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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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을 더 빛나게 한다. 2013.07.01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늘 다가온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삶에서 일들은 닥쳐오거나 끊임없이 일어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나와 가까운 남편, 자식, 부모님이나 형제나 친구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이 생김으로써 영향을 받으면서 산다. 특히 우리처럼 동양사회는 더더욱 그러하지 않던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다보면 누구나 겪는 일일 것이다. 갑작스런 부모님의 암선고와 함께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리고 몇 년 사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들을 보면서,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대학시절에 10여권이 넘는 측천무후를 읽은 적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죽이는 방법들에 관한 이야기들뿐이다. 사기(史記)에서는 목을 베든가, 삶아 죽이든가, 허리를 잘라서 죽이든가. 생매장 해서 죽이는 것들이 나왔는데, 측천무후는 사지절단해서 똥통에 넣어서 죽인다든가, 사람으로 젓갈을 담아서 먹는다든가 더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죽였다. 그때 떠올랐던 생각이 사람이 아파서 죽는 거나 자연사 하는것도 복福일수도 있겠다 하는 철없는 생각도 했었다. 한달여동안 읽으면서 꿈에 사람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악몽에 시달렸던 기억이 난다.
사마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죽음보다 더한 형벌을 감수하고서라도 살아생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고독한 시간을 그렇게 보냈으리라. 어느 누구 하나 자신을 찾아주지도 변호해주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몫으로 자신의 형벌을 감수하고, 오로지 살아있는 이유는 붓으로 사기를 남긴게 아니라 피로 쓴 글이라 했다. 그는 그렇게 갔다. 하지만, 2000여년전이 지난 지금 한 사람의 피로 쓴 글 덕분에 후대인들이 읽고 곱씹어 보면서 잃어버렸던 마음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마천의 구우일모’(九牛一毛) 정신을 조금이라도 맛을 보았다면, 살아있어서 자신의 할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값진 일인가.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되돌아봤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려고 한 사람이다. 그러면, 나와의 약속을 남발하거나 부도 수표를 발행해서는 안될 것이다. 살다보니, 말이 많이 필요할 때가 없었다. 남을 가르쳐야 하는 직업이기에, 혹은 만나서 정보를 제공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비지니스 외에는 그리 말이 많이 필요치 않음을 알았다. 약속은 입술로 하는게 하니라 행동으로 실천으로 하는 것임을 알았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중의 하나임을 깨달았다.
지智 “사람을 아는 것이다.”라 한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 했던가. 그러나 겪어보고 살아보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도 태반이었다. 남을 알기 전에 자신을 알아가는게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가 사람을 아는 것이라면, 나를 끊임없이 탐험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삶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요즘 드는 생각이다. 모든 천지 만물이 변하듯이, ‘나’라는 사람도 조금씩은 변하고 있다. 변한다는 말은 내 본래의 모습을 찾아내고 그렇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내 속에 수많은 광맥들이 쌓여있는데,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무한한 잠재력을 캐내어 발현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남은 저절로 알아갈 것이다; 나를 모르기에 사람이라는 본성을 모르기에 실망도 하고 힘도 들고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서 좌절을 겪는 것이다.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聰’이라 한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갈 길을 안내할 것이다. 잠시 길을 잃고 헤맨다 해도 괜찮다. 다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귀를 기울이면 될 테니까. 삶이 헤맨다 해서 꼭 불필요한 시간 낭비라 생각하지 않는다. 헤매는 과정속에서 배움도 있을 테니까.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 나의 삶은 아침 눈뜨면서 새로운 나의 인생이 시작되고, 눈을 감으면서 내 하루의 삶을 마감한다. 나는 하루살이다. 나는 오늘만 산다. 누군가 나에게 생일을 물어오면, 바로 오늘이라고 답한다. 'Everyday is my birthday.' 하루의 삶만을 살기에 어제도 내일을 걱정하기보다 오늘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해야 할 일을 끝내면 된다. 약 4년전에 죽음을 약간 맛본적이 있기에,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면서도 언제든지 놓을 줄 알아야겠다고 느꼈다.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한다. 나의 경쟁상대는 남이 아니라, 바로 어제의 나다. 어제보다 내가 좀더 나아졌는지, 좀더 고양되었는지, 좀더 진화되었는지를 늘 살펴본다. 나의 두 눈이 남을 살펴보기에 앞서, 내 자신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내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다보면 남은 자연스레 들어오게 마련이다.
나를 사랑하면 남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요.
나를 알게 되면 남도 알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을 따르게 되면, 남의 행동도 이해할 것이요
내 자신이 성찰하다 보면, 남의 행동속에서 배우게 될 것이다.
내 자신을 이기는 것이 습관화화다 보면, 내 삶의 좋은 습관으로 살것이요.
죽음이 신이 어느날 찾아와 미소짓는다 해도
그날 나는 웃으면서 죽음의 저 너머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더 빛난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 더 든든하게
좀 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 먹고
해구신을 고아 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이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 년의 역사에다 당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 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 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 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