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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3일 16시 55분 등록
<변화학 칼럼 30>

We are born to change!


문 요한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정신과 전문의)



호강에 초 치는 소리
자기회의와 방황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한때, 난 하느님께 연단이 될 수 있는 고통을 달라고 부탁드렸다. 내가 강하지 못한 것은 고통을 겪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강한 고통을 겪으면 나는 강한 사람으로 변신할거라는 마술적인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인생을 좀 불행하게 해달라고 감히 부탁드렸다. 정말 호강에 초치는 소리 아닌가!

많은 자기경영 전문가들이 변화를 위해서 ‘자발적 위기감’을 고조시키라고 한다. 실제 많은 이들이 정말 사서 고생을 하기도 하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을 믿고 현실을 묵묵히 버틴다. 어떤 분들은 더 나아가 ‘인간은 충분히 고통스러울 때만이 변화한다.’라고까지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자발적 메저키스트가 되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다. 그 말은 변화란 인간의 본성에 역행한다고 보는 것이며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말과 다를게 없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면 수없이 많은 환경의 위기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고 사회를 발전시켜 왔을까? 과연, 역사발전의 공은 본성에 역행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소수의 영웅들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인간의 본성
전체 동물 종(種)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곤충은 지구상에 4억년 동안 왕성하게 생존해 왔다. 그들은 만년설이나 끓는 물 속에서도 살아남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들은 점점 덜 먹고도 살아남을 수 있게끔 크기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이 발전적 생존을 해온 것은 생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른 동물들은 생존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에만 수동적으로 대응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삶의 목적이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것에 있었기 때문에 변화를 능동적으로 선택해 왔다. ‘능동성(activity)'이야말로 인간존재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이 생존만을 목적으로 하는 존재였다고 한다면 인간의 역사는 한 발자국의 진전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매우 저항력 있고 강건한 ‘위기관리 능력(안정성)’과 ‘능동적 변화’의 본성이 스며 들어있다. 수백만년의 진화를 거치면서 더욱 발전된 변화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놀랍지 않는가? 안정과 변화의 역동적 균형을 능동적으로 유지해나가는 본성이 우리 안에 숨쉬고 있다는 것이!

당신 안에 변화의 맥박이 느껴지는가?
변화의 박동소리가 힘찬 분도 있고 약하게 느껴지거나 들리지 않는 분도 있다. 약하거나 잘 안 들리는 분들은 그럼 그 본성을 못 갖추고 태어났거나 원래 약하게 태어난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그 씨앗을 잘 키우지 못했거나 스스로 사장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변화의 본성이란 현실태(現實態)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태(可能態)를 말할 뿐이다. 변화의 맥박이 약한 많은 사람들의 경우 생의 에너지가 상처, 콤플렉스, 중독, 부정적 감정 등에 몰려 있어 순환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피가 잘 돌지 못하고 막히면 육체의 병이 생기듯 생의 에너지가 잘 돌지 못하고 막히면 게으름에 빠지고 변화에 저항하게 된다. 변화의 맥에 손을 짚고 그 박동을 느껴보라!

변화라는 본성 - 굴변성(屈變性)
변화는 위기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변화일 뿐이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만 단련되는 존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여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어떻게 가지고 있느냐이다. 그에 따라 삶의 모든 체험은 단련이 될 수도 있고 마모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살만 하니까 변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더 이상 못살겠으니까 변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의 일면이며 수동적인 변화이다. 능동적 변화만이 삶의 충일감을 일깨워줄 수 있다. 고통과 위기의식으로부터의 변화는 힘들고 초조하고 허덕인다. 그것은 소망이 아니고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갈망이 될 뿐이다.

우리는 단지 못살고 있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꼭 막다른 곳에 다다랐기 때문에 돌아 나오는 것이 아니고, 바닥까지 추락했기 때문에 날아오르려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근원적인 욕구가 있다. 나는 그것을 ‘굴변성(屈變性)’이라고 부르고 싶다. 모든 식물의 잎과 줄기가 빛의 방향으로 성장하듯 인간에게는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하고자 하는 근원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일깨울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아니라 ‘내 삶의 목적을 끝까지 실현하겠다.’는 삶에 대한 희망과 도전의식이다. 희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느끼고 자신을 껴안고 있어야 할 곳을 향해 나아갈 때 창조되는 정신적 에너지인 것이다.

