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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노년 부부의 후일담.
남편 왈.
“비행기 타는 것도 힘들지. 거기다 버스 타고 이동만 하고 다리도 아프고 고생만 되지. 별다른 재미가 없어. 다시는 내가 나가나 봐라.”
아내 왈.
“좋은 것을 많이 보다보니 내가 왜 진작 밖으로 안다녔나 싶어. 세상사는 재미가 새록새록 나는 것 있지.”
평생을 함께 살아온 처지임에도 이렇게 의견이 다른 이유는 무얼까. 그리고 살아온 연륜이 깊어질수록 그 느낌의 강도가 남녀 간에 더욱더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가한 휴일 오후. 인파를 떠나 소담스러운 삼청동 골목길을 걷다보면 유럽에서나 봄직한 알록달록한 여러 카페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카페 촌이 있었나 여길 정도로 맛깔스러운 풍경들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와중 북카페 라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넉넉한 분위기 속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각양각색의 책들을 보노라면 심산유곡 절간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참좋다. 그중에 한권의 책을 꺼내어 그윽한 향기의 녹차에 몸을 맡기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다. 그러다 문득 나도 나이가 들면 이런 북카페나 차려볼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와 동시에 견적이 얼마나 나올 것이며 장소는 어디가 좋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라는 현실적인 무게들도 덩달아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우습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걸 보니 나도 이제 중년을 의식하는 나이가된 모양이다. 한 살 두 살 먹는 통에 어느덧 나와는 상관없던 먼 나라라고 여겨지던 정년퇴직이란 단어도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그런데 회사를 나오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뭘 해서 먹고살지. 걱정이네.
경제신문을 펼치노라니 ‘100세 新인류시대(Homo Hundred)’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특집 기사가 연일 연재되고 있다. 100세라? 그러보니 현재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이 82.4세 남성이 75.7세인 기사를 본적이 있다. 6년 정도를 여성이 더 오래 산다는 이야기인데……. 남성이 하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성은 그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또 다른 현실적인 요소를 찾는 경향이 있어서일까. 그래서인가 일반적으로 희로애락을 함께 하였던 부부가 한쪽이 사별하면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쉽게 닥쳐진 현실에 적응을 잘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뜨게 되면 대개의 남자들은 삶에의 커다란 의미와 존재감의 상실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이내 그 뒤를 따르는 반면, 여성들은 보란 듯이 꼿꼿하게 살다가 아직은 흔치않은 경우긴 하지만 황혼 재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무얼까. 여자가 오래 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것들이 의미하는 행간은 갈수록 노령화가 진행하는 현재 상황에서, 그 사회 일면의 주축의 몫을 중년 여성이 더욱 차지하고 그 주도권을 쥐게 되는 이야기로 귀결이 된다는 것인데 과연…….
1. 여성이 오래 사는 이유
태초에 신은 자신이랑 닮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래서 탄생된 인간이 아담이라는 분. 모든 이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작품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의 감탄사에 젖어들 무렵 무언가 모자란 것이 점점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손을 좀 더보아야 겠어. 역시 첫 시도라서 그런가. 무언가 부족해.’
다시 각고의 노력 끝에 업그레이드된 두 번째 인간을 만들어 내었다.
이브였다. 모든 이의 어머니라는 뜻.
단점들을 보완해서인지 역시 첫 번째 보다는 나아 보였다.
세심한 마음 씀씀이에다가 상냥하고 예쁘지 표현 잘하지 모든 것이 맘에 들었다.
거기다 여성의 신체는 남성보다 우월 하였다.
외형적인 골격과 파워에서는 차이가 났지만 내적인 측면에서 생명의 탄생을 가능케 하기 위한 호르몬이며 내장기관 등 모든 것이 신의 선물로 채워졌다.
