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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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사이로
나무뿌리 까치발로 세상에 고개를 내밀듯
내 무딘 감각의 두꺼운 송판 위로
바람과 인사하러 눈물로 흐르는 것은 자유였다.
정의되지 않은 지난 시간들이
한번도 오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을 맞을 것처럼
루카의 성곽위로 두발 동그라미를 굴리며
나를 스치는 것은 바람이 아닌 날개의 노래
열 시 방향에서 흐르는 아침 햇살을
초록의 이파리가 브런치를 먹는 느긋함으로 반짝이고
뻔히 아는 삶의 비의를 먼 곳까지 찾으러 왔다고
재잘거리는 수런거림이 가벼이 웃음을 보낸다.
파랑과 하양이 신묘하게 어우러진 그날의 하늘을 보며
오늘이 며칠인가 농밀한 현실감이 낯설게 어색하고
흐릿하게 수줍은 웃음 하나
마음의 배면에 그리움을 수 놓고 바람에 탕진 당한다.
여행은 어땠느냐고.....
바람이 분다.
그 기분 꽤 괜찮다고.....
빙그레 웃는다.
<2011년 8월 14일 루카의 성곽을 지나는 아침에>
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여행은 시를 쓰게 했다.
마음의 묘한 무늬가 사랑으로 중첩되고, 설렘으로 얽혀 들고 다시금 일상으로 해체되었다.
여행은 열두 폭 병풍처럼 현실을 가리고 나를 호위했지만 나의 일상은 더욱 도드라짐으로 삶을 그립게 했다. 낯선 풍광들이 끊임없이 눈과 마음에 놀람으로 들어오지만 바람에 구름이 흩어지듯 가벼움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소중한 일상들이 깨끗한 얼굴로 현실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가지고 나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낯선 감정과 소중한 일상들의 변주가 마음에서 시로 노래하고 있었다.
보고 싶은 것 이상을 보았다.
세상에는 오직 마음 때문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음을 확인했다.
피렌체에서 무수한 조각과 그림들을 만났다. 며칠이 지나지 않은 지금 각각의 이름과 얽힌 일화들이 벌써부터 가물거리지만 우피치 미술관 앞의 코시모가 내민 왼손이 위안처럼 나에게 다가왔던 것은 오직 나와 대상과의 관계에서만 발현되는 감격이었을 것이다. 대상에 몰입하고 그 대상 앞에서 근근한 나의 생이 겸허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내 마음 때문에 존재했던 순간이었다.
서울의 달과 루카의 달은 같은 달이지만 투란도트의 아리아가 울릴 때 나의 마음으로 흐르는 것은 단순한 달빛이 아니라 생의 무대 전체에 불어주는 삶의 환기였다. 오랜 장마의 끝자리에서 풀 먹인 이불 위에 드러눕는 상쾌함처럼 눅눅한 생의 숨구멍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일정의 피곤함은 졸음과 함께 이완되고, 삶의 경직은 루카의 달빛 아래에서 무딘 마음을 풀어 놓는다. 이 순간 감정은 충복된다.
여행은 차곡차곡 쌓인 상처와 애정들을 들추게 했다.
감춰야 안전할 것만 같았던 삶의 상처들은 여행과 만남을 통하여 드러내도 무고하다는 사실을 확인케 했으며 상처만을 상상하며 자책했던 지난 시간을 부축했다.
더불어 일상에 묻혀서 제 얼굴이 일그러진 줄 몰랐던 사랑은 진실을 포착한 탐정처럼 두 눈을 반짝거리며 생생함으로 다가왔다.
상처와 사랑은 마음 속에서 서로 내왕하며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더욱 명징케 했다.
여행을 하는 시간을 통해서 함께한 벗들을 통해서 내 안에 갖가지로 있는 또 다른 나의 얼굴과 잊었거나 잃어버렸던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대단한 무언가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한 켠에 두고 떠난 길이었지만 돌아오는 길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나의 일상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이었다.
소중한 것들을 일렬로 줄지어 서게 하고 그것 하나하나의 얼굴을 확인하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구분하게 하는 지혜를 얻었다.
감사하는 시간이었고, 그리워할 생의 한 대목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