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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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묵고 있는 진해시역에 웅천왜성이 있습니다.진해시내에서 부산 가는 길로 STX 조선소 입구를 지나고 옛날에 현감이 있었다는 웅천에서 조금 남쪽으로 오면 남산이라고 부르는 180m 되는 야트막한 야산에 있습니다.
일본식 석성으로 높이는 3-8m 남아 있는 길이는 7-800m이고 성역은 5천여평이라고 합니다.이 왜성은 임진왜란때 일본 군인들이 축성해서 본거지로 삼았다고 하는 18개의 성중에서 울산 서생포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는 곳입니다.왜군과 싸운 이순신의 전적을 보면 이곳에서도 싸움이 있었다고 합니다.제가 알아본 이곳에서의 전투와 직접이곳을 둘러보고 느끼고 알게 된것을 정리해두고 배울 것을 챙겨볼가 합니다.
이곳해전의 기록은 윤영수가 지었고 웅진지식하우스에서 펴낸 e-book인 "불패의리더 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 가"에서 웅천해전이야기를 볼수 있었습니다..이책에서 본 내용을 간략하게 해전부분만 간추려 봅니다.
1593년 2월 6일 89척의 조선과 명의 연합함대와 병력 1만 4천여명의 군을 거느리고 이순신은 여수를 출발하였습니다. 육군과 합동으로 부산을 치라는 조정의 명령에 의한 것입니다.왜군은 부산에 500여척 웅천에 115척의 전선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이순신은 여수에서 부산으로 가는 중에도 곳곳에서 서너척씩 나타나는 적선을 부수고 부수어도 유령처럼 나타나곤 하는 왜군과 싸우면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조선 육군과 명나라 육군이 부산을 공격해주기만 한다면 일거에 저들을 바다에 수장시켜버리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지난해의 농사를 망친 백성의 고통은 참혹했습니다.곳곳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고기를 먹기도 한다는 보고가 각지에서 조정으로 보고되고 있는 판국이었습니다.부산을 치려면 웅천을 먼저 치고 나가야 했습니다.만약에 그냥 부산에 갔다가는 배후에서 공격을 당할 것이 확실하였습니다.
지난해에 가덕도 안쪽에 있는 안골포에서 왜군을 무찔렀는데 그때 이후로는 왜군은 조선 수군 그것도 이순신과는 좀처럼 해전을 치루지 않으려고 피하기만 하였습니다.이때에도 아무리 포구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왜수군을 바다 바깥으로 끌어낼려고 햐여도 응전해오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2월10일에 웅천포구에 도착하여 밀물을 타고 처들어 갔으나 산등성이에서 대포로 맞서는 적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이러기를 2월 12일과 18일연이어 해보았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적은 포구 앞에 목책을 세워두어서 접근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이순신은 적의 의표를 찌르는 작전으로 2월 19일 밤에 드디어 상륙전을 결정하고 준비를 지시한 것입니다.육전으로 교란을 하고 해전으로 끝맺음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때 이순신에 합류했던 의숭장 삼혜와 의능이 600여명의 병력으로 상륙전을 할테니 맡겨달라고 했습니다.이사실은 자세하지는 않으나 이책에서는 전후사정으로 보아 이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이순신은 의승병에게는 웅천의 서쪽인 제포로 남쪽 남양으로는 수군 1,100명을 상륙토록 하였습니다.그다음 웅천포구로 함대를 끌고 왜군을 압박해 간것입니다.상륙전을 펼치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전적이 나와 있지않아 이싸움은 성과가 시춴찮았고 그냥 교란작전으로 그치고 말았다고 보입니다.왜군은 칼과 조총 조선은 활로 대적하였으나 육전은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조선 수군은 목책일부를 제거하면서 함포로 몰아 부쳤습니다. 처음에는 꿈쩍을 안하던 왜군이 얼마있다가 적선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나중에는 반절정도의 적선이 파괴되었을 즈음 썰물이 시작된 것입니다.이순신은 왜군을 전멸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퇴각명령을 내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분통이 터지는 일이나 어쩔 수 없이 물러서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래서도 이순신은 이 해전의 결과에 대한 기록을 해두지 않은 것입니다.아마 이순신이 싸운 23개의 전투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싸움이 아닐가 합니다.지지는 않았지만 시원하게 이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데 왜군과 명나라가 협상을 하는 중에 50일간의 휴전 협정을 맺고 말았습니다.