하나의 예로써 인체는 외부로부터 우리 몸에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침입하면 자동적으로 가동하는 내부 방어군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다. 그것은 백혈구이다. 이 백혈구가 힘이 세면 적들을 쉽게 물리치고 면역력이 강화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우리 몸의 밸런스 즉, 항상성이 무너지며 질병에 걸리게 된다. 여기에는 등급이 나뉘는데 방위 레벨의 백혈구와 공수부대 레벨의 백혈구가 그것이다. 둘이 싸우면 성패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사기가 충천한 공수부대 백혈구가 이길 것이다. 성별로 구분을 해보자면 남자는 방위 백혈구에 속하고 여자는 공수부대 백혈구 쪽에 가까운데 이것이 여성이 오래 사는 이유 중의 하나로 꼽힌다.
2. 인생에서의 역전 시기 갱년기
출근 전 세면을 끝내고 스킨을 바를 때면 어린 시절 TV에서 보았던 00남성 화장품 CF가 곧잘 기억에 떠오르곤 한다. 손바닥에 털어 놓은 후 얼굴에 바를시 물기가 튀길 정도로 강렬한 액션을 취했던 그 장면이. 이 간접 학습을 통해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남자는 그렇게 박력 있게 스킨을 발라야 되는 줄 알았었다.
나의 장인어른은 월남 맹호부대 출신으로 용감무쌍한 대한민국 남성상 표본의 한분이시다. 거기다 선비의 고장 안동이 고향인 전형적인 경상도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계시기도 하시고. 덕분에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갈 때 익숙하지 않은 풍경 하나를 대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할 때 장모님이 부엌에서 따로 상을 차려 혼자 드시는 것이었다. 나도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장인어른의 기세는 대단 하셨다. 한창 젊을 때만 해도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상황에서는 차려놓은 밥상도 뒤엎었을 정도였다니까. 그런데 그러하셨던 양반이 이제는 연세가 드셔서인지 아니면 세상의 바뀐 흐름에 적극 호응 하셔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장모님이 일요일 교회에 나가 온종일 집을 비울 때는 혼자서 상을 차려 식사를 드시곤 하신다. 이런 광경을 볼 때면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는 장인어른이 대단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나 자신의 서글픈 모습을 미리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여 씁쓰레함이 드는 건 왜일까.
갱년기란 것이 시작되면 남성들은 자신들이 여성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겼던 원천인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라는 것이 점차 줄어든다. 갱년기(更年期)란 용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 - 대개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 - 에 신체의 작용에 여러 가지 장애가 나타나고 여성의 경우 생식 기능이 없어지고 월경이 정지된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시기가 되면 남성들에게는 여러 가지 고개를 숙이게 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터프하다고 남자답다고 뻥을 튀기던 남성들의 자존심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다.
아침이면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의 텐트(?)를 보며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오면서 길길이 뛰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다.
큰 스케일을 추구하던 것에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사오정에 숨죽여 눈치를 보고 조기 명퇴 방지를 위해 가늘고 길게 살기에 사력을 다한다.
회사를 나오면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지만 가슴은 새가슴이 되어 두근반 세근반이 된다.
가수 싸이의 ‘아버지’란 노래에 동병상련을 느끼지만 누가 볼까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왠지 자신의 삶이 허무하고 서글프다.
내가 누구 땜에 이렇게 뼈 빠지게 희생을 하고 뒷바라지 했는데 라는 자책을 하고, 이제는 자신의 키를 훌쩍 넘어버린 자식과 살가운 대화를 시도하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지 오래다.
답답한 마음에 술을 한잔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 호기 있게 잘나갈 때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소리쳐 보지만 소귀에 경읽기다. 이제는 아예 상대를 하지 않고 참다못한 마눌 님의 버럭 한마디에 깨갱 꼬리를 내린다.
그러다 심신이 피곤해지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아 주말에 쉬려고 하면 방구석 공간만 차지한다고 제발좀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아내에 부아가 치민다.
