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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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야 끝났다. 이제야…
이렇게 생이 마감되는 것을 내겐 이것이 왜 이리도 어려웠는지.
지은 죄로 인해 사후세계가 나도 모르게 두려웠던 걸까…
다행이다. 길에서 죽음을 맞지 않아서.
편지…
그 편지를 세상에 내 놓아야 한다.
그 길만이 짐승만도 못하게 산 내가 민족을 위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이다…’
온 몸이 피범벅이 되도록 맞은 사내는 살 가망이 없어 보인다.
뇌를 맞은 것일까?
얼굴에서도 피가 흐른다.
울고 있다.
흐르는 피 사이로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다.
서랍까지는 불과 몇 걸음 되지 않지만
죽음을 앞둔 사내에게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것만큼이나 힘겨웁다.
팔, 다리가 전부 부러진 것인지 사지를 흐느적 거리며 배를 땅에 대고 겨우 기어가고 있다.
가까스로 닿았다.
부러진 팔에 힘이 남아 있지 않아 손가락 끝으로 겨우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 사내가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던 편지가 있다…
<2>
선생님.
언제 또 정신이 혼미해질 지 모르니 이만큼이라도 정신이 맑을 때 몇 자 올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붓을 듭니다.
지난 얼마간 저는 밤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 갔습니다.
그 곳에서 미국의 최고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최면 치료의 대가라고 들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몇 명 동지들이 그로부터 정신력 강화 치료를 받는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한국 의사도 한 사람 동행했는데 그 역시 한국 최면학의 대가라고 하였습니다.
말로는 정신력 강화 치료라고 하는데 점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이상하게 얼마 전부터는 자꾸 선생님께 총을 겨누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 꿈이 점점 선명해집니다. 두려워서 미칠 것만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최면 치료를 거부하자 그들은 제게 강제로 주사를 투여했습니다.
어젯밤 꿈에는 제가 선생님께 총을 겨누는 장소와 날짜까지도 정확히 나타나더니
오늘은 선생님께서 쓰러진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이 편지를 내일 전에 선생님께 전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부디 민족을 위해서도 오래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1949년 6월 25일 안 두희 올림
<3>
편지를 쓴 것이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었다.
피가 고인 입을 놀려 사내는 “선생님”하고 불러 본다…
그 때였다.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기기 시작하며 눈 앞에 살아온 생이 파노라마처럼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육체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고 지난 삶이 하나씩 둘씩 눈 앞에 떠오른다.
미국 의사에게 최면에 걸려 민족의 등불인 선생을 피격한 날.
그 이후로 살아도 죽은 것처럼 숨죽이며 목숨을 부지해 온 날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죽으려고 했지만 삶만큼이나 두려웠던 죽음.
도망 다니다 허기가 져서 밥을 먹으며 살겠다고 밥을 먹는 자신이 서러워 밥그릇을 부여잡고 꺽꺽거리며 통곡하던 날들.
‘이렇게 죽으면 되는 것을 왜 지금까지 살았을까.
지은 죄 때문에 저승이 두려웠던 것일까.
그 때였다.
또 다른 생애가 보이기 시작한다. 전생인가보다.
아! 이 순신 장군이 보인다.
국문장이다. 아마도 원균의 모함을 받아 투옥된 그 때인 듯싶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거지!
이럴수가! 내가 선조라니! 내가 선조라니!’
다음 장면이다.
선조가 아니 내가 이순신 장군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종묘사직을 지키게 해달라고, 그러면 다음 생애는 장군의 이름 앞에 거름이 되겠다는 밀서를 쓰고 있다.
아… 모진 운명이여…’
이윽고 사내의 숨이 끊어진다…
<4>
죽은 사내 앞에 검은빛을 띈 저승사자가 다가온다.
“소원이 있습니다” 사내가 먼저 입을 뗀다.
“무슨 소원?” 무겁게 울리는 목소리이다.