국내외 기업들의 경영주는 항상 위기상황임을 강조한다. 점차 더 자극적인 용어를 섞어가고 좀더 상황을 비관적으로 부풀려서 외친다. 적어도 내가 듣기에 우리 기업이 위기가 아닐 때는 없었다. 그렇다면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과 무엇이 다를 바 있겠는가? 부풀려진 위기감이 과연 성장의 기본 동력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 자처한 고통이 과연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을까? 위기는 관리하는 것이지 고조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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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더 나은 존재’로의 지향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의미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역으로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되어 정신적 방황을 낳고 삶을 피폐시킵니다. 또 싸움을 만들어내기도 하지요. 무릇 다른 생명체는 더 나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저 존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더 나은 존재’로의 궁극적 지향점은 내적으로는 ‘변화’와 ‘안정’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고 외적으로는 ‘세상’과 ‘나’와의 조화를 찾아가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저로서는 그 상태가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남보다 더 나은 존재가 아닌 ‘본연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즉, 자연(自然) 상태로 되는 것이라 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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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5.12.23 17:15:57 *.190.84.49
와!
문요한선생님 지금까지 올려주신 글도 좋았지만.
오늘 이글은 그 어떤 글 보다 탁월합니다.
엄청난 것이 들어있는 글입니다.
아주 깊고 깊은 곳에 가려운 곳을 찾아 주신 것같아요.
"산다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일깨울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아니라 ‘내 삶의 목적을 끝까지 실현하겠다.’는 삶에 대한 희망과 도전의식이다. 희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느끼고 자신을 껴안고 있어야 할 곳을 향해 나아갈 때 창조되는 정신적 에너지인 것이다.
자연의 상태로 되는 것"

저는 표현의 방식이 다른 지모르지만...
행복하게 잘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넘어서 잘 죽는 것이 목적입니다.
기업의 목적 이윤을 넘어서 상대(사람, 기업, 물질, 생물, 무생물)와의 조화롭고 유기적인 가치 창조입니다. 그 대상과 하나 되는 것-"一以貫之"
현실의 만족을 넘어서 정신세계의 만족.
삶에서 苦나 幸이나 유의미한 것임을 아는 부드럽고 강한 물처럼 잘 존재하며 지내는 자연의 숲을 닮고 싶은 마음이 제일큰 소망입니다.-공자님께서는 "불유구"하시고 소장님께서는 시처럼 살고 싶다고 하셨지요.

다음에도 또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면 화목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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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2005.12.23 18:16:54 *.110.63.210
산다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것이다. 늘 배웁니다
정말 궁금했었는데 ...너무 반가운마음에 주최를 못했네요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성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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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요한
2005.12.24 09:20:48 *.231.169.35
숲기원님! 뵙게 되어 기뻤습니다. 환한 미소와 삶에 대한 철학을 잠시라도 나눠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새해 복많이 많으십시오.

이은미님! 반겨주셔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에너지 덩어리시더군요. 새해에는 아름다운 가능성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한해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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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5.12.24 09:21:45 *.211.61.161
인간이 왜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주시는 글 같습니다. 좀 더 완전해지는 존재로 나아가는 것이다라는 말씀이시죠? 그런데 불완전한 삶이 불안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데 왜 늘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고민할까요? 뵙게 되어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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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5.12.25 19:18:19 *.51.68.45
요한님의 글을 읽고 난 후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이 생각났습니다. 로고테라피 이론인가요? 우리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데는 고통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불필요한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자기 학대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구체적인 현실입니다. 구체적이라 함은 희노애락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굴변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에는 동의가 되나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자기를 채찍질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극과 위기감이 전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요한님이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크리스마스에 참 좋은 글 읽게 되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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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남
2005.12.26 00:43:49 *.48.38.156
늘 문요한님의 글을 읽으면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쓸까 궁굼했었는데 이번 모임에서 뵙게 되어 기뻤습니다.
특히 에너지 사이컬러지란 말씀에 앞으로 더 기대를 합니다.
노래를 에너자이틱하게 하시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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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슈기
2005.12.27 09:56:13 *.229.137.2
요한님의 글 속에는 많은 생각과 공감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묘약이 있습니다. 아주 미세한 변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서 새로운 모습의 나로 거듭납니다.
근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젊게 보일 수 있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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