그래서 이순신은 할 수 없이 다시 여수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우리는 가깝게는 625때에도 남한을 제쳐두고 북한과 미군이 휴전 협정을 맺고 노일 전쟁 청일전쟁으로 우리나라를 서로 쳐(서) 먹을 라고 싸움질을 하더니 우리운명이 주변국들 끼리 탐욕의 대상이 된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앞으로도 앗차하면 그리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은 윤영수가 지은 것이고 이봉수가 지은 이순신이 싸운바다 라는 책을 보니 내용이 약간 차이가 납디다.그러나 큰 줄기는 다르지 않고 다만 이책에서는 싸움을 한때가 2월이 아니고 3월로 되어 있고 싸운 기간도 3개월동안 걸치는 것으로 된것이 달랐습니다.이것은 아마도 양력과 음력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그리고 이책에서는 상륙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그냥 유인책으로 흉내만 내다 말은 것처럼 되어있습디다. 이 두책은 정확한 기록을 근거로 써놓은 것이 아니어서 그런것 같습니다.아무래도 육전은 오랜 경험이 있고 조총이라는 편리한 무기를 소지한 적과의 싸움이 힘들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당시에 이순신이 왜군을 가까이서 접해보고 가슴아프게 느낀 사실은 왜군중에 편입되어있는 우리 백성이 3분의 1이나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또다른 애달픈 일은 해전에서 일단 왜군을 섬멸하고 나면 피난와 있는 근처의 백성이 수군에 와서 도움을 청하나 도와줄 방법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수군이 백성을 거둔다는 것은 크나큰 짐으로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우리 백성들은 육지에는 이순신같은 장군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었을 겁니다.당시에는 부산과 진해 제포사이에 100여리에 걸치는 거리는 왜군의 본거지나 마찬가지 였고 그중에 이 웅천왜성은 큰 부대의 근거지 었다는 것입니다.
이 웅천왜성은 언제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소서행장이 데리고 다니던 슈페리라는 서양신부가 이곳 성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서는 서양신부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상 우리백성이 한것은 아니지만 이땅에서는 처음으로 하느님을 찾아 미사를 한 곳이라고 합니다.이것도 우리가 먼저 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 사람이 해서 안타까운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남한산성이나 북한 산성을 볼 때는 저의 눈에 익숙해서 인지 우리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나 이곳에 왜군이 쌓은 것은 일본의 관광 안내책에서 보던 일본식 왜성인것 까지는 알겠는데 아마 임진왜란 이후 한번도 보수를 하지 않았는지 그냥 동네근처에 큰 집의 돌담이 허물어진채로 버려진 곳 같았습니다.스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아마 이근처에서 왜군한테 이리저리 당하고 아마 학살까지 당하고 팽개쳐진 원혼들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법 큰 돌로 틀을 만들고 사이사이에 작은 돌로 만들어서 만든 당시에는 위용이 제법이었음을 짐작케 했습니다.이것을 축성했을때 우리 백성을 혹사시키고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 시달렸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라렸습니다. 우리 백성은 다만 조선에 태어난 죄밖에 없는 데 지도자들을 잘 못만나서 그 고생을 한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도 우리의 지도자들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었던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아니면 우리의 역사를 일본학자들이 건들이면서 조선은 당연히 이런 침략을 당해야 마땅했다고 했는지 아니면 당시에 우리나라를 침범한 대의가 명나라를 치러가니 길을 내달라고 한 것을 들어주지 않아서 그랬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힘이 없는 나라 사람은 역사를 어쩌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성앞바다에는 진해 부산 신항만을 만드느라 한참 바다를 메꾸고 있는 모습이 장관입니다.그러면서 우리는 이 자그마한 왜성하나를 간수를 못하고 아마 얼마 아니면 이곳이 그런 역사의 현장이라는 것도 모를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역사의 가르침을 잊어버린다면 또다시 이런 치욕의 역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턴데 하는 생각이 내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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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ixiao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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