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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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실래요? 꿔라, 쫌!
꿈을 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이면 한숨을 끄억 쉬고는 일상인지 모를 삶에 매진한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면 또다시 꿈꾸기를 기다린다. 그를 기다리는 꿈, 기다림이 반복되면 지쳐간다. 아침이면 내 꿈을 방문하지 않은 그가 더욱 멀리 사라지는 것 같지만 끊어질듯한 가는 실을 여전히 붙들고 있다. 끝끝내 방문해주지 않은 그를 대신해 얼마 전부터는 다른 이들을 기다린다. 그들이 내 꿈에 나타나 주기를.
나는 잠을 자고 꿈을 꾸려 한다. 아직까지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문기사를 봐도, 인터넷을 훑어 봐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이런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다. 내 일생에서 기억나는 꿈이라는 것은, 기억할 수 있는 꿈이라는 것은 몇 되지 않지만 나는 융이 그러했던 것처럼 꿈에 매달리어 있다. 나의 꿈꾸기는 무엇에 대한 기다림인가. 융을 읽는 동안 내 꿈꾸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융이 주창했던 집단무의식이 꿈속에서 발현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꿈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는다. 꿈은… 잠자는 동안 일어나는…심리적 현상의…연속이다……. 자연적으로 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계속하고 있는 의식작용이라고 한다면 나의 의식과 심리적 갈망이 턱없이 부족했음이다. 내 갈망의 요소를 꿈을 통해 바라는 것은, 내가 비이성적이기 때문인가. 그것이 비현실적임을 알기 때문인가. 어쩌면 내 자신,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요소에 극단적으로 빠질 수 있음을 알기에 논리와 이성이란 무장을 갖추려 하는 지도 모른다. 내 갈망을 꿈에서 구현하고픈 것은 논리와 이성이 막혀버린 탓일지 모른다.
2009년 5월 23일이 지나고 만족스럽지 못한 기사들을 보며, 아니 기사들을 보며 만족하지 못한 내 마음은 자연스레 모든 의혹에 쌓이고 음모론에 끌렸다. 충분히 가능한 주장이라 여기지만 그것을 실체적으로 규명하기 어려움을 알기에 나의 의식이 바란 것은 그가 꿈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 꿈에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나의 바람은 이런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몹시도 선명한 꿈을 꾸고 깨어난다.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한 꿈이기에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가까운 이에게 얘기를 시작한다. 얘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그녀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곧이어 더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인터넷을 살펴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꿈을 꾸었다. 동시다발적인 이 꿈을 무심히 넘겨버릴 사람들은 없다. 이것을 계기로 구체적인 조사가 시작된다.
2014년 4월 16일이 지나고, 또 시간이 지나고, 점점 늘어나는 의혹과 더불어 이런 세상 속에서 산다는 숨쉬기 힘든 절망과 공포 속에 또다시 바라는 꿈이 생겼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10명이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그리고 왜 물 속에 잠기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 꿈에도 친구들의 꿈에도 수많은 이들의 꿈에도. 역시 그들은 수많은 이들의 꿈속에 동시에 나타나 이야기를 전한다. 다음날로 휙휙휙 조사가 이루어지고 쑥쑥쑥 처벌이 진행되고, 나아가……. 이런 갈망이 크면 클수록 눈뜨는 아침의 아무 일도 없던 꿈의 세계는 허망하기 그지없다.
허망은 차라리 내일의 꿈꾸기라는 더 큰 폭의 갈망을 이어준다. 바라지 않는 이가 꿈에 나타난 아침의 짜증에 비할까. 눈을 뜨자마자 짜증에 몸둘 바를 몰랐던 날, 출근길로 이 재수없음을 털어내고자 전날 밤의 꿈얘기를 시작했다. 나의 짜증을 안타까워하며 동료들은 복권을 권했다. 원래가 꿈에 그런 자리에 있는 이가 나오면 필시 복권대박이라나. 이런 얼굴을 보게 된 재수없음이 복권당첨이란 재수있음으로 이끌리 없다며 부정하던 나는 점점 많은 이들의 반복된 복권 권유에 생각이 바뀌어갔다. 꿈에까지 나와 내 기분을 상하게 한 죄를 복권당첨으로 보상하라는 것으로 말이다. 최소한의 투자는 완전 꽝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나의 분노는 더 폭발했다. 내가 도대체 쥐새끼에게 뭘 기대했던 거야! 그 후로 쥐가 더 싫어진 것은 사실이다.
융의 책을 읽고 그의 사상에 집중하기 전 내가 본 것은 어찌하면 융처럼 기시감있는 꿈들을 꾸게 될까였다. 나는 아직도 꿈꾸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융은 이성이 우리로 하여금 매우 좁은 한계에 매여 있도록 하며, 오직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이미 살고 있는 삶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과 같은 삶이 이성때문이 아니라 ‘이성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이성을 밀치고 무의식에 기댄다. 또다시 융의 말을 인용하면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들을 생각해보라.”
동시성현상과 예언적인 꿈에 기대는 날이 오래되었다. 논리와 이성과 정의가 무너지고 개떡같이 되어 버린 시간과 공간에 살면서 비현실적 요소에 기대는 일은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르겠다. 그 무엇이든 제발 여기서 나갈 수 있는 전환점이 마련되기를,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를 갈구하는 내 인식의 방편이 나를 정신병자로 이끌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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