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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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다 오솔길 끝에서 무덤 하나를 만났다. 비록 땅을 볼 줄은 모르지만, 햇볕이 잘 들어 봄날 오후 볕이 잘 드는 자리였다. 능선을 따라 두 갈래 길로 갈라지는 가운데 자리한 무덤은 주인이 누구인지 알리는 묘비명 하나 없다. 군데군데 뱀구멍 같기도 하고, 쥐구멍같기도 한 구멍들이 나 있고, 간혹 멧돼지가 파헤쳐놓은 듯한 흔적들도 보인다. 제법 너른 자리 한쪽을 골라 엉덩이를 붙이고, 배낭을 뒤져 반병 남은 소주 한 모금을 마셨다. 바람이 불었다. 빽빽하게 자란 소나무들이 좌우로 흔들리며, 이따금씩 울음소리를 낸다. 낡은 나룻배가 파도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사공의 어깨 끝에서 뼈마디가 닳아지며 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뱃전을 가르고 지나는 강물이 작은 소용돌이를 치며 침묵 속으로 잠겨들 듯 솔숲을 지난 바람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나도 그처럼 덕유산 자락을 베고 누어 본다. 온전히 제 몸 하나 뉘이고서야 하늘이 보였다. 참 좋다. 하늘.. 너무 파랗다. 솔숲향기 묻어 지나는 바람.. 등허리 마른 풀들이 바스러지는 소리도 좋았다. 따뜻하다.
누구였을까. 그는 왜 혼자 누워있는 것일까.
누구나 한 번 태어나고, 또 한 번 죽어 누울 것인데... 만나고 또 헤어짐이 그렇게 아프고 서럽단 말인가. 내게만 닥치는 일도 아닐진데, 나만 이렇게 아픈 것 같을까. 버럭 눈물이 솟는다. 질끈 눈을 감아보고, 아랫입술을 깨문다. 아프다. 다행이다.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구나.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픈 것이고, 산다는 것이 외로움 견디는 일인가 보다.
흐르던 땀이 식으니 바람이 불 때마다 춥다. 솔숲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뒤틀리며 자란 소나무들의 뼈마디가 온전히 드러나고 만다. 고단한 삶이었나 보다. 바람이 불고, 소나무는 또 흔들린다. 울음을 운다. 몇 남아 있던 구름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제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잊혀진다는 것. 나도 죽은 것일까. 그 사람 기억 속에서 나도 죽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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