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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하였다. 설렘의 기대감 속에 이곳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무어 그리 대단한 게 있을까. 사람들마다 보고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나의 마음은 처음부터 나를 사로잡은 어느 하나에 빼앗기고 있었다.
바다를 닮은 파란색 지구의 배경 화면에 하얀색 전경 채색화의 조화.
눈부셨다. 그렇게 넓고 풍요롭고 여유로우며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해주는 존재는 처음 이었다. 다른 풍경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Assisi의 성인이라고 하는 대단한 의미의 이미지도 후차적 이었다. 그저 한 존재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것에 대해 집중하고 몰입 하였다. 아니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마냥 좋았다. 흘러가는 정해진 시간 속에 속살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동안 그와의 대화를 재촉 하였다.
1. 너는 누구니?
나. 나는 네가 보는 듯이 넓고 파란 하늘이야. 그러는 너는 누구니?
나. 나는 멀리 저 멀리서온 또 다른 이방인이야.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방문한 낯선 한사람이지. 이곳이 그렇게 유명한 순례지라면서. 지금도 그렇지만 오래전에도 너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상징이었겠구나.
2. 너는 지금 왜 여기에 있니?
나는 내가 있고 싶은 데로 바람 흘러가는 대로 있어.
너는 어떠니?
나?
나는 있으라고 하는 대로 있어야 된다고 하는 곳에 있어. 너처럼 자의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보다는 그냥 주어진 대로 그냥 맡겨진 대로 있을 뿐이지. 너의 그 대답이 나를 참 부끄럽게 하네. 그런 네가 부럽다.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너 자신이.
3. 네가 나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이니?
가르침이 별게 있니. 그냥 본인이 느끼면 그만이지.
질문이 우습지만 네가 물었던 대로 나란 존재를 통해 너는 어떤 가르침을 받니?
(잠깐 생각에 잠긴다.)
나는 너를 통해 평안함을 느껴.
그냥 좋아.
온유함도 느껴지고.
평화와 초연함도.
할 수만 있다면 네가 되었으면 좋겠어.
4.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뭘까?
나에게서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것을 시간이 지나도 너의 마음에 오래 오래 간직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향기로 나누어 주었으면 해.
5. 네가 나에게 주는 선물은 무엇이니?
나를 통해 느낀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 그자체야.
아쉬움을 묻은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반복되는 현실이다.
자명종 시계에 맞추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고
바쁘게 아침 준비후 복잡한 지하철을 올라타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어색한 눈길을 피한 후 흔들리는 전동차 안에서 책을 펼쳐들며
사무실 출근 혹은 지방 업무로 떠나는 기차를 다시 갈아탄다.
익숙한 또는 낯선 삶의 한가운데에서
이해관계에 얽힌 맞부닥침 속에서
갈등, 오해, 불안, 충돌, 어색함, 공조, 육체적인 피곤함의 상황이 몰려 들어와
흔들리는 평정과 고요한 안식처의 물음이 밀려올 때
마음에 간직된 공간에서 너를 돌이키며 끄집어낸다.
Ciao!

한번씩 좀 들여다 보소
날숨만있고 들숨은 안 쉬어요?
기똥찬 시 하나 읊어 볼게요. 승호씨 생각이 나서....
삶은 달걀이다. ― 그래, 삶은 달걀이다. 삶에도 유정란, 무정란이 있고 삶에도 껍질과 알맹이, 노른자위와 흰자위가 있고 삶도 굴러가고 그런 만큼 늘 아슬아슬하고 그러다가 더러는 금이 가고 깨지고 증발해 버리고 삶도 아예 제 몸을 바위 따위에 날려 차라리 박살이 나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삶도 누군가의 따스한 품에 안겨 개나리꽃빛 햇병아리가 되고 높은 지붕 위에 의젓이 날아오르는 수탉이 되어 새벽과 한낮을 알리기도 하고 삶에도 똥이나 피가 묻어 있기도 하고 삶도 누군가에게 삶아 먹히기도 하고 삶도 곤달걀이 되기도 하고 삶도 둥글어야 하고 그러자니 또 바로 서기 어렵기도 하고 삶에도 중금속이며 항생제 따위의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 있기도 하고 삶은 달걀 / 백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