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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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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31일 17시 09분 등록
선조는 명종(明宗) 임금의 4촌으로, 명종이 젊은 나이에 후사(後嗣) 없이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16세의 나이에 즉위했다. 선조는 세자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세자로써 받아야 할 국가 경영의 학습인 서연(書筵) 교육을 받지 못했다. 즉위하고서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붓글씨 쓰기와 시문을 읊는 것을 더욱 즐겼다. 실제로 선조는 역대 조선 왕들 중에서 최고의 명필로 손 뽑힐 정도다. 선조는 무관보다 문관을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문치주의를 확립한 중앙집권적 관료국가였지만, 선조 시대에는 심할 정도로 무관이 천시되었고 문관이 우대되었다.

1583년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선조에게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다. 주장의 골자는 군사 10만 병을 잘 훈련시켜 북쪽의 여진족이나 남쪽의 일본이 도발해 올 때를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조는 이이의 주장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평화로운 시기에 쓸데없이 곡간을 축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1년 후 율곡은 눈을 감았고 십만양병설도 함께 묻혔다.

당시의 조정은 ‘문무백관(文武百官)’이 아닌 ‘문문백관(文文百官)’의 시대였다. 문관들은 자신들이 앉을 자리가 부족하자 무신과 무관들의 자리까지 차지했다. 조·일 전쟁 발발 당시 전국 8도의 감사, 부사, 목사, 현령, 현감, 체찰사, 도원수, 순변사, 초토사, 초유사, 어사 등 거의 모든 관직은 문관과 문신들이 독차지했다. 당연히 이들 중 전투를 지휘해보거나 병법에 능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당시 조선은 ‘칼은 녹슬고 붓은 빛나는’ 시기였다.

선조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병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전쟁이 터진지 열흘이 지났을 때도 일본군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조선군의 방어 전략은 눈감고 코끼리 더듬는 식이었다. 일본군의 주무기가 조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은 돌격전과 백병전을 기본전략으로 삼았다. 또한 목 베기(首級)를 전공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순신과 조선수군이 대포 등 화약무기의 우위를 바탕으로 원거리 함포전을 기본전략을 삼고, ‘격침(擊沈)’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은 것과는 정반대다. 당연하겠지만, 총 앞에서 칼로 폼 잡는 것은 가장 확실하게 죽는 방법이다.

일본군에게 조총이 없었다고 해도 백병전에서 조선군은 전혀 유리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일본군은 100여 년에 걸친 일본통일전쟁을 통하여 다듬어진 정예군이었던 반면에, 조선군은 전쟁 경험이 거의 없었다. 장수의 수준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선봉대를 이끌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 그리고 구로다 나가마사는 전투가 놀이처럼 친숙한 인물들이었다. 그에 반해 조선군 사령부는 거의 전부가 문신(文臣)들이었다. 다음은 선조실록 1592년 4월 17일 기록이다.

좌의정 류성룡을 도체찰사에, 우의정 이양원을 경성도검찰사(京城都檢察使)에, 박충간을 도성검찰사에, 이성중(李誠中)을 수어사(守禦使)에, 정윤복(丁允福)을 동서로호소사(東西路號召使)에 제수했다.

모두가 문신들이다. 일본군의 북진이 거듭되는 긴박한 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에는 문신들뿐이었다. 그나마 조선 최고의 장수로 꼽혔던 이일과 신립 장군은 모두 대패하여, 이일은 몸을 숨겼고 신립은 탄금대에서 전사했다.

이양원과 박충간은 서울 방어의 책임을 맡았는데, 이들은 한강의 수운(水運)은 커녕 수전(水戰)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일본군이 서울을 함락하기 위해서는 한강을 건너야 했다. 이양원 등이 이끄는 조선군은 최후의 보루인 한강을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1592년 4월 29일 한강방어의 책임자로 임명된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은 한강 건너편의 일본군을 보고 싸움을 포기했다. 그는 화포를 비롯한 군기(軍器)를 강물 속에 다 집어넣고는 사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도망쳤다. 부원수 신각(申恪)은 도성 안으로 들어가 이양원에게 한강을 지키는 군사가 이미 흩어졌다는 말을 전했다. 이양원은 도성을 지킬 수 없는 것을 알고 성을 버리고 양주로 후퇴했다. 이런 이유로 일본군은 한 번의 전투 없이 서울을 장악했다.

5월 16일, 신각은 해유령(蟹踰嶺)에서 일본군을 급습해 개전 이후 조선 육군의 정규군으로써 첫 승리를 이뤄냈다. 해유령에서 매복 중이던 신각의 군대는 조선군에 대한 경계를 전혀 하지 않은 일본군을 신각의 명령에 의해 일제히 활을 쏘면서 기습공격을 퍼부었다. 일본군은 기습에 놀라 우왕좌왕하면서 도주하려 하였으나 완전 포위된 상태에서 70여 명 전원이 섬멸되었다. 신각은 조정에 승전보를 보내고 이양원과 함께 연천 부근의 대탄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한편 도망갔던 도원수 김명원은 한강 방어선 붕괴에 대한 조정의 문책을 두려워하여 조정에 장계를 띄워 ‘신각이 명령을 듣지 않아 패했다’고 거짓 보고를 하였다. 분노한 선조는 이 장계를 믿고 신각을 군법으로 다스리도록 선전관을 보냈다. 하지만 선전관이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신각의 승전보가 조정에 도착하였다. 선조는 다시 신각의 목을 베지 말도록 선전관을 급파하였으나 선전관이 현지에 도착하기 전에 신각의 목은 베어졌다. 이 대목을 보면, 전투에서 도망친 장수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전투에서 이긴 장수를 잘못된 정보만 믿고 한 번에 처형하는 꼴이 가관이다.


소설 ‘시인과 사무라이’의 작가 김성한은 소설의 제목을 시인과 사무라이로 정한 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소설 제목에 나오는 시인은 선조, 사무라이는 도요토미를 상징합니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 일본은 무(武)를 숭상하는 나라로 극명하게 대비되지요.” 또한 그는 조·일 전쟁 당시의 조정(朝廷)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국가의 존망에 책임이 있는 조정은 적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도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지요. 패망 직전의 나라를 구한 것은 소수의 유능한 장수들과 민간에서 일어난 다수의 의병들이었습니다.”

조·일 전쟁에서 첫 승리는 옥포해전으로 1592년 5월 4일 이순신과 조선 수군에 의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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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08.01 12:57:25 *.247.50.133
총 앞에서 칼로 폼 잡는 것은 가장 확실하게 죽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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