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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3일 16시 59분 등록

오랫동안 키워서 싹을 보았으니까,

나는 내가 좀 장기적인 것을 잘하는 인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목표한 것은 이루지 못했다.' 오랫동안 집중해야 했던 것은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치하듯이 돌보던 식물들은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장기적인 일을 잘 해낸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다가 그 생각을 철회했다. 내 힘으로 키웠던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내 힘으로 키웠던 게 아닌가 보다.

이것들은 내가 목표해서 그것을 이루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니까. 

 

하여간 오랫동안 키워온 것들의 목록은 한번 만들고 싶었다. 집안에 있는 녀석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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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렌지쟈스민

그 목록을 만들려는 계기를 준 것은 바로 위 사진 속의 '오렌지쟈스민' 어린 녀석이다. 

난 이곳에 오렌지쟈스민을 옮겨 심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낳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전에 나무에 열렸던 작은 열매 하나를 여기에 묻어준 것이 생각난다. 빨간 열매를 따서 맛이 어떤지 씹었는 데, 맛이 무척 썼다. 속이 제대로 영글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열매가 작아서 그게 씨을 품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식물이 오래도록 키워온 것을 한번 깨물고 버리기에는 미안해서 거름이 되거나 혹은 싹이 나거나 그 어떤 쪽이라도 좋을 듯 싶어 한쪽에 묻었던 것인데 거기에서 싹 하나가 올라왔다.

 

아, 참, 대추.

간식거리로 사온 대추를 말리려고 씻는 중에 많이 상한 것이 있어서 화분에 던져 두었다. 달달한 것이라서 개미가 끌 것 같아서다. 흙에 개미나 벌레가 사는 것이 화분의 식물들에게 좋을 것 같아서 버리는 김에 하나 던져 두었다. 현재 대추는 곰팡이를 물고 있다. 이 녀석도 혹시 오렌지쟈스민처럼 이곳에서 싹을 내버리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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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크루시아 (위)

북유럽 쪽 어느 나라의 고무나무. 반그늘에서도 잘 살고 잎사귀가 예쁜 나무란다. 

내 취향은 양지지향이어서 이 녀석이 우리집에 적응하는 데는 상당히 고생을 했다. 다른 녀석들과 다르다는 점을 놓치고는 물을 많이 주어서 잎사귀를 몽땅 떨구고는 죽느냐사느냐하는 고비를 넘겼다. 

지금도 물을 너무 자주 주어서 탈이다. 반그늘에 두라해서 한곳에만 두었더니 해를 향해 모양이 좀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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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붕어들과 인공수초

내 손으로 직접 키워 알을 낳게하고 그 알에서 부화한 녀석들이 이 만큼 자랐다.

번식력이 대단하다. 방안이 그늘져서 인공수초 말고는 다른 수초를 넣어줄 수 없는 형편이다. 이 녀석들의 번식력 때문에 다른 것의 생명을 손에 붙인자가 겪어야할 마음의 요동을 겪는다.

 

작년 겨울에 5마리 였던 것이 지금은 방안에 15마리. 부엌에 20마리가 넘게 살고 있다. 버럭버럭 자라는 게 미칠 일이다. 

오늘 아침에는 약지 손가락 손톱 위에 올리면 거뜬히 덮을 만치 자란 작은 녀석이 한 마리 죽었다. 제법 붕어꼴을 갖췄는데 나빠진 수질과 수온에 적응을 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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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천죽

몇 해동안 키가 자라기만 했다가 금붕어 어항에 꽂아준 뒤로 새싹을 여럿 내었다. 

금붕어 어항에서 질소 성분을 공급받기 때문인 듯 하다. 그동안 새 순을 내지 않았던 것이 영양의 부족 때문이었음을 제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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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금천죽

몇해전 아마도 5년전쯤, 4~5촉을 샀던 것 같다. 2촉을 회사에 가져가 키우다가 1촉은 뿌리 부분에 상처가 나서 그 부분이 썩으면서 전체가 썩으면서 죽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머지가 키가 많이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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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춘란 (위)

잎사귀만 무성하다. 꽃은 몇 번 보지 못했다. 처음 촉은 1997년에 군산기상대에 근무할 때 몇 촉 얻은 것이었다. 그 이후에 번식하여 촉을 나누다가 집에서 몇 촉 키우고, 그 중에 또 내가 몇 촉 가져오고 하여 엄청나게 번식하여 자랐다. 잎사귀가 무성하니 꽃이 필 법도 한데, 꽃은 잘 피지 않는다. 

꽃피는 조건과 잎사귀 잘 자라는 조건은 다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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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만손초(위)

징글맞게도 많은 자손을 낸다. 잎사귀의 돌기마다 새싹을 내고 그곳에서 뿌리는 내어서 어느 정도 자라면 아래로 떨구어 내어 번성한다. 물론 꽃도 피운다.

