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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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9. 생각과 사유 --- 고기는 잊어버리고 망을 얻어라, 관계의 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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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 2.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나만의 키워드 찾기의 두려움
3. 내 맘대로 철학정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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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내내 러셀의 서양의 지혜를 읽으면서 서양 철학사를 훑어보았다.
명쾌하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알 듯 모를 듯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러셀의 안내로 서양사상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의 물줄기를 한번 보고 나니, 이제까지 남 같았던(?) 철학이 조금은 내 옆에 와서 앉아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언가 불편하다. 서양 철학을 다룬 서적을 읽을 때면 느껴지는 이 불편함. 이것은 아마도 내가 서양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고 그들의 언어와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서양철학이건 동양철학이건 내가 보고 주워들은 것을 한데 모아서 내 관심이 가는 부분들만 정리 본다.
철학논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실체가 무엇인지를 논하는 존재론, 진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논하는 인식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논하는 가치론이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에 기반을 둔 존재론은 종교철학을 발전시켰다. 인식론은 플라톤 철학의 바탕으로 인문철학을 발전시켰고, 가치론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바탕으로 과학철학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근대 서양철학에서 보면 데카르트(합리주의) 철학은 존재론, 칸트(합리주의+경험주의) 철학은 인식론, 흄의 철학(경험주의)은 가치론을 대표한다.
우리의 천지인 사상에 따라 분류해보면 天은 존재론이고 地는 가치론, 人은 인식론에 해당한다. 종교로 보면 불교는 존재론, 도교는 인식론, 유교는 가치론을 논한다고 한다.
나는 서양철학사에서 흄의 철학을 만났을 때 정말 그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의 개념을 처음으로 엿본 서양 사람이 바로 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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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1711~1776)은 경험주의를 완성시켰다. 그는 로크에 이어 이성의 추리가 쌓아 올린 세계관이 실제로 맞는지를 밝히는 경험주의를 끝까지 말고 나갔다. 그래서 합리주의가 인정한 물체와 정신의 실체성이 허상임을 밝혔다. 즉 합리주의가 믿고 있던 지식들이 인간 정신의 습관적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철학에서 이성의 월권과 독단에 의한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흄은 12살에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천재였다. 하지만 학위를 마치지 않고 2년 만에 돌아와 병이 날 정도로 열심히 사색하였다고 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인간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자’는 것이었다. 그는 ‘경험주의의 끝장’을 보고자 했다. 그의 철학적 성과는 20대의 나이에 이루어낸 것이었다.
그 자신도 인간의 자아라는 것이 순간적인 인상의 생멸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흄은 인간의동일성, '나'라는 주체의 동일성에 대해 철학한 결과, '자아는 내가 생각하는 나에게 대한 복합적인 관념이고 허상'라고 말한다. 그 당시 서양의 주류 사상이었던 주체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회의주의에 빠졌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흄 자신도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여 스스로 미궁에 빠졌다고 말한다.
나 역시 한 때, 내가 무엇인가? 내 생각은 무엇이고 나는 본래 무엇인가에 대해 아주 많이 고민했던 것이 있었다.
그런데 아봐타라는 자기발견 프로그램을 만나면서 '나라는 존재는 지워지기도 하고 새롭게 그려지기도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나를 옭아매는 무언가를 풀고 다시 세상에 태어난 듯한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그릴 수도 지울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 때부터 나는 나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유쾌하고 긍정적인 시선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흄의 경험주의 철학의 끝장고민도 나의 참나에 대한 깨달음도 모두 불교에 이미 녹아 있었다.
객관은 물론 주관마저도 모두 부정되고 난 뒤 허무에 떠는 서구와는 달리, 불교는 그때라야 비로소 인간정신이 해방됐다고 본다. 나라는 존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관념이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
매 순간 새로워지면서 한없이 자유로운 참나는 자아의 관념으로 묶을 수 없다. 그것은 생생히 살아있는 것이다. 한쪽으로 치울칠 수 밖에 없는 관념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멋진 참나인가? 마치 매트릭스처럼말이다. 그래서 결국 언어조차도 초월할 수밖에 없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관념의 산물이니까. 본질은 항상 언어의 침묵을 넘어서 나타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할 때 확실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나는 이 말을 믿고 살았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생각 속에 지나치게 가두고 있었다. 오히려 생각하지 않을 때가 나의 참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무심한 상태... 참나에 대해 깨닫고 불교를 만나고 또 서양철학사를 통해서 이미 참나에 대해 고민했던 흄이라는 철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서양 철학에 대한 불편함이 한꺼풀 벗겨진 느낌이다. 철학하기가 슬슬 재미있어 진다.
불교에서는 말한다.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진 자리에 비로소 오롯이 진실이 드러난다."고.
몸과 마음의 선입견이 무너진 자리에서 인간은 관념에서 벗어나 해방을 맛보는 것이다.
지난 주 내내 철학사를 훑어보면서 수많은 철학자들의 고민과 사색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철학자들은 이 시대에서 저 시대로 철학적 키워드의 바톤을 넘겨주고 넘겨받으면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인간 실체를 알기 위해 치열히 철학하여 왔음을 발견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끊임없이 탐구하는, 탐구하는 모습 그 자체로서 참으로 아름다운 존재임을 느꼈던 한 주였다.
2014년 1월 13일 서은경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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