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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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고문기술자 이 근안씨가 목사가 되었다는 말이 들린다. 깡패출신의 성직자가 훨씬 더 인간의 이해의 폭이 넓다고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던 나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또 인터넷의 여러 곳을 뒤져본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다녔는지 조사를 해 본다고 시간을 허비하는 내 모습을 알아챈다. 그가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를 비난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 사람의 행위는 미워하더라도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몇 군데 기사를 검색해보면 자신은 "역사"의 피해자이며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용서를 했다고 나온다. 안타까운일이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18&articleid=2008110802531629034&newssetid=1329
그를 비난하는 것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나는 그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니 참 불쌍한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목사가 되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근안을 비난하지 않고 나에게 도움이 되도록 생각하는데 집중을 해 보니 이근안 목사가 된 사건을 통해서 많은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다. 이제 그를 불쌍한 한 인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근안씨 목사가된 사건을 통해서 먼저 생각이 이어진 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등학교시절에 아직 광주의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야당인사 였던 친구로부터 광주의 이야기와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에 고원정 씨의 빙벽이라는 소설을 보면서 광주에 있었던 그 수많은 군인들이 미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수 천명 아니 수 만 명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살육(?)의 현장에 있었을 텐데 광주의 일이 민족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인간들에 의해서 의도된 살육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그들은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보게 된 강풀의 만화 26년(http://cartoon.media.daum.net/series/kangfull26/index.html?cartoonId=1799&type=g)에서 약간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픽션이기는 하지만 광주의 현장에서 있었던 두 진압군은 한 명은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원흉에게 복수를 꿈꾼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원흉의 경비실장이 된다. 그에게는 "전두환"이 청문회에서 끌려 나와서 창피당하는 사실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그 문제로 창피를 당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거짓이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두환을 보호해야겠다고 찾아간다. 픽션은 아니지만 아직도 전두환을 비호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경호실장이 된 그 진압군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원정의 빙벽이라는 소설에는 광주의 현장에서 진압군과 그 진압군에 의해서 어린 나이라는 것 때문에 살아난 사람이 군이라는 곳에서 재회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진압군은 미쳐있었고 아무도 간섭하지 못하는 망나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예전에는 고원정의 소설에 나오는 빙벽에 나오는 그 하사관 처럼 사람들이 미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강풀에서 처럼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 잘못을 구하는 아주 작은 사람과 자신의 행위를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하는 대다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근안씨가 목사 수업을 받고 있는 중에 혹은 목사가 된 후에 했다는 간증집회의 내용들을 보면 그런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불쌍한 인간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제 외부에 있던 시선을 거두어 들여서 나에게로 돌려보면 나 안에도 많은 그런 모습이 존재한다. 남에게는 말하기 쉽지 않은 많은 잘못을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 변명하고 또 변명하는 내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나 또한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고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합리화하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미칠 것 같은 마음을 덮어두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 자신을 비추어보면 남을 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둘째,
이근안 경감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영화가 이중간첩이라는 것이다. 일면 시대의 희생양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근안 목사의 인식을 이해할 만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중간첩에 보면 한석규를 고문하는 인간이 나온다. 그리고 그 뒤에는 "종교"의 탈을 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인간 백정을 부림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인간군상이 나온다. 물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게 된 고문을 하는 인간은 아주 작은 이익을 얻었을 수 있다. 이근안씨가 스스로 자랑하는 것처럼 국가가 준 무수한 훈장이 그러했을 것이다. 국가와 독재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 (어떤 면에서는 더 현실적이고 나보다 똑똑한 인간)이 진급이나 작은 하사금 때문에 인간 백정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직접 인간을 도륙한 고문기술자를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더 큰 악의 씨앗은 그 배후가 아닐까? 종교의 우산 아래 스스로는 아주 "성스럽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치장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칼을 써서 사람을 도륙하는 인간들 말이다.
직접 고문을 하는 인간이나 성스러운 표정을 짓는 인간이나 같이 그 조직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한 명은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인간이 되고 한 명은 그것을 명령하는 인간이 되도록 나누었을까? 그것은 지금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이근안 경감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하여 좀 처럼 동의할 수 없지만 그가 그 위의 조직이나 사람이나 독재정권의 아주 훌륭한 도구로서 역할을 한 점에 대해서 피해자라는 것에는 일부 공감이 가기도 한다.
