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라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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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꿈 속을 헤매이는 듯 했습니다. 제가 정한 ‘책의 주제’가 제 현실과 잘 안 맞아 돌아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쓰고 있는 분야와 전혀 다른 낮 동안의 업무가 저를 피곤하게 했고, 설상가상으로 직장 일도 그리 쉬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창조적인 고독’에 빠질 시간이 점점 줄어 들었고 그래서인지 그리 잘 떠오르던 글감도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주말 이틀에 읽고 쓰고 게다가 그림 감상까지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급해 질수록 내가 정한 책의 컨셉에 대한 회의가 밀려 들었습니다.
회의가 밀려 들자 그 후부터는 무너지는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글과 연결될만한 ‘작품’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니, 글도 제대로 써지지 않는 것입니다. ? 솔직히 말해서 상반기 동안만 해도 전 아주 재수 없게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대체 왜 글감이 생각이 안 나고 글이 안 써진단 말이야? 세상 전체가 글감이고 내 경험 전체를 그대로 쓰면 글인데…” ? 도대체 내가 쓰는 글이 글인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글을 매주 사이트에 올려도 되는지 슬슬 자신감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일찍 일어나서 적어도 30분이라도 날마다 써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만, 한 이틀 하다가는 피곤에 쓰러지고 회사 가는 준비에 제대로 못하고 말았지요. 그래서 제 자신한테 무척 화가 났습니다. 이런 화나는 생활을 한 세 달쯤을 지속했나 봅니다.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무언가 굉장히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야단을 치려다가 그냥 다독였습니다. “그래, 힘들면 좀 쉬어가자. 조금 쉬면 괜찮아질지도 몰라.” 그리고는 다시 처음에 이 과정을 쉽게 시작했던 것처럼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잠을 충분히 자고 주말에는 많이 걷고 만나고 싶은 친구는 만나주고 힘들 땐 누구든 만나서 수다도 떨어 주었습니다. 당연히 그 동안 리뷰와 칼럼에 들이던 시간은 약간 줄어들 게 되어서 수준이 매우 낮은 글들을 올렸을 것입니다.
한 달쯤 지났나 봅니다. 이제는 제가 에너지를 많이 회복한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이 직장 저 직장 그것도 다양한 업무로 옮겨 다니면서 취미 생활인 ‘그림’으로 책을 쓰려고 하는 제 자신이 못마땅했나 봅니다. 게다가 뭐 잘났다고 스토리로 구성을 해 보겠다고 해서 매주 안 나오는 ‘창의력’까지 쥐어 짜야 하니 그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이었습니다. ‘난 대체 왜 그림을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고 다시 화랑가를 전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갑자기 누군가 내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려 주는 겁니다.
“너는 말이야. 그림이..아니 미술 작품이 네 일생의 힘이었어. 힘들어서 학교를 그만 다닐 생각을
하던 대학교 1학년 때 너를 붙잡았던 것은 미술 동아리 활동이었고. 취업 스트레스로 머리를 아
파하던 대학 4학년 때도 미술사 청강을 하며 꿈을 꾸었었어. 가난한 대학원생일 때, 주머니가 가
벼워도 갈 수 있는 미술관 산책이 너에게 자유로움을 선사해 주었고, 밤샘작업에, 주말도 없는 공
장 같던 그 힘든 회사 생활을 할 때도 시간만 나면 그림을 보러 다녔쟎니? 그것뿐이겠어? 직업이
바뀌어도, 주머니 사정이 달라졌을 때도, 함께 갈 친구가 없을 때에도, 우울하거나 힘들 때에도
너는 그림을 보러 달려가곤 했어.”
그랬습니다. 가난했을 때에도, 주머니에 돈이 좀 생겼을 때에도, 직업을 떼려 치우고 싶은 마
음이 생길 때에도, 이 곳을 떠나고 싶어서 무작정 이국 땅을 헤맬 때에도, 또 다른 직업으로 옮겨
갈 때에도, 잠시 백수생활을 할 때에도, 삶이 불안정할 때에도, 삶이 안정의 궤도로 들어섰을 때
에도 언제나 저는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습니다.
현재의 직업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매우 비실용적인 책 같아 보이기도 하
지만 이것이 제게는 저의 첫 책을 써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아, 저는 이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엉터리고 서툰 제 방식대로 써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작품들에게 꾸준
이 부었던 딱 그 열정만큼만 쓸 작정입니다.
“까짓거, 못 먹어도 고 할랍니다.”

뚝심현정씨. 잘 해낼 거예요.
현정씨에게 그림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힘을 주고 위안을 준것처럼 나에겐 시가 그랬던 것 같아요.
내 삶에서 중심에 있지 않고 빗겨나 있었지만 무의식결에 집어 들었던 시집. 누구보다도 좋은 친구였고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시들. 언제나 내 곁엔 시가 있었어요. 그것을 시축제를 하며, 내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것을 깨달은 기쁨도 잠시 시가 좋으면서도 이제는 엄청 부담으로 다가와요. 시를 노래하고 싶지만 시를 전혀 모르겠어요. 내게 시는 무엇이었는지 오랜 시간을 두고 아주 세심하게 생각해 보려해요.
현정씨에게 그림도 그런것 같아요. 현정씨의 그 고뇌.. 알것 같아 마음이 아파지네요. 그림에 대해 충분히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이제는 잘해 낼거예요. 예전에 그림을 보며 내딛던 발걸음의 단상을 잡아 본다면 글이 술술 풀리지 않을까요? 늘 응원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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