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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8일 08시 37분 등록

나는 부모님을 실망시키거나 놀라게 할 만한 특별한 사고 없이 무난하게 커온 3남매의 첫째 딸이다. 12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무난’하게 살았이 무난이란 단어의 의미는 남들과 같다 혹은 비슷하다는 것이다하지만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계약을 체결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보험영업을 선택했을 때내 인생에서 무난의 시대가 끝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만약 일반 직장생활을 했다면 매 달 받는 월급으로 적당한 문화생활을 하면서 최소한의 저축이라도 해가며 살았을 것이고직장 생활 5년동안 어느 정도의 돈도 모았을 것이다하지만 현실은 영업을 위해 각종 커뮤니티 활동과 고객 등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쓰는 돈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신 술값과 택시비 등으로 오히려 매달 카드 결재액이 점차 늘어났고, 월급이 카드 값을 메우기에 턱없이 부족한 달이 많아졌다가입해 두었던 보험에서 대출을 다 끌어 쓰고카드 돌려 막기에 이어 결국 연이율 40%대에 육박하는 대출까지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카드사들의 독촉과 함께 우울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계속 무난하게 살거라 믿었던 큰 딸에 대한 엄마의 신뢰가 깨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 2011 12월부터였다.


때 맞춰 5년간 헌신한 회사에서 영업실적이 저조함을 이유로 해고당했고내일 모레 서른을 앞두고 망망대해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표류하는 한 조각 배처럼 인생에서 방황의 시기를 맞이했다타고난 인맥 덕분에 일을 그만두거나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어도 계속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하지만 1년간 회사를 다섯 군데 정도 옮겨 다니다 마지막은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갔다당시 엄마는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하고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는 딸이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 엄마 때문에 나의 우울증은 더욱 심각해졌다사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못마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자격지심이 스스로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음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달았다.


표류하고 있던 2년의 시간동안 계속 술을 마셨고담배를 피었고우울했다우울함을 잊기 위해또 술을 마셨고삭히지도 끄집어 내지도 못한 채 내 안에서 계속 곪아가고 있던 분노는 담배 연기에 실려 사라진다고 믿었다밤마다 술 마시고담배피고,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 걸까도대체 아무 쓸모도 없는 나란 인간은 이 세상에 왜 태어나 이런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괴롭고힘들어서 차라리 죽는 게 사는 것보다 편하겠다는 생각을 매일 했지만차마 죽을 용기는 없었고가슴 깊숙한 곳에 있던 분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눈물로 죽지도 못하는 내 신세를 한탄했다.


이런 내 상태를 때때로 아니 사실은 자주 SNS에 올렸다우울함을 한껏 녹여낸 문장들과 매일 밤 마시던 맥주 사진을 통해 몹시 불안한 내 상태를 감지한 사샤 언니가 어느 날 나를 불러냈다언니의 도움으로 나는 내가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던 순간이 평생에 단 한 번도 없음을더 솔직히 말하자면, ‘행복한 척하며 살아왔음을 2012년 6월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때부터 우울증과 이별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사람의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일반적인 심리상담으로 우울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최소 몇 개월부터 몇 년까지 꽤 오래 걸린다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물질의 발전뿐만 아니라 심리 상담으로 대표되는 심리치료 기법도 다양하게 만들어 냈다이런 기법들을 접한 사샤언니와 Simple & Clear 에너지 코치인 현정언니의 도움으로 꽤 빠른 시간-한 달 반 정도-동안 30년 가까이 살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 속에 쌓인 내가 가진 건강한 혹은 건강하지 못한 생각들을 알게 되었고기억과 몸의 구석구석에 축적되어 있던 다양한 감정들을 토해낼 수 있었다그리고 담배를 핀 지 11년만인 2013 5월에 분노의 감정을 담배연기로 풀어내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되었다하루에 담배 피는 양이 2-3개피로 많이 줄었으나담배를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여전히 습관적으로 피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뭐랄까담배의 노예가 아닌 담배의 친구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담배와 좋은 친구로 잘 지내던 2013년 겨울일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해 제주도로 3달간 도망쳤다제주라는 새롭고 낯선 공간에서 잘 쉬며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더욱 밝고 즐거운 마음으로 활기차게 일 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마음 편한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2013 12 24일 한라산 등반을 마지막으로 제주도 생활을 마치고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왔다하지만 갔다 오면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와 믿음은 복귀하자마자 산산 조각이 나 버렸다카페 운영과 프로그램 기획의 두 가지 일을 하는 일상으로의 복귀는 나를 매우 산란한 상태로 만들었다손님은 많지 않았지만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작업을 하며 계속 손님이 오거나 있던 손님이 나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출입구 쪽을 확인했다.


… 정말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어도대체 뭐가 문제지나는 제주도에서 충분히 쉬고 왔는데왜 돌아온 나의 일상은 그 전보다 더 힘든거지?’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의문을 품은 채나를 둘러싼 환경 너머 내 상태를 근본적으로 바꿔줄 무언가가 간절하게 필요했다그러던 중, 2014년 3월에 덕천을 따라 도봉정사 서울정맥선원의 법회와 명상 시간에 참석하게 되었다.


