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 조회 수 197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갓 신혼여행을 다녀온 부부가 집에 다녀갔습니다. 저녁에 그들이 돌아 간 후, 신부가 남겨 놓은 카드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 속에 이런 글귀가 들어 있었습니다.
“ 가정이란 하나의 수레바퀴다. 가정이란 하나의 예술 형태다. 예술 형태란 작업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가정은 흥미진진한 예술 경력이다. 놀라울 만큼 실제적이고 생생하며 살아있는 수레바퀴인 것이다. “
나는 그들에게 매일 책을 읽고, 매일 한 두 줄씩이라도 쓰며, 인생을 시처럼 살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하나의 가정을 시작하는 것을 보며, 나는 내 가정을 돌이켜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마차를 타고 긴 길을 여행했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에는 우리가 남긴 마차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때로 인생의 힘든 코너를 돌때 4개의 바퀴 자국들은 서로 엉키기도 하지만 끝없이 함께 이어지며 비오는 거리를 가고 햇빛 쏟아지는 들녘을 거쳐 왔습니다.
가정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아주 많은 이야기를 담아두고 서로 그것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서로 주인공이 되어 같은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가정의 특징입니다. 알지 못하던 젊은이들이 운명처럼 서로 만나 눈이 맞고, 내밀한 비밀을 공유하고, 언약하고, 이내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눈처럼 하연 드레스와 정장를 입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들은 때때로 사랑이 생활로 변해 버리는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참지 못하고 더 아름다운 이야기, 더 끌리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평범한 아내와 남편이라는 것에 좌절하기도 하고, 늘 모자라는 돈, 반복되는 지루한 직장에서의 일과에 지쳐 쓰러지듯 가정으로 들어오지만, 그 또한 자질구레한 책임과 의무로 가득한 또 다른 공간이라는 것에 분개하기도 합니다. 뾰죽하고 날카로운 낱말들을 서로의 가슴을 향해 무자비하게 던지며 대판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가정만큼 사람 사는 맛으로 가득하고, 생생하고, 절절하고, 웃음과 실망이 사랑과 범벅이 되어 살아 숨쉬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 때문에 절절매고, 그 아이에 모든 미래의 밝은 것들을 다 모아들이고, 혹 실망하고 다시 기대하면서 지지고 볶는 그 실감나는 키친이 바로 가정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공간은 없습니다.
이 봄날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내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이 봄날, 이미 가정을 이룬 모든 이들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댓글
2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769 | 외도 [1] | 자로 | 2006.03.07 | 1965 |
768 | Snowcat의 권윤주 [1] | 한명석 | 2006.03.06 | 4855 |
» | 가정이라는 예술 [2] | 구본형 | 2006.03.06 | 1975 |
766 | -->[re]가정이라는 예술 [2] | 팬 | 2006.03.11 | 1927 |
765 | <1> 理想職場 이상직장 [1] | 정경빈 | 2006.03.05 | 1767 |
764 | 주례를 마친 뒤 담소하시는 구 소장님 [3] | 허희영 | 2006.02.28 | 2381 |
763 | -->[re]사진을 찍어둔 게 있긴 한데... [4] | 또 접니다 | 2006.03.01 | 2421 |
762 | 졸업과 입학 사이 [1] | 박노진 | 2006.02.28 | 1816 |
761 | 가까운 사람들 [1] | 귀한자식 | 2006.02.27 | 2249 |
760 | 나는 누구인가? 진정한 나는 무엇일까? [1] | 은호(隱湖) | 2006.02.26 | 2153 |
759 | 나의 성향은 현재 나의 직무에 맞는가? [2] | 박미영 | 2006.02.25 | 2387 |
758 | 우리, 제1기 연구원 - 내가 본 연구원들의 색깔 [5] | 홍승완 | 2006.02.24 | 2396 |
757 | -->[re]그대, 홍승완 | 자로사랑 | 2006.02.25 | 1764 |
756 | 그대라는 말에... [2] | 이은미 | 2006.02.24 | 1942 |
755 | 끝남과 시작의 길목에서 [2] | 최정임 | 2006.02.24 | 1754 |
754 | <변화학칼럼 38> 더 나은 삶을 위하여 [2] | 문요한 | 2006.02.23 | 2122 |
753 | 여행 & 변곡점 [3] | 황명구 | 2006.02.20 | 2335 |
752 | 마지막 수업 [3] | 구본형 | 2006.02.20 | 2171 |
751 |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꿈 신드롬 [1] | 자로사랑 | 2006.02.20 | 2070 |
750 | 가리워진 길 [2] | 오병곤 | 2006.02.19 |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