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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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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0일 08시 50분 등록

생태조사 보고서

주말에 태풍이 지날 거라더니 바람은 덕유산 골짜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밤사이 현관 앞에 내어두었던 화분 몇 개가 쓰러지고, 골짜기 물길을 따라 물푸레 하나가 길 위로 드러눕고야 말았다. 땅 속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한 삶이란 언제든 시련을 견디지 못하였다. 피서철에 맞추어 수확을 미뤄두었던 옥수수들도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절반 넘게 쓰러지고 말았다.

월요일 아침, 다행히 날이 개었다. 그렇지만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숲에 쏟아지던 빗줄기들이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계곡의 물줄기는 성난 소리를 계속하였다. 다음으로 미룰까도 생각했지만, 딱히 내키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일행들을 재촉해서 먼저 남대천으로 향했다. 무주에 와서 제일 먼저 떠오르던 이름이 남대천이었다. 무풍면 덕지리 대덕산 골짜기를 타고 내린 물줄기는 반딧불이가 산다는 설천雪川 땅과 무주읍을 가로 지난다. 그리고 흔히 호피석이라 불리는 ‘구상화강편마암’이 있는 오산리 버드내와 몸을 섞어 금강 본류에 이른다.

강이 합류되는 자리. 덕유산 골짜기 골짜기 그늘진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인 장터 같았다. 저마다 자기의 이야기들로 소란은 끊이질 않았다. 평소에는 차를 건네던 작은 보들도 기가 죽어 강바닥에 바짝 엎드렸고, 제 길을 가로막은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강물은 한차례 성질을 돋우었다. 한 풀이 꺾이고 맴을 도는 자리, 물고기들은 그 자리 어디쯤에서 슬슬 강물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터였다. 거기 어디쯤에 감돌고기도 숨어 있을 것이다.

이 곳 사람들은 ‘쫄중어’라고 불렀다. 돌고기와 감돌고기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그렇게 섞어 불렀다. 지난 번 이곳을 지날 때 투망을 치던 사람들을 만났었다. 혹시라도 표본에 쓸 수 있을까 싶어 그들의 어망을 뒤지면서 두어 마리쯤 감돌고기를 보았다. 그렇지만 이미 한걸음 늦었다. 머리는 온데간데 없었고, 비늘도 벗겨진 채로 창자마저 잃어버린 배들은 이미 홀쭉한 모습으로 다른 물고기들 사이에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한참 혼인색으로 몸이 달궈진 수컷 피라미들 사이로 드문드문 꺽지도 보였고, 갈겨니, 돌고기, 참마자도 두어 마리쯤 눈에 띄었다. 써서 맛이 없다는 납지리들은 그 축에도 끼지 못하고, 아예 길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참 귀한 안주를 먹겠다 싶었다.

지난 번 기억을 더듬어 족대로 물가 풀섶을 뒤져보기도 하고, 발끝에 닿는 모래바닥과 자갈 의 크기들을 가늠해가며 모래무지나 양수래미들이 찾아보기도 했다. 허탕이었다. 큰물이 지면 물고기들이 물가로 모인다던 말은 솜씨 좋은 천렵꾼들의 이야기일 뿐, 한 시간 남짓 공력에도 양동이에는 겨우 십여 마리가 고작이었다. 주둥이 근처에 돌기가 돋고 울긋불긋 때깔이 좋은 불거지 몇 마리를 골라 포르말린에 재우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물고기 배를 손질하듯 새우깡 봉지를 따고, 캔맥주도 깠다. 며칠을 기다려온 걸음치고는 너무 서운했다. 바람이 불어왔다. 멀리서 파랗던 하늘에 검은 구름들이 슬금슬금 몰려왔다. 건너편 산자락에 참나무들이 속치마 자락 뒤집히듯 히뜩허니 뒤집어졌다. 떡갈나무 잎을 뒤집는 맞바람은 비를 몰고 온다고 했다. 또 비가 올 모양이다. 오줌이 마려웠다. 길가에 노랗게 시들한 달맞이꽃 사이에서 쑥 냄새가 짙게 맡아졌다. 춥지 않았지만 몸을 부르르 한 번 떨고서 구량천으로 되짚어 가기로 했다.

