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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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한 스승님이 "열매맺는 삶"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승님이 열매맺는 삶에 반대되는 개념은 "꽃피우는 삶"이었지요. 나에게 "열매맺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을 하면서 몇 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주말에 참가한 꿈벗 가을 소풍에서 "꽃피우는 삶"에 대하여 "꽃피우는 삶"의 상징에 대하여 또 한 수 배웠습니다. 같은 것을 두고 이렇게 다양한 인생에 대한 은유와 상징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열매맺는 삶"과 "꽃피우는 삶"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보고자 마음 먹고 있었는데 이번 소풍을 통해서 좀 더 나은 은유와 상징들을 발견하게 되어서 참으로 좋습니다.
먼저 "열매맺는 삶"에 대한 은유가 저를 편하게 해 준 이야기부터 하고 싶습니다. 제가 썼던 글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인생을 그렇게 산을 오르는 것처럼 자꾸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만 느끼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꽃피울꺼야 그런데 꽃이 피고 나면 무엇을 하지 산에 올라 산 정상에 잠시 잠깐 서고 나면 무엇을하지 꽃이 피기도 전에 꽃이 지는 그길을 생각하면서 그 쓸쓸함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화무십일홍 인불백일호(花無十日紅 人不百日好) 라는 말이 있듯이 그 화려함 이후에 올 수 밖에 없는 그러한 기간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많은 "죽음"들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중에서 한창 절정기를 달렸던 정상급의 연예인들이 그뒤에 필연적으로 올 수 밖에 없는 낙화의 시절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를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많이 목격하셨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저에게 스승님의 "열매맺는 삶"에 대한 비유는 하나의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고 그러기를 소망하는 것이 바로 웃으면서 편안히 죽는 것입니다. 어릴적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본 저에게 할아버지의 임종의 순간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쯤에 윗마을에 있는 저희 집으로 오셔서 아버지와 술을 한 잔 나누신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기억은 조작되므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내려가셔서 한 달정도 알아 누우신 것 같습니다. 모든 자손들에게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그래서 서울로 시집가신 큰 고모님도 오셨습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고모부님이 들에 나가계신 어머니를 모셔오라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고모부님이 맥을 짚으시고 계시다가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돌아가셨다고. 호흡간에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지요. 이런 나에게 세상이 전하는 "꽃피우는 삶"에 대한 메시지들은 무엇인가 불만스럽게 만들었고 두렵게 만들었었지요. 특히 운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마흔즈음에 떨어지는 체력은 꽃은 고사하고 아직 제대로 자라지도 못했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불안감 비슷한 것으로 다가왔지요.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삶을 살면서 편안히 웃으면서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열매맺는 삶"에 대한 은유를 발견하고는 내 인생의 목표가 꽃피우는 시절의 화려함이 아니라 죽는 순간의 열매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름날에 물을 있는 힘껏 빨아올려 꽃을 피우고 난 뒤 열매를 살찌우기 위해 노력하는 이 가을을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여잡고 있던 마흔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움이 그렇게 쉽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가을 소풍에서 여러 스승이 저에게 가르쳐주십니다. 행복숲지기님이 내가 알고 있던 "꽃피우는 삶"에 대한 세상의 은유가 잘못되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행복숲지기 용규님께서 어떤 나무앞에서 죽은 나뭇가지를 꺽으십니다. 그리고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십니다. 몇분이 냄새를 맡으셨지만 잘 모르셨는데 저는 냄새를 맡고 그것이 생강나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용규형님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생강나무는 이른 봄철에 피는 꽃이라고 하는군요. 겨울을 나면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른 봄철에 피는 꽃들은 그래서 화려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국이야기도 하십니다. 서리가 내리는 그 시절에 꽃을 피우기로 한 산국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극한의 시절인 겨울에 피는 동백꽃이야기도 들려주십니다. 이것에 대하여 나무와 꽃을 이야기를 하는 용규형님이 들려주는 인생의 한자락을 보고 많이 느꼈습니다.
세상에는 화려한 꽃만 있는 것이 아님을 그 꽃을 피우는 시기가 또 여러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옛말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의 어떤 모습이나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어떤 상징을 발견하는가는 얼마만큼 생각을 해 보았는가에 달려있겠지요. 같은 것을 두고도 얼마든지 다른 상징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징들을 내 삶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열매맺는 삶"이 좋고 "꽃피우는 삶"이 나쁜 것이 아니라 "열매맺는 삶"도 좋고 "꽃피우는 삶"도 좋지만 저에게는 "열매맺는 삶"이 더 맞는 것 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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