 통합이야말로 마음의 최고선인 것이다.
- 러셀 "철학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저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철학과를 다니며 참 많이도 헤맸습니다. 당체 알아듣지 못하겠는 교수님들의 수업도 많았습니다. 학생이니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만으로 철학을 공부하기에는 깊이와 넓이에 압도당했었습니다. 철학이라는 이름의 사막 한가운데 홀로 던져진 기분이었습니다. 사막을 횡단했던 선배 철학자들의 고전분투와 결과물이 당체 이해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음이 끌리는 책을 먼저 읽었습니다. 주로 사회과학 책을 읽었습니다. 20대를 갓 넘어가는 저에게 대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접한 세상은 법과 질서와 윤리가 그야말로 한 조각 찾기도 어려운 아귀다툼의 혼란 뿐이었습니다. 대체 왜 세상이 이리도 혼란스러운지를 알고 싶어서 사회과학 책을 읽습니다. 세상의 혼란이 결코 한 사람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언론과 교육이 알려주는 것처럼 노력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 결코 아님을 배웠습니다. 사회의 부조리를 들추어내어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의 참혹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있어야 함을 배우던 시기 였습니다.
그리고 군에 입대 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군대 복무기간 동안 잊지못할 기억 한 두 가지는 평생 마음에 가져갈 것입니다. 지금도 저는 그 날의 다짐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제가 소속했던 사단의 옛 사단장님 은퇴식을 만 이틀동안 연습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루종일 도열을 하고서 연병장에서 차렷과 열중쉬어, 경레를 반복 또 반복했습니다. 이틀을 이런 똑같은 일을 계속하며 홀로 눈물 흘렸습니다. 똑같은 일상이 영원히 반복되는 연옥의 형벌을 받은 죄인이 된 심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살지 말자! 자유롭게 살자!" 는 마음으로 남몰래 울었습니다.
그날부터 책을 읽었습니다. 비록 몸은 군복무를 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를 택했습니다. 아니, 독서가 저를 찾아주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이제는 네가 나를 받아들일 때가 되었구나, 너에게 나를 허락한다"는 마치 친구가 연인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책에 몰두 했습니다. 공자, 노자, 장자, 샤르트르, 괴테, 움베르트 에코 등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휴가를 다며오면 아에 책 한보따리를 택배로 부대에 부쳐 복귀후에 받아보던 기억도 납니다.
또 한번 책을 절실히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은 때가 2012년 가을 이었습니다. 직장에서 파업을 약 100일 정도 지속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침에 문득 걸려온 전화는 고향 한동네 친구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이었습니다. 그 날로 고향을 찾았습니다. 이제 아장아장 걷는 둘째를 놓고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친구의 영정에서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이후 단 한가지 문장만이 제 머리 속을 가득 메웠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
대체 "나"라는 것은 지금 어디 있는 걸까요? 끝이 날 줄 모르는 파업과 가족의 근심을 매일 접하면서 매 시간 시간을 마음속에 이는 폭풍을 견디며 지내던 그 때, "너 어디 있느냐?"는 물음만이 흔들리지 않는 그 어떤 것임을 본능으로 깨달았습니다. 부초처럼 떠다니는 내 인생도 자리를 잡고 싹을 틔어보고 싶은, 거부할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우주의 질문이었습니다. 답을 찾는 내 모습 속에서 나를 자리매김하고 키워내고 싶은 간절함이었습니다.
요즘은 직장이이라는 쳇바퀴 일상 속에서도 독서하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갇힌 시공간에서 자유롭게 사는 분명한 방법은 단연코 독서 입니다. 지난 주는 러셀의 '서양의 지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주말 이틀을 책 읽는데 온전히 바쳤습니다.
러셀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묻고 또 대답하는 길이며 이것을 철학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철학자이며 사색가 입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 책속으로 전해지는 철학자들을 통해 살펴 봅니다. 그들이 물었던 인생을 나 역시 걸을 뿐입니다. 다만 나의 길은 내가 갈 길 이기에 내 길을 끊임없이 묻고 또 답하는 데 있어 독서로 도움 받습니다.
제아무리 과학문명과 인간기술이 발전하여도 아직 우주의 약 2% 정도만 알고 있다고 합니다. 제 자신이라는 하나의 우주를 탐험하고 실험하는데 철학책은 좋은 자양분이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세상에 끌려다니며 살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읽기라도 하면서 생각해 보려합니다. 독서는 나를 알아가는 참 좋은 수련방법 입니다. 인문고전과 함께하는 겨울이 되는데 제 경험 이야기가 도움이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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