아직은 초록치마를 두른 적상산을 왼편에 끼고 돌았다. 이 여름도 지나고 나면, 저 산은 언제나 그랬듯 붉은 치마를 입고 다시 맞을 것이다. 두어 개 터널을 지나 안성 읍내를 거쳐 푸른꿈 고등학교가 있는 진도리 쪽으로 길을 따라 갔다. 길이 굽어지는 자리 물길도 굽었다. 그 길 어디쯤에서 별묘라는 이정표를 좇아 숨겨진 동네를 찾았다. 낯선 이들의 걸음에 개들이 먼저 알고 짖었다. 길가에 옥수수도 흔하고, 고추도 한참이었지만 사람 모습이 드물었다. 길은 끊겼다. 물은 몇 채 안 되는 마을 집들을 돌아 또 다시 병풍처럼 드리운 산자락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또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크고, 강물이라 부르기엔 이름값을 하지 못하겠지만, 칠연계곡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물길은 성깔이 있었다.

투망과 족대를 꺼내며 종진이형하고 둘이서 물속을 가늠해보았다. 폭은 기껏해야 열 걸음 정도였지만 가운데로 좁아진 물길 속은 족히 사람 키를 넘을 것 같았다. 제법 그물질에 익숙한 사람이라지만 토박이도 아니고 흙탕물로 탁한 물속을 들여다본다는 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조금 위쪽으로 여울진 자리하고, 그 아래로 물이 돌면서 물살이 약해지는 곳 그리고 풀들이 잠겨 있는 모래자락을 짚었다. 위쪽에는 물이 두 갈래로 갈라진 탓에 물 한가운데 자갈섬이 생겼다. 형이 먼저 투망 한 자락을 어깨에 걸치고, 치맛자락 여미듯 양손으로 그물을 움켜쥐고서 급해진 여울을 건넜다. 익숙한 솜씨였지만 조금 위태로워보였다. 김선생이 양동이를 들고 따라갔지만 물을 건너지는 않았다. 하늘로 던져진 그물이 그림처럼 펼쳐졌고, 짧은 소리와 함께 강물을 덮치면서 물속으로 잠겨들었다. 여울이 그물을 삼켰다. 손목으로 이어진 그물 끝자락이 딸려가다시피 형을 끌었다. 물이 배를 넘겨 가슴팍까지 차올랐다. 아찔해보였다. 두어 걸음 주춤거리던 형이 나를 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그러더니 숨을 들이마시고는 아예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순간, 내 손에 또 다른 투망이 들려 있음을 기억했고 여차하면 그것이 구명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한 채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물위로 머리가 다시 보였을 때 형은 물살에 몸을 맡기고 양손을 움직여 내가 서있는 물가 쪽으로 흘러오려고 했다. 왼쪽 손목에는 여전히 투망그물이 들려져 있었다. 숨이 멎은 듯한 순간, 뒤에서 누군가 뛰쳐나갔다. 김선생이었다. 나보다 한 걸음 앞서 그가 강물로 뛰어 들었고, 넘어진듯한 형의 겨드랑이를 뒤에서 잡아끌어 올렸다.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끌어당겨”

형은 노련했다. 물가로 엉덩이가 얹혀지자 이내 자세를 잡고서는 여전히 물을 따라 떠내려가고 있는 투망을 천천히 당겨 잡아들였다. 그까짓 그물 놓아버리지 싶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형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다시 시간이 제 속도를 찾으면서 건져진 그물을 손에 움켜쥔 채로 돌아선 형의 젖은 머리칼에서 물방울들이 흘러내렸다. 여지없이 촌놈이었다. 다시 씨-익 한 번 웃어 보이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양동이를 찾아들었다. 찢어진 그물이었지만 물고기들이 그득했다. 한 마리 한 마리 세듯이 주워 담는데 자꾸만 웃음질이 나왔다. 피라미.. 갈겨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이 오른 쉬리가 많았다. 비록 감돌고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물에는 빠가사리도 두 마리 들어 있었다. 형하고 김선생은 두어 번 더 그물질을 했고, 나는 표본으로 쓸 물고기들을 따로 골랐다. 나머지 물고기들을 돌려 보내지 않기로 했다. 비록 물고기를 즐겨먹지 않지만 오늘 저녁엔 참말로 귀한 안주로 소주를 한 잔씩 해야겠다.

IP *.1.1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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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8.19 14:12:46 *.220.23.66
진철아,
네 소식은 상현이에게 들었다.
너를 설레게 할 새로운 변화가 기다리나 보다...

빠가사리 매운탕 좀 먹어보자.
엠티 안주로 최고다.

졸업여행 매운탕집 생각난다...
좀 가져와라...잉!!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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