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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 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넓디넓은 퀭한 사무실에 의자와 책상들만 덩그렁히 나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를 바라보는 사업자의 시선에서 부담감이 묻어 나왔다. 아무래도 본사 직원을 불러놓고 고객초청 행사를 하는 터이기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녀는 보험회사 경력을 바탕으로 방문판매 업종 전환을 하여 몇 년간 일을 하였다. 평택인 집에서 부천까지 출근하는 열정을 보이며 팀장으로 승진도 한 끝에, 이제는 자신의 이름으로된 사업자의 명함을 가지고 싶은 염원이 있었다. 하지만 일이 꼬인다고 공무원인 남편이 마침 지방 발령 통보를 받는 시점과 그 꿈이 겹쳐졌다.
고민이 되었다.
현재 살고 있는 터전에서 사업을 벌이고 싶고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그러자면 주말부부로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이들 교육문제도 염려가 되었다.
혼자만의 욕심을 부릴 수는 없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함께 동행을 하여야 했다.
전혀 생소한 타 지역으로 이사가 사무실을 구하러 다녔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떡해야 하나. 상의할 곳도 마땅찮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서울 인접지역 보다는 월세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
발품을 팔아 헤맨 끝에 임대계약을 하였다. 월세 30만원.
넓었다. 그러기에 무엇으로도 이 공간을 채워야 했다.
사물함과 가구를 들였다.
최소한의 인테리어를 하였다.
이제 사람만 채우면 되었다.
사람만…….
며칠 지나다보니 이곳 사람들의 특성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배타적인 성향으로 낯선 사람들을 반기지도 않을 뿐더러 친절하지도 않은 점을.
택시를 타도, 시장에 물건을 사러가도, 음식점을 들어가도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무뚝뚝하여 왠지 수도권과는 괴리감이 있어 보였다.
틈새를 찾아 도전을 하였다.
그녀의 장기인 환한 미소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싹싹하게 인사를 하며 명함을 건네었다.
건물 주인에게, 달인 칼국수 집에, 영희네 떡볶이 집에, 깐느 미용실에, 빛난다 세차장 등등.
인맥형성을 위해서 라이온스 클럽에도 가입 신청을 하였다.
깍쟁이라고 오히려 배척당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이곳에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은 그들에게 이처럼 먼저 마음 문을 열고 다가서는 것이었다.
혼자 사무실을 지키던 그녀에게 한 달이 되어 갈 즈음 드디어 연배가 비슷한 친구 한사람이 생겼다.
딱해 보였는지 건물 주인이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도 소개 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재직하는 같은 동 아파트 한사람을 행사일 대동 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녀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인 이곳에서 내가 방문한날 세 명의 고객이 참석할 수 있었다.
광활한 사무실에 조촐한 인원을 앉혀놓고 하는 교육은 사실 김빠질 수가 있었지만 나는 그런 내색을 보일 수는 없었다. 멀리 이곳까지 아무 연고도 없이 와서 새로이 영업을 시작하는 그녀도 있는데 그런 사람 앞에서 내가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성의를 다하였다. 열성을 다하였다.
그것이 그녀의 사업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성공을 위해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길이었다.
한 시간 삼십 여분의 강의가 끝나자 난로를 피워놓은 사무실 안의 후덥지근함과 함께 후줄근 이마에 땀이 흘러 나왔다.
“오늘 수고 하셨습니다.”
“수고는 이부장님이 하셔놓고…….”
미안한 마음에 한마디를 거드는 그녀를 바라다보았다. 작달만한 키에 별다른 카리스마도 없어 보이는 그녀가 무슨 똥배짱으로 이곳까지 와서 영업을 시작 했을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이기에 어찌되었든 함께 고민을 하여야 했다.
“사장님 신분 이지만 아무래도 예전 필드에서 뛰던 그때의 느낌과 경험을 살리는 것이 현재의 최선책 이라고 봐요. 사무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있을까요.”
“시장이 있어요.”
“잘되었네요. 처음 영업생활 시작할 때처럼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는 시점까지는 먼저 그곳을 타깃으로 하여 직접 두발로 뛰셔야 할 것 같아요. 어깨띠 두르고 샘플 작업 및 개별 매장을 방문해서 인사하는 등 홍보를 시작 합시다. 단,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아시죠?”
강의 현장에서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연말 시상식시 판매 여왕으로 무대 위에 올라 때깔 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분이 계시나요. 혹은 최고의 사업자로 선정되어 유럽 해외시상 등의 기회를 차지하고 싶은 분은요. 그렇다면 쉬운 방법이 있는데 알려 드릴까요.”
사람들은 귀를 쫑긋 거리며 반응을 보인다. 그런 방법이 있다는데 어느 누가 관심이 없을까.
“몇 년 매출 올릴 계수를 오늘 당장 한꺼번에 몰아서 주문서를 작성 하시면 됩니다. 그럼 언제라도 시상을 탈수 있습니다. 단, 수금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는 못하겠지만.”
에이~ 라는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영업에 있어서도 한 번에 매출이 대박이 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조금씩 자신의 땀으로 직접 밭을 일군 결실이 쌓여야 만이 기대하는 성과가 올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잊지말아야할 부분은 힘들더라도 한발 한발 내딛는 지속성이리라.
매주 한 번씩 과정 점검차 전화통화를 나누었다.
“어떠세요. 계속 홍보 활동은 잘하고 계신가요.”
“네. 매주 전단지와 샘플을 뿌리는 작업을 두 달째 하고 있고요 금주는 처음으로 이틀 동안 행사를 하였는데 나름 성과가 있었습니다. 첫날은 세 명이 왔었고 둘째 날은 일곱 명이 참석을 하였어요.”
나는 브라보 라고 외쳤다. 어떻게 인원동원을 하였지? 물론 그 참석자들은 그녀가 그동안 뿌려댄 수백 장의 홍보 전단지를 보고 온 것이 아닌, 이곳에서 안면을 튼 분들의 연줄에 의해 모인 사람들 이리라. 그렇기에 실망을 할 법도한데 그녀는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중요한 명제를 알고 있는 터였다. 씩씩하게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는 이런 그녀가 대견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기도 하였다. 잔 다르크가 아닌 이상 어느 시점이 되면 그녀도 지치고 힘이 빠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필요한건 어떤 점일까.
<제리 맥과이어>란 영화를 보면서 하나의 Key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잘나가던 주인공이 회사에서 쫓겨나 모든 것을 잃은 스포츠 에이전트(톰 크루즈)로 등장한다. 자신이 관리했던 모든 스타들의 명단을 친구에게 빼앗기고 그에게 남은 사람은 변변찮은 실력과 돈만 밝히는 무명의 풋볼선수 한 명뿐. 미래를 알 수 없는 가운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승부수는 대중의 관심이 없는 초라한 고객 한명을 어떻게든 성장 시키고 띄우는 방법 이었다. 같은 처지로써 동병상련의 심정과 절망 속에서 그는 그와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어 나가는 작업을 하였다. 언쟁이 있으면서도 서로의 허물을 털어놓는 친구사이로까지 발전을 이어 가던 중, 결국은 슈퍼스타로의 발돋움으로 향해져 그 역시 함께 재기에 성공하는 결말로 내용은 끝을 맺는다.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그녀에게도 자리매김 작업을 마음으로라도 함께 하는 누군가의 손길이 아마도 요청되리라.
에이전트와 선수의 관계만이 아닌 동반자가 되어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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