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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3일 23시 48분 등록

신화는 무엇인가

2011 4월 강훈.

 

봄입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만상의 몸 위로 아른대는 아지랑이 한끝에서, 문득 눈길 닿는 곳에 푸른 빛을 깨치는 그 여린 생명에서 자연의 신비를 즐깁니다. 이쯤 되니 자연은 유희로서의 신비입니다. 딱 맞는 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 - 반칠환의 노랑제비꽃

제비꽃_edited.jpg

제비꽃도 신화를 담고 있습니다. 신화는 꽃과 나무에서, 태양과 달에서 그리고 내가 숨 쉬고 서있는 바람과 대지의 곳곳에서 피어나고 존재하며, 우리의 숨결 곳곳에 살아있습니다. 4월에 시작되는 새로운 배움 자리에서 스승께서 첫 번째로 꼽아 주신 '주제'도 신화입니다. 그냥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알았던 신화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아주 어렸을 적 할머니는 부엌 한 곁에 있는 정화수에 수시로 마음을 조아리셨습니다. 할머니의 손바닥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샤박샤박 마른 낙엽 같은 소리로 자손들의 무병장수와 복을 빚었습니다. 더불어 명절과 제사 날에는 조상님을 모시는 상() 외에 성주상(城主床)이라는 별도의 상을 집안의 성주신(城主神)에게 마련하여 올렸으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화와 함께 성장해 왔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3대독자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칠성신에 대한 할머니의 기도를 생각하면 태어나면서부터 신화의 한 구석을 나도 자리하고 있었구나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하늘 위에는 하늘나라가 없다는 것이 자명한 이치가 되어버린 과학의 시대에서도 우리는 신화와 접해있습니다. '스타워즈', 선과 악, 운명과 우연, 영웅적 의지와 신성한 힘 같은 신화 고유의 '포스'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있으며, 메트릭스는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인식을 변용된 새로운 모습으로 제시하여 우리를 흥분시켰고, 반지의 제왕은 선과 악의 전쟁, 인간과 신 그리고 중간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모험을 통해서 고대 신화에 못지 않은 뛰어난 예지와 역동성을 보여줍니다. 과학의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메타포와 페르소나를 무기로 우리 앞에 신화는 당당합니다.

 

성장과 함께 그리고 현재의 문화, 철학과 종교 속에서 신화는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고 있지만 신화가 주는 농밀한 삶의 의미와 지혜는 여전히 깨치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그것이 담고 있는 상징성과 추상성의 알레고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신화의 모티프가 되는 우리의 삶이 신비하고 오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신화에 대해 제가 유일하게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열리고 인간이라는 종이 역사하면서 삶의 신비에 대해 어떻게든 해명하고 설명해 보려는 수천 년간의 노력이 신화로 다듬어 지면서 내려온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파악하기 어려운 삶의 신비와 그것의 진실에 대해서 표현하고 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상상하고, 감각하고, 연상하여 온갖 비유법을 동원하여 겹겹의 옷을 입게 되었고 그런 시간과 노력이 녹아서 신화의 묘한 매혹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신화에 대한 정의를 '삶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매혹적인 이야기'라고 나름대로 정의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캠벨은 <신화와 인생>에서 "신화는 우리의 깨어나는 의식과 우주의 신비 사이를 연결시켜준다. 신화는 우주의 지도 또는 그림을 우리에게 선사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자연에 대한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라고 했습니다. 신화가 우주의 지도라는 것이지요. 더불어 그의 또 다른 책 <신화의 힘>에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날의 삶에 대한 관심이 심드렁해지면, 사람은 내면적인 삶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 내면적인 삶이란 게 어디에 있는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참 곤란한 일이지요" 라고 말합니다. 그가 말했듯이 우리가 살아있음에 대한 삶의 경험을 찾고자 한다면 존재와 더불어 공명할 수 있는 내적인 존재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에 대한 훌륭한 이정표이자 지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화라는 것입니다. 앞서서 제가 내린 결론을 선생님의 글에 비추어 보면 그래도 크게 어리석은 결론은 아닐듯합니다.