=
이근안 목사가 진정으로 회개를 했는지 안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그 말을 듣고 받아 적은 기사를 보면서 참 불쌍한 것이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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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몇 군데 기사를 검색해보면 자신은 "역사"의 피해자이며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용서를 했다고 나온다. 안타까운일이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18&articleid=2008110802531629034&newssetid=1329
그를 비난하는 것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나는 그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니 참 불쌍한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목사가 되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근안을 비난하지 않고 나에게 도움이 되도록 생각하는데 집중을 해 보니 이근안 목사가 된 사건을 통해서 많은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다. 이제 그를 불쌍한 한 인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근안씨 목사가된 사건을 통해서 먼저 생각이 이어진 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등학교시절에 아직 광주의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야당인사 였던 친구로부터 광주의 이야기와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에 고원정 씨의 빙벽이라는 소설을 보면서 광주에 있었던 그 수많은 군인들이 미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수 천명 아니 수 만 명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살육(?)의 현장에 있었을 텐데 광주의 일이 민족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인간들에 의해서 의도된 살육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그들은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보게 된 강풀의 만화 26년(http://cartoon.media.daum.net/series/kangfull26/index.html?cartoonId=1799&type=g)에서 약간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픽션이기는 하지만 광주의 현장에서 있었던 두 진압군은 한 명은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원흉에게 복수를 꿈꾼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원흉의 경비실장이 된다. 그에게는 "전두환"이 청문회에서 끌려 나와서 창피당하는 사실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그 문제로 창피를 당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거짓이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두환을 보호해야겠다고 찾아간다. 픽션은 아니지만 아직도 전두환을 비호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경호실장이 된 그 진압군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원정의 빙벽이라는 소설에는 광주의 현장에서 진압군과 그 진압군에 의해서 어린 나이라는 것 때문에 살아난 사람이 군이라는 곳에서 재회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진압군은 미쳐있었고 아무도 간섭하지 못하는 망나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예전에는 고원정의 소설에 나오는 빙벽에 나오는 그 하사관 처럼 사람들이 미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강풀에서 처럼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 잘못을 구하는 아주 작은 사람과 자신의 행위를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하는 대다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근안씨가 목사 수업을 받고 있는 중에 혹은 목사가 된 후에 했다는 간증집회의 내용들을 보면 그런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불쌍한 인간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제 외부에 있던 시선을 거두어 들여서 나에게로 돌려보면 나 안에도 많은 그런 모습이 존재한다. 남에게는 말하기 쉽지 않은 많은 잘못을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 변명하고 또 변명하는 내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나 또한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고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합리화하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미칠 것 같은 마음을 덮어두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 자신을 비추어보면 남을 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둘째,
이근안 경감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영화가 이중간첩이라는 것이다. 일면 시대의 희생양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근안 목사의 인식을 이해할 만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중간첩에 보면 한석규를 고문하는 인간이 나온다. 그리고 그 뒤에는 "종교"의 탈을 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인간 백정을 부림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인간군상이 나온다. 물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게 된 고문을 하는 인간은 아주 작은 이익을 얻었을 수 있다. 이근안씨가 스스로 자랑하는 것처럼 국가가 준 무수한 훈장이 그러했을 것이다. 국가와 독재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 (어떤 면에서는 더 현실적이고 나보다 똑똑한 인간)이 진급이나 작은 하사금 때문에 인간 백정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직접 인간을 도륙한 고문기술자를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더 큰 악의 씨앗은 그 배후가 아닐까? 종교의 우산 아래 스스로는 아주 "성스럽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치장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칼을 써서 사람을 도륙하는 인간들 말이다.
직접 고문을 하는 인간이나 성스러운 표정을 짓는 인간이나 같이 그 조직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한 명은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인간이 되고 한 명은 그것을 명령하는 인간이 되도록 나누었을까? 그것은 지금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이근안 경감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하여 좀 처럼 동의할 수 없지만 그가 그 위의 조직이나 사람이나 독재정권의 아주 훌륭한 도구로서 역할을 한 점에 대해서 피해자라는 것에는 일부 공감이 가기도 한다.
=
이근안 목사가 진정으로 회개를 했는지 안 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그 말을 듣고 받아 적은 기사를 보면서 참 불쌍한 것이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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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이근안씨를 어떤 방법으로라도 좀 혼을 내주고 욕을 해주고 싶은데 요리 조리 잘도 빠져나가고 자기는 일종의 희생자라고 하면서 자기 합리화하는 것이 얄미운데 이를 어찌 할수가 없다는 것 십분 이해가 갑니다.
맨처음 이런 일을 시작하게 한사람이 아니라면 모두 다 수족일 뿐입니다.만약에 자기가 아니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이일을 했을 것이다하고 자기 합리화할 뿐입니다.사실 그런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그렇다고 해도 이일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면 그에 응하는 책임을 져야지요.그렇게라도 살아야하는 인생이 불쌍할 뿐이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말입니다.암튼 쉽게 결론낼일은 아닌것 같습니다.사람사는 것이 그렇게 쉽다면 우리 모두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있겠어요.의미있는 고민이라고 봅니다.
맨처음 이런 일을 시작하게 한사람이 아니라면 모두 다 수족일 뿐입니다.만약에 자기가 아니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이일을 했을 것이다하고 자기 합리화할 뿐입니다.사실 그런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그렇다고 해도 이일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면 그에 응하는 책임을 져야지요.그렇게라도 살아야하는 인생이 불쌍할 뿐이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말입니다.암튼 쉽게 결론낼일은 아닌것 같습니다.사람사는 것이 그렇게 쉽다면 우리 모두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있겠어요.의미있는 고민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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