50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는 50분의 시간동안 나는 지금껏 알지 못한 고요함을 맛보았다명상 시간은 마치 짠 바다가 전부인 곳에서 여러 달을 헤매다 만난 맑은 물 한 모금 같았다이 때부터 매주 화요일 법회와 법회 후에 있는 30분의 명상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하려고 애를 썼다두 달 뒤인 5월부터는 서울정맥선원에서 운영하는 한국명상요가센터의 명상요가를 시작했다두 번의 명상요가 수업과 한 번의 명상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늘 어제보다 몸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한결 가벼워지고 건강해진 느낌을 들았다.


이런 건강함을 느낀 지 두 달이 지난 7월이 되자술과 담배가 맛이 없어지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바람바진 고무풍선처럼 쪼그라든 듯한 폐를 느끼며 오늘은 한 대도 피지 말아야지하고 결심하지만어느 새 내 손에 들려있던 담배 한 개비. 언젠가는  끊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절대 못 끊을 것 같았던 담배를 저절로 끊게 되었다정말 맛이 없어’ 필 수가 없었다아니 피기 싫어졌다거의 매일 마시던 맥주하루 밤에 맥주 500cc 10잔은 거뜬히 마시던 내가 500cc 두 잔에, ‘그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평소 나와 술을 즐겨 마시던 친구 강위는 이 얘기를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우울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


이 질문을 듣는 순간 왠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주변의 많은 이들의 도움을 통해 우울과 멀어지며 조금씩 좋아졌으나 그 상태에 머무르거나 계속 나아지는 게 아니라이전의 모습들로 더디게 돌아가곤 했음을 깨달았다. ‘우울이란 습관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담배와 술을 완전히 끊지 못한 것도 어쩌면 그런 상태의 증거였다잠시 후에 내 입에서는 이런 대답이 나왔다.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아니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뭐랄까제주도로 3개월 쉬러 가기 전의 는 작은 빨대를 하나 꽂아서 겨우 숨을 쉬며 살았는데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요가와 명상을 통해 작은 빨대로 어렵사리 숨을 쉬고 있던 나'였음을 알게 되었고지금은 그 빨대가 아닌 엄마 배속에서 막 태어나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상태로 점차 돌아가고 있는 게 느껴지거든그러니까, 우울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제는 돌아갈 수가 없어.”


나를 둘러싸고 일어난 모든 상황들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는 끊임없이 상처를 받았다아니 너는 도대체 왜 이렇게 생겨 먹었냐,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니가 그렇지 뭐.’ 이런 생각들로 늘 스스로를 꾸짖고부끄러워하고비웃으며 계속 상처를 만들어 냈다. 이 상처들은 우울을 통해 술과 담배그리고 눈물로 이어졌다거의 매일 반복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물론 이런 우울의 상태에 빠지기 전에 20년간 우울한 아버지를 보며 자라온 나였기에, 나는 절대 우울증 따위 모르고 살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어느 한 순간에 나는 이미 우울의 늪에 깊이 빠져 있었다.


다양한 심리 치료를 받는 동안 가장 나를 많이 괴롭혔던 것은 내가 태어난 직후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울하게 살다간 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아버지와 비슷한 상황과 감정들을 겪으며 비로소 그 때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나는 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나아빠에 대한 미운 마음을 접고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더라면..’하는 생각을 하며 뒤늦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진심으로 후회했다. ‘내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아프고 불쌍한 인간이야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상처 받기 싫어 만나는 모든 이들을 향해 고슴도치처럼 있는 힘껏 가시를 세우며 살아왔고내가 세우고 있던 그 가시에 가족을 비롯해 주변의 많은 이들이 찔려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내게 일어난 수 많은 일들을 하나씩 겪을 때마다 가시는 하나씩 늘어났고가시는 마치 주홍글씨처럼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낙인을 찍으며 나를 병들게 만들고 있었다가시들의 실체를 확인하자 몇몇의 가시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마음이 한결 편해졌으나여전히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여전히 나를 찌르는 가시들은 남아 있었다.


제주에서 보낸 3개월의 쉬는 시간이 남은 가시들을 제거해 주지는 못했다다만 잠시 잊게 해 주었다그러나 결국 일상으로의 복귀는 잊었던 가시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이제는 진짜 뿌리뽑고 싶다고 느꼈을 때명상요가를 시작했다명상요가는 내 숨통을 조이고 있던 가시들을 서서히 녹여주었다깊숙이 박힌 가시의 뿌리까지 계속 녹여가고 있다그래서 이제 나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는다른 상태의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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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15:57:43 *.196.54.42

참으로 치열하게 사셨군요, 그 세월을 견디고 승화시켜 새로운 미나님으로 거듭나신것 축하합니다^^

비온 뒤 땅이 더욱 단단해지듯 님의 심신이 더욱 강해졌을 테지요.

진솔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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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9 16:02:32 *.11.240.230

하하.. 이렇게 쓰고보니 치열하게 산 것처럼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어느 정도는 치열하게 산 것 같아요. 말씀을 듣고보니. 진솔한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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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21:32:55 *.244.220.253

변화의 시작, 축하합니다.msn032.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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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9 16:02:58 *.11.240.230

감사합니당~!!! :) 정말, 이제 시작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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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1 10:29:37 *.91.137.74

멀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항상 너를 응원하고 있단다~

변화의 시작... 쉽지 않겠지만 넌 해낼 수 있을거야.

넘어지면 그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면 돼~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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