 

조직이라는 곳을 떠나 처음으로 혼자가 되어 길을 걸어보는 요즘 '삶이 길을 잃을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됩니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고, 지금 있는 곳을 설명하는 것이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화의 상징에서 두려움 위로 피어나는 희망을 읽으려고 합니다. 삶을 움직이는 노래를 들으려 합니다. 신화에는 그런 힘이 있는 듯합니다. 신화는 사람의 무엇인가를 비추어 주는 마법의 거울과 같은 힘이 있는 듯합니다.

 

이 봄, 인생의 여정에서 좋은 신화 하나를 꿈꿉니다.

IP *.219.8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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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1.04.04 07:58:10 *.97.72.54
첫째: 글을 읽으며 꿈벗 가운데 행복숲 지기 김용규님이 떠오르네요. 섬세함에서?

둘째:

滅道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道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연구원들에게는 어제의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일이 되겠지요. 오직 용맹정진!! ???  내겐 왜 그리 어려운 일이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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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4.05 09:50:51 *.219.84.74

어렵겠지만, 각오하고 시작했던 길이니, 苦集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길 끄트머리에서 옹글게 누리게 될 지복과 희망을 노래하는 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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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08:09:12 *.160.33.89
역사는 사례를 들어 가르치는 철학이고,
신화는 은유로 알게하는 철학이니,  
여름 여행전 까지  너희는 신화 역사 철학 그리고 너를 아주 멀리서 바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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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4.05 09:56:06 *.219.84.74
한걸음에 하나씩 이라도 제대로 알도록 하겠습니다.
알아감의 길에서 나를 잃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부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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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4.04 10:09:58 *.23.188.173
주제를 찾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가며 고심했는데
같은 주제를 다시 한 번 써보는 것도 좋은 듯 해요
시간적으로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더라도 나의 의식이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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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4.05 09:57:41 *.219.84.74
신화에 대해서 4월 한달 내내 배워가는 느낌을 (1)~(4)로 할까 하는데
칼럼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고 오해받을까 걱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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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5:15:36 *.124.233.1
형님 글은 잔잔하고 고요한 호숫가에 와 있는 느낌을 줘요.
읽고나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과학의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메타포와 페르소나를 무기로 우리 앞에 신화는 당당합니다.
'삶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매혹적인 이야기'
'삶이 길을 잃을 수도 있구나'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신화의 상징에서 두려움 위로 피어나는 희망을 읽으려고 합니다. 
삶을 움직이는 노래를 들으려 합니다.
신화는 사람의 무엇인가를 비추어 주는 마법의 거울과 같은 힘이 있는 듯합니다.


이번 칼럼의 주제를 '신화, 삶의 은유를 이해하는 힘'이라 정하였다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제 경험과 맞닿은 주제를 택했거든요.
너무 부족한 아우 형님들께 많은 배움 얻습니다. ^^

참.. 형님 SD카드 못 찾았어요. 하나 사다드릴께요..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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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4.05 09:59:29 *.219.84.74
경인아, 우리는 너의 걸음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래도 열심히 따라 갈테니...항상 최선을 다해다오. 자극과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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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4.04 21:17:24 *.35.19.58
훈 오라버니의 글을 읽고 있자니 마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읽고 있는 느낌이 드네요.
미래의 필자라서 그런가? 호호호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것은 길을 찾고 있다는 다른 말이 아닐까 싶어요.
이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끝을 잡아챈 건 아닐까요?
미궁에서 함께 탈출해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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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4.05 10:02:45 *.219.84.74
댓들이 더 멋지다. 신부보다 더 예쁜 우인(友人).
나는 왜 이렇게 신화에 나오는 이름과 말들이 어렵냐.
미궁을 헤쳐나감에 8명의 손을 꼭 잡고 가도록 하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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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4.07 09:43:35 *.138.118.64
시를 잘 몰라요. 읽어본적도 거의 없고.;;; 대학 입시 때 읽은 시가 전부라면 너무 무식한게 티가 날까요.;;;.ㅋㅋㅋ
칼럼에 시를 응용할 수 있다는 것. 참 부러워요~!^^ 조직에서 떨어져나와 힘들겠지만, 저희가 함께 할테니 힘들고 지칠 때 꼭 손 내밀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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