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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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에게는 이제 무슨 업무가 떨어져도 심드렁하다. 별 느낌이 없다. 그저 회사일이니 해야 한다는 당위성 그 하나로 기계적으로 회사에 나오고 있다.
그는 그가 원래 하던 일을 하면서 조직의 프로세스 개선의 위해 만들어진 부수적 팀의 업무를 병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는 그 프로세스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또 다시 이런 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는 도대체 흥이 나지 않는다.
몇 해 전부터 이번과 유사한 시도는 계속 되어왔다. 그러나 사람 모으고 자료 만들어서 보고하는데 그치고 실제 변화는 미미했다. 있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과 부서에 혼란을 주었으며, 그 혼란을 수습하느라고 또 다른 부수적 조직이 생겨났다. 그것이 변화의 고통이며 과정이라고 일러주는 상사도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저 일만 만들고 직원들의 시간을 빼앗아갈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이제 지쳤다. 그는 개선이 필요한 프로세스 안에서 필요 이상의 수고를 들이고 있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일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혼자 힘으로는 어찌 할 수도 없을뿐더러 조직이 돌아가는 형상으로 보아도 상사를 보아도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나오는 열정도 다 사그라들었다. 그의 눈에 이곳은 비전은 커녕 희망도 없어보인다.
그는 요사이 ‘내면적 자기 퇴직’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는 아무런 열정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해야 할 일만 수동적으로 대처한다. 퇴근 시간만 기다려진다. 그는 회사에서의 시간이 아깝다. 그의 진정한 생활은 퇴근 이후부터이다. 그는 기회를 보아 이직할 마음을 먹고 있다.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는 그의 친구 B, 그는 최근에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하였다. 그가 사내 동료 X군에 대해 한 말이 와전되고 와전되어 마치 험담을 한 것 처럼 되었다. 그 말이 B를 동료 깎아내리고 올라서려는 얄미운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어이가 없었지만 회사에서는 말 한 마디도 쉽게 하지 말라는 선배의 조언을 떠올렸다.
그것은 일시적 한 사건이었던 한편, 그는 회사에 있을 때는 언제나 가슴 한 켠이 답답하다. 특히 상사와 대화 할 때 그러하다. 그는 세모를 말하고 싶은데 네모를 말해야 한다. 상사가 원하기 때문이다. 세모가 아닌 동그라미를 말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다. 상사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려 한다. 그 세모와 네모가 전혀 다른 것일 때는 그도 그 괴리감에 불편하다. 하지만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홍길동이 생각나면서 이번도 웃으며 넘어간다.
책상 옆 벽에는 먼지 쌓인 액자가 있다. 회사의 비전과 사명이라고 하는 것들이 적혀 있다. 자세히 본 적은 없지만 참 여러 문장도 적혀 있다. 매주 아침 월요일 방송 조회 마다 나오는 말이지만 아직도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와 상관 없으니까.
의사소통 그런 것 좀 안되어도 이 곳은 있을만 하다. 별로 아쉽지 않다. 무엇보다 그는 그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 보수도 괜찮고 회사의 지명도도 꽤 있는 편이다.
같은 조직에 있지만 하는 업무는 다른 그의 동료 C, 그는 고객을 직접 대응하는 영업 업무를 하고 있다. 고객 대응하는 법, 판매와 구매 규약, 관행 등 이제는 그도 이곳에서 수년이 지난 터라 노하우를 어느 정도 터득했다. 또한 그는 이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전문적인 지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의 지식은 있어야 했다. 이미 이 업무를 한 지 여러 해가 지난 그는 이제 회사 제품에 대한 웬만큼의 정보와 지식은 섭렵하였다고 생각한다.
그가 시간을 지나고 돌이켜 보니, 그가 업무와 제품을 배우고 아는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었음에 쓴웃음이 피식 나온다. 그는 선임의 어깨 너머로 배우고 상사의 질책 속에서 배웠다. 고객도 천차 만별의 양상을 하고 있는지라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도 동의한다. 하지만 언제나 아쉬움은 있었다. 제품에 대한 지식도 그렇고 각종 규약이나 행태도 그렇고 체계적인 교육이 있었다면 조직이나 개인에게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라고.
