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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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16-그래도 삶이 지속 되려면
모든 것을 자신이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사소하게는 집안 정리, 직장에서의 업무, 인간관계, 행동과 습관, 자녀 양육방식 같은 것을 뜻대로 다스리려고 한다. 심한 경우는 자신과 가족의 미래, 운명까지도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직선상에 배열되어야만 안심하는 경우도 있다. 운이 좋으면 꽤 오랫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움직여주는 경우도 있다. 어릴적부터 우리는 노력한 만큼의 댓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웠다. 그래서 자신이 노력하면 운명이 움직여 줄 것이라고 믿고 움직인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행운이 자신의 편일 때 가능한 일일수가 있다. 심하면 자신이 받아야할 노력에 합당한 전리품을 탈취당할 수도 있다.
만약 살다가 그런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찌 할 것인가?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이 닥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날 아침 예고도 없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남성 발레의 역사를 새로 쓴 천재 무용수 니진스키는 5살부터 형, 누나와 함께 무용을 배웠다. 그가 받은 모든 교육은 무용을 기반으로 해서 진행 받았다. 발레를 하신 양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도 발레에서 특출했고, 그가 받은 교육과 매일의 생각도 모두 발레와 발레안무에 연관 지어져 있었다. 발레의 재능이 없었다면 디아길레프가 그를 사랑하지도 후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내 로몰라 역시 자신의 발레를 찬양했다. 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발레가 자신의 전부였다는 것을..
이런 니진스키에게 있어서 발레란 단순히 재능의 발현, 특별한 직업, 난이도가 높은 취미를 능가하는 절대적인 ‘무엇’ 이었을 것이다. 발레는 그에게 생명의 원천이요 죽음을 이길 힘이었다. 어릴 때 바라본 아버지의 도약기술이 너무 부러워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버지처럼 공중에서 멈출 수 있었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줄 수 있었다. 니진스키도 공중에서 멈출 수 있다고... 드디어 아버지를 넘어서서 중력을 느끼지 않고 날 수 있는 때를 그가 만들어내었다. 도약에 몰입한 결과였다.
니진스키에게는 분명 신경과민이 있었다. 천재들에게서 보이는 과도한 몰입과 집중력이 뇌의 에너지를 임계치 이상 능가해 버릴 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분명 니진스키 스스로가 “나는 신이다”라고 외칠 때 그런 신경과민의 증후를 보여주고 있었다.
많은 천재들이, 특히 예술의 천재들이 광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천재의 재능에 광기는 항상 동반되는 특징이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신이 인간의 재능을 질투하여 쳐놓은 함정인지 모른다.
어찌되었든 니진스키는 스스로 신경과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미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도약기술을 수만번 반복하며 발레만 했고 발레만 생각했다. 새로 올릴 작품의 안무 구상으로 정말 미쳐버릴듯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서 신경과민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을 미쳤다고 한다. 정말 화나고 답답하고 미쳐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자신을 미쳤다고 하다니.....
니진스키 스스로 미쳤다는데 한번도 동의한 적이 없었는데, 어느날 강제로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재앙을 만난다. 무대에서 발레를 하던 니진스키에게 그곳은 죽음이었을 것 같다. 병실에서 도약연습을 매일 할 수는 있었겠으나 무대에 오를 수 없음이 그를 얼마나 절망하게 했을까?
나는 니진스키의 절망을 생각해본다.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 무용가 없는지, 그가 얼마나 연습에 연습을, 생각에 생각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만난 절벽에서 그는 어떠했을까 그것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함께 절망했다.
니진스키의 전기 작가 리처드 버클은 그의 일생 60년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0년은 자라고 10년은 배우고, 10년은 춤추었으나, 30년은 암묵 속에서 보냈다고. 그가 무용을 배우고 무용가로 살아갔던 20년 동안 그는 자신에게 닥칠 재앙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무용만을 생각하고, 발레하고 안무하고, 후배를 양성하는 길을 걸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예상치 않은 곳에서 만난 복병, 더 이상 춤출 무대가 없어졌다. 병원을 나갈 기약도 없다. 아내는 울고 또 운다. 디아길레프는 나를 키워줬으나 악마이다. 그에게 의지하면 안된다. 사람들은 나를 기억할까? 니진스키가 미쳤다고 재미있어하겠지......
이 병원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가 어떻게 절망의 30년을 견뎌냈는지 기록에 없다. 그를 너무나 사랑한 아내 로몰라가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다행히 삶의 호흡기를 떼지 않고 연명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인슐린 쇼크 치료요법 등 많은 의학적 도움으로 정상상태와 정신분열 상태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렇게 삶을 지속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가 절망에서 취한 그 어떤 방법, 특별한 전략, 그가 믿었던 신념과 그를 지탱했던 의지, 무엇 하나도 그로부터 건질 수가 없었다.
다만 절망 만을 보았다.
니진스키의 절망 앞에서 내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는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더 이상 그를 판단할 수도 유추할 수도 없었다, 다만 암흑같은 절망을 함께 느꼈을 뿐이다.
그랬다. 나는 그의 30년에서 그 어떤 희망의 메시지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암흑같은 절망 속에서 나는 새로운 그의 음성을 듣는다.
인생의 절벽을 만났을 때 애쓰지 말라.
자신의 힘으로는 죽을 때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생각해라
인생이 노력한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래서 지금 상태로 그냥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그가 말한다.
그래서인가? 선생님께서 “운명을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죽음의 미궁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하찮은 실타래 였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그런데 미궁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다이달로스는 아리아드네에게 실타래를 준다,
엄청난 것이 있을 줄 알았던 인생의 비밀이 의외로 가장 단순한 것으로 풀릴 수 있음을 배운다,
우리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이 닥쳤을 때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아보자. 오히려 힘을 빼고 천천히 그곳을 살펴보자. 의외의 샘물이 그곳에도 솟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평생 머물러야 할 장소가 바로 그곳일 지도 모르므로 그곳을 빠져 나오려는 헛된 노력을 멈추어보자. 지금은 막막하기만 암흑같은 절망이 축복이었음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자신의 당대에서...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후대에 그것이 신의 선물이었음을 자녀들이 알 수도 있으리라....
해서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절망을 받아들이고, 한계를 인정하고, 운명을 사랑해야 하는 것 인가보다.
오늘 니진스키의 절규에서 다시 배운 교훈이다.


일주일마다 하루씩 장이 열린다
저마다 품팔아 지은 농사
글쎄 오늘은 뭘 들고 나왔누?
잠옷바람에 눈비비고 나온 선형이
이번에도 개끌고 나온 은주, 다리 한쪽은 어딨나? 먹었나?
실타래 하나에 운명을 거는 경숙 아지매
미옥은 벌써부터 나이타령이다.
상현이 외눈박이 물고기는 꽤 팔린 모양이다.
장사엔 잼병인줄 알았더니
내 강아지 한 마리 팔리면, 상현이 물고기 한 마리 사들고 들어가야겠다.
가출학생 찾아 나선 학교선생님도 보이고
여기저기 왔다갔다 식당 쥔 총각같은 사장 걸음이 바쁘고
마음치료 한다고 노련한 약장사가 기타치며 사람들을 모은다
마흔 이짝저짝 인생들이 모여
좌판을 벌리고,
흥정을 하고,
장똘뱅이 인생이야기
장터마당엔 밤새 불 꺼질 줄 모른다
국밥에 막걸리 생각이 난다
불지필 부지깽이를 어디다 뒀더라?
하루 왼종일 통 보이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