평소 구박하고 시간을 못 내어 미안했던 것이 생각나 예전 연애시절처럼 드라이브도 하고 멀리 근사한 곳을 찾아가 무드 있는 음악에 좋은 와인이라도 한잔 하고 싶지만, 이놈의 여편네는 무어 그리 바쁜지 좀체 행적을 찾을 수는 없고 반응도 영 시큰둥이다. 나 참 관심 기울여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그런데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이야기인데 도대체 왜이러는겨. 내가 늘그막에 달라져 보겠다고 용을 쓰는데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겨.
마찬가지로 여성도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줄어들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제2의 사춘기 변화를 맞지만 남성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일으킨다.
예쁘고 섹시하다는 단어가 이제는 빛바랜 사진첩속의 전설로만 남겨지고 옷장 속에 가득한 그때 그 시절의 스커트가 허리에 들어가지 않음에 모진 배신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체격 늠름한(?) 아줌마의 라이프스타일은 도전과 모험 그자체이다.
피곤한 가운데 큰 눈으로 시야를 확보하다 보니 멀리 버스 자리 하나가 생기자 잽싸게 뛰어 경쟁자인 싱싱한 총각을 밀쳐내고 히프를 들이밀며 공간을 확보 한다. 주위의 따가운 눈총은 상관없다. 현대의 경쟁 사회에서는 먼저 차지한 놈이 장땡이니까.
아이 둘을 낳아 눈에 보이는 게 없어서인지 이제는 무서움 그 자체는 사라진지 오래다.
피죽도 못 먹었나. 왜이리 힘을 못 쓰는 겨. 저리 비켜봐. 으샤. 냉장고를 움직이는 나의 괴력에 남편은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게 평소에 잘하라니까. 알았는교.
나한테 아무런 매력이 없어 보인다고. 흥. 그래 밖에서 재미있게 놀아봐. 과연 배불뚝이 당신을 누가 과연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바람 피우고 싶다면 피워 보라구. 대신 내 눈에 걸리기만 걸리면 살고 있는 집이며 위자료에다 덤터기를 씌워서 아예 쪽박신세를 만들어 줄 테니까.
'써니' 영화를 조조로 할인해서 두 번이나 보았다. 역시 친구는 오래 묵은 X들이 최고인 겨. 가만있어보자. 나도 춤으로는 한 시절을 풍미 했는데 Boney M의 신나는 사운드에 맞추어 안방에서 아싸~
그렇게 구박하던 시어머니도 이제 내말 한마디면 끝이랑껭. 그리고 아버님 중풍 뒷수발에 시동생까지 챙겨가며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를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늘린 게 누구 작품인 겨. 응~ 알아 몰라.
빈 둥지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지만 당신처럼 그렇게 쭈글상으로 할 일없이 집에만 있고 싶지는 않아. 이제는 나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때깔 나고 멋지게 포장하고 장식할 것인가에 관심이 가게 되니까. 못 먹어도 무조건 밖으로 고고고.
앞으로의 인생은 내가 개척할거야. 억울해서라도 멋지게 살아야지.
화려한 중년과 노년의 시대가 이제 시작되는 거야.
나를 솥뚜껑만 돌릴 줄 안다고 놀려 댔었지. 이거 왜이래.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캐셔 일이건 식당 일이건 고되기는 하지만 일을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니까.
그리고 당신 지금도 아직 정신 못 차렸지. 계속 그렇게만 해봐.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늘그막에 아프면 누가 당신 뒷바라지 해줄 줄 알아. 간병사가 해주면 된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아. 똥오줌 가려 달라고 그러면 누가 좋아할 줄 아는지. 그래도 등긁어 주는 여편내가 살아 있을 때 잘하란 말이야.
앞으로 끽소리 하지 말고 무조건 내말 잘 들어.
뭐라고? 철이 덜 들어서 돌아가는 상황파악을 아직도 못하겠다고.
아이구야~
동작 그만. 앞으로 취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