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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9일 20시 46분 등록

주말 아침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몇몇 기사를 읽고 생각을 했다. 꽤 바쁜 주말을 보내면서 귀가하고 나면 자기 전까지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겠다 맘먹고 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11시이니 그럴 법도 했다. 추운 겨울, 바깥의 차가운 날씨에 노출된 안경이 집으로 들어오자 이 온기를 적응하지 못하며 뿌옇게 변했다. 한동안 눈앞에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짐을 내려놓고 차가운 물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그녀의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옆으로 갔는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조금씩 떨리는 듯한 그녀의 손, 베개 옆에 쌓여 있는 휴지들. 뿌연 안경이 이내 원래대로 돌아오고 눈 앞이 선명해졌을 때, 그녀가 잠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흠칫 놀라 그녀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답이 없다. 아이가 또 말을 듣지 않았냐, 아니면 안 좋은 소식을 들었냐 물었지만 여전히 답이 없다. 잠깐 얘기 좀 하자고 말해보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분위기였다. 어렵게 입을 땐 그녀는 자긴 괜찮으니 그냥 자겠다고 했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땐 혼자 놔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에....... ‘혹시 아침에 얘기했던 친구의 죽음 때문에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알 길 없었다. 잠시 잠깐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 했던 계획은 떠올릴 겨를도 없이, 그의 마음이 심란해졌다. 심란한 마음 가라앉히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고 영화를 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기사도, 영화 속의 무서운 장면도 심란함으로 얼룩진 그의 마음에 온전히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어둔 밤이 흘렀다.

전 날의 어지러운 마음은 그의 몸을 한껏 무겁게 만들었다. 무언가가 짓누르는 느낌. 그녀와 아이와 함께 잠깐의 외출을 한 뒤 그들은 교회로, 그는 자주 찾는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지만, 앉아있기라도 하자란 생각으로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두어 시간 뒤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어제는 이래저래 힘들었던 것 같아. 당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게 전부는 아니니 마음 쓰지마. 마음이 약해지니 몸도 약해지고 마음껏 펑펑 울지도 못하고…… 그런 것들이 쌓여서 한꺼번에 터진 것 같아. 미안해.’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녀에게서 온 문자는 답답한 그의 마음을 조금 풀어주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 속은 더 복잡해졌다. 괜한 일을 벌여서 주변 사람 힘들게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13년간 일만했던 그녀는 회사에서 일 좀 한다는 이야기를 꽤나 자주 들었었다. 책임감도 있고 호탕하며, 적극적인 성격의 그녀였기에 고객들과 회사 직원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같이 업무하고 싶어하는 직원들의 선호도나 고객서비스 친절도에서 항상 손가락에 꼽히던 그녀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직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영진도 바뀌었고 그에 따라 직원들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일만 잘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진급도, 학벌 앞에서, 오랜 시간 손을 놓아 다시 시작하기 두려워지는 자격증이나 영어와 같은 요건들 앞에서 막히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런 요건에 대한 회사의 요구는 커졌고 여직원들에 대한 진급기준을 높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벌레였지만, 업무를 잘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요건, 때에 따라서는 그 외의 요건에 밀리기도 하는 요건 아닌 요건이 되어버렸다. 그런 현실에 몇 번의 상처를 받은 그녀는 결국 13년간 일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뒤로도 파트타임, 즉 비정규직으로 몇 차례 일을 했던 그녀는 몇 개월 전부터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에너지는 얻는 스타일이다. 그것이 그녀가 가장 잘하는 것, 천복(bliss)’에 가까운 것이다. 아침 출근길은 언제나 힘들어했지만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솟아 오르는 활기 덕분에 퇴근길은 한결 가벼워지는 그녀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의 인생을 대부분 남들과 함께, 또는 고객들과 함께, 그렇게 웃고 얘기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끊임없이 소통하며 지내왔던 그녀였는데, 그런 그녀가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힘들어하고 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면 없지 않지만 전업주부라는 역할이 일종의 소통의 단절을 가져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 옆에서 오랜 시간을 할 수 없는 그의 상황 또한 그녀에게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다가온 듯 했다.

그의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분명 그녀는 지금의 이 상황을 현명하게 지낼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하고 계기가 필요하고 활력이 필요하다. 그 또한 이를 위해 그녀를 도와줘야 한다. 임시방편일 지도 모르나, 그는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을 단박에 끝낼 방법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접고 언제나 그녀 옆에 함께 있어주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다. 중도포기라면 그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숙제를 남기게 된다. 계획했던 부분, 약속했던 부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상태 그대로 놓아두자니 그녀가 걱정되고 괜히 불안해 보인다. 그에게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의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살다보면 사는게 내 맘대로 안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 오랜 삶은 아니지만, 적어도 삶이 내 맘같이 되진 않는다는 건 사실인 듯 하다. 성인처럼 기나 긴 인생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면 아주 까마득해 보이지도 않고, 보인다 하더라도 미미한 개미 같은 존재에 불과하니 지금의 이 상황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그저 그렇게 초연하게 지내라고 하고 싶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정신적으로자유로워지고 초탈해지자니 이건 현실을 너무 방관하는 건 아닌가 싶고 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니라 문제로부터 달아나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기에 그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그도 살리고 그녀도 살리는 신의 한수가 필요한지 모른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신의 한수는 없다. 단지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녀의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오늘 저녁은 조금 일찍 그녀의 옆에 앉아야겠다. 그녀가 조금이나마 위안을 찾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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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0 02:34:58 *.185.21.47

대수의 따뜻하고 잔잔함이 느껴지네...

그녀가 힘들어할 때,

아무말 하지 않아도

그가 따뜻하게 잡아주는 손의 온기가

그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을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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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2 18:56:33 *.186.179.86

그녀가  숨통 틔울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도 그도 남같지 않네.........에휴 .... 맘이 짠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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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2 20:08:03 *.209.223.59

가정과 직장에서 연신 일이 터지는 30대에 연구원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네요.

지금은 다소 힘겹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문제의 복판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젊음의 표지일 수도 있답니다.

하루 종일 아~ 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거든요. 내게는.^^

 

어차피 한 가지 직업과 정체성으로 살 수는 없는 시대,

그녀 또한 이번 상황을 딛고 더욱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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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3 16:05:31 *.252.192.237
짠하네.
삶이 내 맘처럼 되지 않을 때가 될 때보다 많은 것 같아. 꼭 어떻게 뭔가를 해야할 때도 있지만 아무것도 안해야 할 때도 있고. 우린 뭔가 할때와 견딜때가 언제인지 모르고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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