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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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을 다녀왔다. 낮 시간 기차를 타고 서울 들어가기 전에 수원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남문을 향했다. 그래도 초행길이 아니라는 안도감에 내심 씩씩한 목소리로 "남문요" 했더니, "손님 남문은 길 건너서 타는 게 휠씬 빠릅니다" 한다. 아 그렇구나, 나는 왜 이리 방향 감각이 없지. 육교를 건너 다시 택시를 타고 남문이라고 이야기 했더니 정말 기본요금의 거리이다. 햇살 좋은 가을 날 이렇게 나는 수원 화성을 세 번째 찾는다.
수원 화성이 정조대왕의 실학사상이 잘 반영된 성터라는 곳도 사실 요 최근에 알았으니 나는 국사에는 역시 문외한이다. 학교에서 배운 그 많은 역사적 지식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문화유적을 볼 때마다 매번, 처음 들었던 내용이거나 처음 알게 되는 내용으로 내 머리에 새롭게 각인되는지 새삼 나의 아둔함에 기가 죽는다.
밤에 걸었던 그 성터를 따라서 그대로 걸어봐야지 하는 맘으로 초입에 진입하니 밤에는 못 봤던, 아니 없었던 안내소에 꽂혀 있는 한 장짜리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여러 겹 접어서 만들어둔 지도 한 장을 펼치니 수원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수원 시내를 관통하는 버스투어도 있구나에 새삼스러운 감회가 온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 잘 졉쳐진 지도는 펼치고 나서 다시 접으니 도무지 처음처럼 예쁘게, 반듯하게 접히지 않는다. 잘 접어야 가방에 쏙 들어가는 알맞은 크기가 되고 부피감도 상대적으로 적을텐테,도무지 내 손안에서 놀고 있는 지도는 그냥 속수무책으로 입을 헤 벌리고 있다. 부피감도 상대적으로 커지고 모양새도 볼품 없어졌다. 에고, 속싱해라.
지도접기가 제대로 안 되어서 실랑이를 혼자서 하며 애태우고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이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저들 외국인에게는 이 수원 화성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하는데 그런데 왜 뛰어가지 하는 맘으로 그들의 뒤를 빠른 걸음으로 따라 왔더니 화성내 열차가 움직이고 있다. 여기 화성을 한 바퀴 도는 열차인듯 하고. 빨간색 그 열차는 어디를 돌아 돌아 사람들 마음에 옛 정조의 생각과 마음을 담아줄까? 나도 저 기차를 탈까 하다가 아니, 오늘은 나 혼자서 잘 걸어보는 거다. 이 가을 냄새와 그리고 이 흙을 밟으며 나를 보는 것이다는 주문을 단 채 그 열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기차를 운행하는 기관사 아저씨는 탈꺼야? 안 탈꺼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탈거면 이 외국인처럼 뛰어야 할거 아냐 하는 무언의 압력도 있다. 내가 방긋 웃었더니 내 맘을 읽었는지 기차는 방송을 하며 움직인다. 그런데 그 기차는 너무나 현대적 혹은 귀여운 기차라 이 성터와는 조금 안 맞다 생각도 했다. 조금 낡은 문양의 인력거 형상이었으면 어떠했을까 싶기도 하다.
정조대왕 동상도 있고, 여기저기 써 놓은 안내문도 읽으면서 그리고 도서관도 있구나, 저기 학교는 초등학교인가? 여기 주민들이 바라보는 이 곳 수원화성은 단순히 문화지일까,관광지일까? 하는 여러가지 물음들을 생각하며 밤에 보았던 그 정취와 낮에 보는 이 정취가 이렇게 다르구나. 어, 새소리도 들리는군. 사람이 이렇게 자연을 즐기며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일이 이렇게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것도 혼자서 온전히 이런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그저 내가 살아있음에 대한 고마움과 행복감이었다.
화성 모퉁이를 돌아서 소위 길거리 음식 대표인 핫도그 하나를 사서는 붉은색 케첩을 많이 바르고는 입안 가득히 넣고, 아이 마냥 배시시 웃으며 그 큰 핫도그 하나를 다 먹었다. 사실은 좀 식어서 그리고 밀가루 반죽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조금은 맛이 없었던 핫도그였지만 내가 부여한 가을날의 혼자만의 작은 사색으로 그 핫도그마저 의미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그런 하루였다. 이렇게 일상의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해서는 혼자서 즐길 수 있음이 고맙다. 그래서 사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나 보다.
동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장기를 두고 있고, 어디서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누르며 깔깔 웃음을 날린다. 단체로 온 거 보니 소풍인가? 학교 교실에서 해방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들이 웃을 수 있는 이유일까?
내가 걸어 온 길 뒤로 아득히 성터가 굽이굽이 돌아 있다. 이제 절반은 왔나보다 하는 맘으로 얼마를 더 가야 내가 그 밤에 걸었던 그 길을 고스란히 다 돌아다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그 즈음, 한복 입은 아낙이 나폴바폴 나를 반긴다. 그러면서 표를 보여 달라고 한다. 이게 유료 관람인지 나는 전혀 몰랐고,그럼 나는 일반 관광객이 도는 방향이 아닌 반대방향으로 이렇게 돌았나 보다. 저기 손 끝을 가리키는 매표소가 멀다. 갑자기 귀찮아진다. 그래서 그럼 여기서 그냥 내려가도 되냐고 하니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래서 여기 장안문에서 나는 그 수원화성 걷기를 마무리했다.
가을날, 나는 혼자서 기차를 타고 여기 수원에 내려 화성을 돌면서, 이렇게 혼자만의 사색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구나와 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행복을 누릴려면 좀 더 자연과 가까와야 하고 그 자연안에서 다른 문화를 느껴야겠구나 하는 생각과 이런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져야 내가 자유에의 용기가 생기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철이 조금씩 들어가나 보다. 일상의 분주함을 멀리 하는 것과 내 안의 자유를 제대로 잘 꾸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가 그립다. 수원 화성을 혼자 돌며 그래도,나는 행복했다.
서울 들어가는 좌석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그건 어디서 기다려야 할까?
2008.10.17
수원역에서 화성을 돌아 서울 강남을 갔었다.
지금은 대전 갈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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