워낙 많은 자손을 내는 것이라 그 중에 하나만 자라도 다시 번성한다. 

이 녀석의 이름을 몰랐었는데, 친구가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 였는지, '만손초'라고 일러주어서 알게 되었다.  

다육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mother of thousand'라고 말하던데, 그때는 그 말을 못알아 들었었다. 그냥 잎사귀에 새끼들을 많이 붙이고 있다는 정도로만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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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위)

꽃대 옆에 새 촉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흰꽃이 핀다. 이름은 모르겠다. 익산집에 있길래 새촉을 몇 개 가져다 심은 것이 또 무지막지하게 많이 번성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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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익소라

가을을 타고 있다. 겨울을 겪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을 내게 심각하게 일러준 식물이다. 

겨울. 

겨울.

열대지역에서 온 녀석이라 겨울에서 잎사귀를 떨구지 않은 나무인데, 겨울에 얼지 않게 하더라도 약간은 춥게 해야한다. 추위를 겪지 않으면 꽃눈을 만들지 않는다. 자연은 참 이상하다. 

자신의 자손을 잘 퍼뜨리기 위해서 최적의 조건을 찾는데, 그것은 겨울을 나고 나서 긴 여름이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겨울이라는 스위치가 한번 이라도 켜지지 않으면 꽃대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내게 5년동안 보여준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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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호접란

꽃은 거두어 갔으나 꽃을 기다리며 키우고 있다. 같이 들여온 5촉이 넘은 녀석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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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서양 채송화

아침마다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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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양채송화

화분에 2촉이 심어져 있다. 분홍꽃이 피는 녀석과 노란 꽃이 피는 녀석이다. 

처음엔 한 뿌리에서 난 녀석이 2가지 색상의 꽃을 피우는 줄 알고 신기해 했었다. 줄기끝을 따라서 뿌리로 더듬어가 보니 2~3촉이 함께 심겨진 것이었다. 몇 개의 개체가 서로 얼기설기 엉켜 자라서 한 녀석처럼 보였던 것이다. 콩두언니가 선물해 준 것이 우리집에서 한해를 넘겼다. 뿌리가 얼지 않게 두었더니 올해엔 잎이 무성해져 다시 꽃이 피었다. 그런데, 꽃이 작년보다는 작아보인다. 나는 잘 크라고 나름 애를 쓰는데 꽃송이는 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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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갈랑코에

작년에 들여놓은 녀석. 꽃이 진 자리를 잘라내서 전체적인 모양이 안 예뻐졌다. 올해에도 꽃을 많이 볼까 기대했는데, 새로 꽃대를 내는 것은 적었다. 나는 꽃을 봤으면 하는 데 이 녀석은 올해엔 잎사귀를 늘리고 키우는 데 주력한 모양이다.

꽃에 집중할지 잎사귀를 늘릴지.....그런 걸 어떻게 알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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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오렌지쟈스민

샀는지 받았는지 기억이 없다. 화분에 대한 기억들이 뒤죽박죽 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사라지니까.

내가 5년이상 키운 오렌지 자스민을 콩두언니에게 선물하고 나서, 내가 하나 구입한 것인지, 아니면 선물을 받은 것인지, ... 그 전말이 기억에서 사라졌다.

향이 무척 좋다. 꽃이 하나만 피어도 집안이 온통 난리다. 사랑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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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황국

작년에 꽃 피었을 때 들여오고 우리집에서 겨울나고 이번에 다시 꽃이 피는 녀석이다. 

대국은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작은 소국도 아닌 적당한 크기의 꽃송이가 생기는 녀석.

잎사귀 자체도 냄새가 좋다. 

제대로 지지대를 하지 않아서일까, 아님 햇볕따라 제멋대로 자라는 녀석이라서 그런 것일까? 줄기가 완전히 제멋대로다. 묶어주었지만 그래도 난리다. 영화 '취화선' 속에 장승업이 마당에서 같이 살던 여자에게 그림그려주는 장면이 나오는 데 가을마당이었다. 국화줄기를 묶은 단이 있었다. 원래 너풀거리며 크게 줄기가 자라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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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난 (위)

흰색의 꽃이 피는데 지금 꽃대를 올리고 있다. 종류는 모르겠다.

금붕어 어항 간 물을 틈틈이 주어서 그런걸까? 햇볕을 잘 봐서 그런 걸까? 꽃이 오랫만에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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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넝쿨장미 (위)

작은 화분에서 넓은 땅으로 옮겨 심어주겠다고 약속하고서는 아직도 실행하지 못해 미안한 녀석이다. 우리집에서 겨울을 나야 할 듯 하다. 꽃송이는 작지만 향이 무척 좋다. 

 

아, 그러고 보니 내 꽃취향, 꽃송이가 무지 크고 화려하거나 향이 기막히게 좋은 것.