“제가 지금 이승을 떠나면 수 백 년은 족히 지옥 불에서 죄값을 치러야 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육신에서 자유로워진 영혼은 현생에선 볼 수 없었던 죽음 너머의 세계를 가늠하는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 생에 지난 생애 잘못한 죄값을 치르느라 민족의 반역자 운명을 타고 태어났습니다. 이제 그 죄값을 몇 백 년에 걸쳐 지옥 불에서 받을 터, 부디 다음 생애에서는 한반도 땅 가장 깊은 산골 허름한 학교의 문지기로 태어날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제발, 제발 부탁이옵니다.”
“그건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몇 백 년이 될지 모르는 세월 동안 네가 어떻게 죄값을 치르느냐에 달린 것이다. 가자.”
사내의 영혼은 저승사자를 따라 깊고 어두운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간다…
<5>
“먼 별아”
이번에도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먼 별이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충격이 심했던지 깨어나서도 먼 별이는 한참 동안 흐느낌을 멈추지 못한다.
“안 두희였어요. 그의 마지막 순간 그리고 사후까지” 울먹이며 먼 별이가 말을 시작한다.
“알고 있다”
“사부님, 어째서죠? 어째서 저희 민족은 늘 강대국들 틈바구니 속에서 제 살 깎기를 계속하고 있는 거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먼 별이가 고통을 토해내고 있다.
“분하냐? 원통하느냐? 그렇다면 말이다. 혁명을 일으켜라. 전 세계를 뒤흔들 혁명을 일으키란 말이다.”
“혁.명.이.요? 싸우란 말씀이세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놀란 표정의 먼 별이가 되묻는다.
“아니다. 먼 별아. 혁명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무력으로 싸우라는 의미가 아니다. 아니 무력의 힘보다 더 강력한 힘이 사상의 힘이다. 무력 앞에 굴복하는 것은 물리적 힘 앞에 어쩔 수 없이 일시적으로 복종하는 것이지만 사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알겠느냐?”
“예, 잘 알겠습니다.”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먼 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이번 여행에서 크나 큰 아픔을 느꼈다…

한번만 더 늦으면 끝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끝이 진짜 임을 잘 압니다. 선생님의 성격을 봐서나 분위기를 봐서나~사실 늘 그렇습니다.구석에 몰렸으니 지켜야 겠지요.^^ 적어도 낙오자는 싫으니께~!
누님 유치하시만 위안이 되었습니다.
누나도 늦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휴~ 살아있구나! 살고 있구나! 그런 느낌인거죠.
역시 누나는 내 누나 동지입니다. 5번과 1번과 늦은것은 마찬가지! 횟수만 틀릴뿐~
내 논리이니 개념치 마시고 맨뒤에 저란 놈도 있으니
누나 스타일데로 마지막 4번의 기회를 이용해 보시길~!
그라고 누님 저 죽음을 두려워 해본적이 딱 한번 있는데
7살때 눈깔사탕 먹다가 목에 걸려서 죽을 뻔 했을때 입니다.
그때 어머님 말로는 제 기억으로도 옥상의 누구를 부르다가 눈깔사탕이 목에 걸렸는데
캑캑하다가 쓰러졌다고 하는데 저는 잘 기억합니다.
몇번 숨을 쉴려 하다가 안쉬어지면서 내 손이 어머님 어깨에서 떨어지고 빨개지다가
하얀 안개구름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다가
멀리 깊숙히 빨려드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까지 기억납니다.
그때 어머님 말로는 제 입에 뜨거운 물을 붓고 내 등을 두들겼는데
헉~!하며 제가 숨을 쉬더라는 거였죠
다음 앞이 파래지고 그 깊숙한 곳에서 빛이 보이고
뭔가 시원하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숨을 쉬는 느낌이였던 거죠.
다 죽었던 제가 살아났던 겁니다.
그 뒤로 죽음은 한번 견뎌볼 만한 것이란걸 알았습니다.
별거 아니란걸 안거죠.
인생 별거 아닌데~ 너무 복잡하게 사는것 같아요.
죽을때 죽더라도 뭔가 제대로 살고 싶을 뿐입니다.
누나 같이 살죠~ 제가 뭔가 기획하고 있으니
그 영혼 같이 해봤으면 합니다.
누나도 이미 한번쯤 죽어봤던 인생인것 같으니~
통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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