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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6일 13시 03분 등록
3월의 첫째날인가 이제 한국나이로(한국에서 세는 나이가 매우 행정편의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나이를 말할때 항상 맘속으로 곤혹을 겪는답니다.) 4살난 첫째 아이가 1밤 10시경에 평상시에도 자주하는 말을 내뱉았다.

" 엄마, 졸려"
" 졸리면 자면 되지" 라고 애 엄마가 대답했다.
물론 나도 여태까지 동일하게 아이에게 대답했었다. 심지어 아내와 나는 아기들이 잠자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심리적 판단을 나름대로 내리며 우리는 잠자는 시간이 그렇게도 좋은데라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이와 아내의 그 짧은 대화를 제3자의 입장에서 듣던 순간에 깨달음이 섬광같이 다가왔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그 깨달음이 어떤 건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나에게는 엄청난 깨달음이었고 재인식이었다.

그것은 가슴으로 듣기 즉 경청이었다.
나는 경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아이가 "엄마 졸려"라고 이야기한 것은 단순히 졸린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엄마랑 같이 방에 누워서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 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이 깨달음을 바로 아내에게 알려주었더니 아내도 나의 의견에 100% 동의하였고 자신도 깨달음을 얻었는지 바로 아이에게 "엄마랑 같이 눕자는 이야기였어"라며 아이를 안아 방에 데리고 갔다.

일상생활에서의 경청의 깨달음, 가슴으로 듣기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고 실천한다고 자부했고 다른 사람에게도 간혹 기회가 되면 말했던 내가 우리 아이의 한마디를 여지껏 흘려 보냈던 것이다.

아이의 한마디 "엄마, 졸려"가 나에게 큰 감동과 깨달음을 준 그날을 소중히 기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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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6.03.18 22:27:20 *.77.164.161
성민님의 글을 보니 저도 생각나는 게 있네요.
고등학교때 친구가 편지에 써준 것이었는데,
'아름다운 청력'이란 글이었습니다.

요지는 같았습니다.
'나는 니가 미워', '라는 의미가 '나는 네가 무관심해서 슬프다.'라는 말로 들릴수 있는 청력을 가지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질까라는 글이었죠.

표현되는 게 다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표현되는 말에 바로 반응하게 됩니다.

가슴으로 듣는다는게,,,,참 쉽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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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영
2006.03.23 03:00:20 *.84.254.206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정말 중요하고, 대화의 기본인데.
실천이 참 어렵죠. ^^;;;

성민님의 글 읽으면서... 저도 크게 한방 먹고 갑니다. ^^
좋은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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