작년에 칼럼과 리뷰쓰기 잘 하고 싶다면서 집에 들인 것인데 쓴 것들은 없고 화분만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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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물옥잠(부레옥잠)과 18) 물배추

저 멀리에서 택배상자로 올라온 녀석들이다. 연못을 하시는 대구분께서 자신의 연못에서 잘 자란 녀석들을 보내주셨다. 

우리집에서는 햇볕을 잘 보지 못해 고생이다. 금붕어들에게 먹이로 뜯기고, 햇볕 부족으로 크게 자리지 못하고 있다. 

겨울을 나게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햇볕이 무척 중요한 녀석들이다. 광량이 부족하면 잎사귀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부력을 만들지 못하고 물에서 녹아버린다. 

 

이중에 하나라도 살아 남는다면 내년에는 번성할 듯 싶은데, 이건 기본적인 환경이 맞나 안맞나를 알 수 없으니 몇달이 지나봐야 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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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케일 (위)

잎사귀 무성하다. 키워먹겠다는 심사로 싹을 틔워 옮겨 심었는데 엄청나게 자랐다. 

내가 먹는 것보다도 배추 애벌레들이 먼저 시식해서 좀 곤란하다. 애벌레는 보이는 족족 잡아다가 금붕어 특별식으로 던져두었다. 물론 금붕어가 응가를 싸면 이 녀석들에게도 나눠준다. 질소 비료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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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토마토

이미 다른 녀석들은 다 치워버렸는데, 이 녀석은 열매 달고 있다고 그래로 두었다. 여기에다가 벌레 먹거나 혹은 뭔가 흠이 있던 토마토를 거름이 되라고 묻었는데, 거기서 싹이 나서 자라버렸다. 

왜? 묻기만 하면 이렇게 나버리는 거야? 

거름 되라고 묻었는데 어쩌자고 이리 된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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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쌈 야채 중에 하나인데 이름은 모르겠다. 봄에 사다가 심었는데, 맛이 써서 그런지 벌레들이 덤벼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란다. 잎사귀 모양이 성질을 다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삐죽삐죽한 녀석들은 맛이 아주 쓰다고 한다. 실제로도 아주 쓰다. 그래도 나도 가끔만 먹는다.

나도 이렇게 모양이 삐죽삐죽한 녀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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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치커리

씨앗 뿌려 키운 쌈야채. 이 녀석도 모양이 자기 성질 다 보여준다. 

쌉쌀한 맛 때문인가 이녀석도 벌레가 벌레 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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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피망.

여름철 피망 잘 먹었다.

남들 다 죽어가는 마당에 꽃을 피운다. 양지로 들여서 겨울을 나게 해야 하나, 그대로 마르게 둘까 생각하게 한다. 

나무니까, 내가 뽑지 않는 한, 서리가 내리지 않는한  살아 있을 녀석인데.

 

 

* * * 

내 손에 의해 우리집에 들어왔지만, 살고 번성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듯하다. 내가 키워서 꽃을 보려 했던 것도, 키워서 열매를 먹으려 했던 것도 이 녀석들은 모를지도. 관상 혹은 식용으로 집에 들였지만, 이 녀석들의 삶은 그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자라고 번성하고, 그리고 겨울을 나고 또 자라고 번성한다. 


내 손이 잘 키운거라 착각했다.  그러나, 나와는 상관없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고 자란 녀석들이 많아서, 이 녀석들의 꽃과 번성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겠다.

생명은 원래 그런 것인가보다. 우리집 금붕어들이 미친듯이 암수가 쫒고 쫒기고 하며 알을 낳고 번성했듯이, 이 식물 녀석들도 때때로 꽃을 내고, 때때로 조건이 괜찮아지면 새 촉을 내고, 때때로 잎을 키우고, 또 꽃을 피워 벌레를 불러들였다. 그것들은 자신의 본성이고 자신의 본래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본래의 힘으로 그러한 것을 나는 내 집에 있다고 내 것인양 착각했다.


내 인생에 들어와서 장기적으로 있는 것들. 금붕어, 난 화분, 책, 그림, 친구, 동료,.....

내가 키워온 것들이라 착각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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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4 08:13:56 *.175.14.49

7)은 접난(나비난) 같아요. 오션? 인 것도 같구요.

15) 김기아난

21) 레드 치커리

주신 오렌지쟈스민 말려 죽여버렸어요. 어째요? 미안합니다.

참 잘 기르시네요. 채송화도 저는 그해 바로 죽이고, 올해 다시 들였지만 못 기르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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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4 12:17:47 *.131.89.46

오...이름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오렌지쟈스민 괜찮아요. 나중에 또 분양해 드릴께요.

우리집은 햇볕이 잘 들어서 그냥 잘 자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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