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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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화두 중 하나는 내 선(線)을 찾는 것이다. 중학생일 때, 내가 그리던 수묵화를 보던 미술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네 선은 자신감이 없구나.” 그의 말처럼 나는 한번에 선을 내려 긋지 못한다. 수많은 잔선들이 모아져서 형상이 만들어진다. 잠시 존 버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처음엔 종이에 옮길 선과 형태, 색조를 알아내기 위해 대상에 대해 질문한다. 드로잉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쌓아간다. 물론, 처음 대답에 대해 계속 질문하면서 수정사항도 쌓인다. 드로잉은 수정이다. ... 어느 순간 - 운이 좋다면 - 쌓여가던 수정이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그 말은 한 무더기의 표식이기를 그치고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어색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
나는 평소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만의 선을 가지고 싶어한다. 이것은 분명 헛된 욕심이다. 대가들이 긋는 그 멋진 일획은 분명 셀 수도 없이 많은 스케치를 거쳐서 나왔을테니. 그러니 실망하진 말자. 제대로 된 그림의 첫걸음은 제대로 보는 데서 시작하고, 존 버거의 말처럼 끊임없이 질문하며 수정해나간다면 한 무더기의 이미지는 하나의 형상이 될테니. 바로 내 책상 위에 시든 장미꽃 한 송이가 존재하듯, 서툴지만 그렇게 하나씩 쌓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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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시든 장미꽃 미완성 스케치
** 존 버거, 벤투의 스케치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