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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일 10시 12분 등록

사마천의 기록과 나의 기록

9기 유형선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고 있다. 사마천은 남들이 꺼려하는 옳은 말을 하다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 궁형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는다. 그리고 이후 대략 팔년 후에 <사기>라는 세계적인 역사서를 완성한다.

사기를 읽으며 궁형에 처해진 사마천은 도대체 왜 사기를 집필하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사형을 받아들이지 않고 궁형을 통해 환관이 된 이유를 밝히고 싶었을 게다치욕을 받아들여서라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를 밝히고 싶어서 였을 게다. 무엇의 역사인가? 옳은 것이 옳은 것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른 것이 그른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 역사를 역사로 덮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옳은 일을 하여도 형벌을 받는 이들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간세상. 그 속에서 도대체 나라는 존재는 무슨 쓰임이 있을 것인가 고뇌하고 또 고뇌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배우고 익힌 일이며 곧 자신의 업이기도 했던 역사서 펴내는 일을 마치고 싶었을 것이다. 가만히 따져 생각해 보니 이제는 임금도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옳은 말을 한 자신에게 궁형이라는 벌을 내린 임금은 이제 더 이상 믿고 따를 존재가 아닌 역사에서 평가되어야 할 상대적인 존재일 뿐이다. 하늘 같은 임금마저도 평가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역사'가 발휘하는 힘이다. 그런 '역사'의 힘을 뿜어내어 자신 삶의 이유를 밝히고 싶었을 게다. 치욕의 궁형을 당한 사마천에서 역사의 잣대를 준엄하게 드러내는 역사가 사마천으로 진정 변신하고 부활하고 싶었을 게다.

 

둘째, 인간 세상 구석구석까지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어 후대에 교훈을 남기고 싶어했다. 사기열전 첫 대목은 수양산에서 지조를 지키다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 이야기이다. 하늘도 완벽하게 옳고 그름을 보여주지 못하기에 백이와 숙제처럼 비운의 운명으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러나 이런 분들을 칭송하는 가르침을 공자와 같은 성인이 남기면서 옳고 그름의 가치가 후대에 전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도 공자 같은 성인의 길을 따라 가겠다고 밝힌다. 인간사에 옳고 빛나지만 가려져 빛을 내지 못하는 일들을 들추어내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고, 비록 영광과 권세를 누리지만 그른 일을 들추어 내어 후대에 교훈을 삼을 일을 기록하여 전하겠다는 의미이다.

 

셋째, 울분을 토로하여 억울함을 글로써 호소하려 하였다. 이른바 글쓰기를 통한 자기 치유이다. 사마천은 묻는다. 백이와 숙제의 시를 읽으면 억울한 마음이 남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백이와 숙제를 공자도 칭송하였다. 그러니 나 역시 나의 억울한 마음을 글로 쏟아내어 스스로 위안 받고 싶어하였다. 상처야 말로 진정 인간을 변화시키는 동력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시대의 옳고 그름을 후대에 알렸다. 이제 이천년이 지난 우리는 누가 자신의 역사를 써주기 이전에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SNS를 통해 스스로의 역사를 써간다. 신문지상에 나오는 사회상이나 기업체에서의 바라본 나라는 사람으로만 살기에 마치 나의 영혼이 점점 사라져가는 듯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리고 시작한 일이 글을 적는 일이었다. 중요하다고 세상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작성하며 나의 일상을 남기고 주변에 알리면서 힘을 얻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사마천의 마음이 이해가는 가 보다.

 

한번은 대학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의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보면 심지어 헬스장에서 운동한 것까지 적어서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했던데, 이유가 무엇이냐?” 그 자리에서 즉답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다 답을 보냈다.

 

외로워서 그런 거다. 오도 가도 못하는 무인도에 갇힌 것 같은 일상을 느끼다 보니 외로움에 지쳐서 놀이를 생각해 낸 것이다. 그날 그날의 일을 적어 블로그나 페이스북이라는 빈 병에 넣고 SNS라는 바다에 던지는 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 빈 병이 흘러 흘러 누군가가 발견하고 열어 보게 되면 ! 이런 사람이 지구별 어딘가에서 하루를 또 이렇게 살았구나하고 나의 존재를 알게 되기를 바라는 거다라고 답해주었다.

 

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을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 철저하게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내가 살아온 역사를, 내가 바로 본 시대를, 내가 감탄한 자연과 문화와 예술을 기록으로 남기며 살겠다. 남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내가 소중하게 느끼기 전까지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 하루 살다 보니 내 옆의 사람들이 모두 별처럼 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때로는 외로움 때문에, 때로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시작한 기록하기가 기쁘고 소중한 일들을 더 많이 가져다 주고 있다. 사마천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역사서에는 남기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분명 사기를 완성해 가며 더더욱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믿는다.

 

2013-07-01

坡州 雲井에서

IP *.6.5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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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17:27:05 *.1.160.49

외로워서 그런 거다.

 

우리가 힘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마 같은 이유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니 외로움을 넘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마음을 내게 하는 고마운 글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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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18:32:06 *.62.175.7
외롭고 힘든 에너지야말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에너지라고 되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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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22:47:11 *.94.41.89

횽님, 제가 이번주 내내 생각했던 거랑 비슷하시네요. 사마천은 사기를 남겼는데, 도대체 난 뭘 남겨야 하는거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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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23:10:24 *.62.180.99
너의 질문은 내가 답해 줄테니 너는 내 질문 답해줄래? 난 무얼 남길까? ㅋㅋ 가자가자 함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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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2 09:38:39 *.50.65.2

세상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긴 것들을 적기 시작한 이후부터

형선의 역사가 쓰여지고 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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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2 18:44:56 *.62.173.137
글을 쓴 이후 점점 깨닫습니다. 부정적 감정(억울하고 분노하고 치사하고....)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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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2 23:29:49 *.58.97.22
킬리만자로의 표범.. 흔적이랑 남겨야지.
몽테스키외가 눈이 멀도록 사마천이 궁형당하고 또 책 다 쓰고 몇해만에 곧 죽고...자신의 분노에너지를 타인을 공격하는 데 쓰지않고 인간의 역사에 큰 성을 건설하는데 사용한 그들의 삶에 대한 긍정성과열정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아. 나도 그렇게 살고싶어. 인간역사에 작은 벽돌하나라도 기여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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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3 08:35:17 *.62.180.65
저도 열심히 쫓아 가겠습니다.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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