물론 교육 과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배운 것은 없었다. 형식에 그쳤다는 인상 뿐이다. 조직에서는 얼마나 전달이 잘 되었는지 알려는 피드백은 전혀 없었다. ‘교육했다’라는 것만 중요한 모양이다. 그리고 계속 개발되는 제품에 대한 제품 교육은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는 이런 아쉬움을 선임에게 토로했다가 이런 핀잔도 들었다.
“여기는 학교가 아닙니다. 알아서 배우고 알아서 크는 거죠.”
그는 이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 건지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A와는 달리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는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회사일이 다 그런거지 뭐.’
천성적으로 밝고 낙천적인 그에게 아직 극한의 상황은 오지 않은 것인가.
그의 또 다른 동료 D는 요사이 심각함에 빠져들었다. 그가 하는 일이 그가 하는 업무가 도무지 비전있어 보이지 않았다. 최근 그 옆자리에 있던 선배 하나가 퇴사하였다. 외국에서 공부를 더 한 후 다시 돌아와 다른 일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의 구체적인 계획을 들어보니 그도 솔깃하였다.
그보다 10년쯤 앞선 상사들을 봐도 답답하기만 하다. 저 분들 지금 바로 퇴사하게 된다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이 비슷한 일을 받아주는 곳이 별로 없을텐데. IMF 구제금융 때 명퇴 당한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군상이 떠올랐다. 그는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지만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남들 하는 대로 학점 잘 따고 토익 점수 웬만큼 따고 남들 가는 이 곳에 입사하였다. 그만의 내재적 결정을 한 적이 없다.
이 회사의 다른 것에는 대체로 만족한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일이 자꾸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어쨌든 지금은 해야 하니까 한다. 뚜렷한 대안이나 계획 없이 선뜻 다른 것을 어찌하기도 두렵다.
이렇게 직원 상을 하나하나 그려보려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나는 ‘월드 클래스를 향하여’에서 인재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피고용 평범한 직원들이 어떤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지 어떻게 대응하는 지 몇 가지 예를 그려보고 싶었다.(조금 극단으로 몰고 간 부분도 있다.) 보통 경영서에서는 ‘이러하면 좋다, 이러하면 좋지 않다. 그러니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서술이 주를 이루지만, 그 전에 조금 보여주고 싶었다. 어려움들을 쓰고 보니 약간 어두움도 느껴진다.
사실 직업은 자신이 찾는 것이며, 직장에서 모든 길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사회는 계속 변하고 있다. 디지털 정보 기술이 중요해지며, 지식 기반의 사회로 옮아간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생성되고 어떤 직업은 자취를 감춘다. 직장보다 직업의 개념이 우선시된다. 직장 내에서는 수직적 구조가 점점 수평적 구조로 이행된다.
한 개인이 한 직원이 어떤 기업에 어떤 직업에 속해 있다고 할 때, 그 직원은 여러 요소를 접하고 있다. 직업(일), 보수, 복지, 교육, 인사, 고과, 프로세스, 상사, 동료, 부하직원, 근무시간 등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많다. 그리고 누구나 우선순위로 여기는 것들이 있어서 직장 직업 선정과 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처하는 직업적 현실은 모두 개인의 문제일까? 매우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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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이상해졌어요. 수습안됨.
IP *.120.66.142
그는 그가 원래 하던 일을 하면서 조직의 프로세스 개선의 위해 만들어진 부수적 팀의 업무를 병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는 그 프로세스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또 다시 이런 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는 도대체 흥이 나지 않는다.
몇 해 전부터 이번과 유사한 시도는 계속 되어왔다. 그러나 사람 모으고 자료 만들어서 보고하는데 그치고 실제 변화는 미미했다. 있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과 부서에 혼란을 주었으며, 그 혼란을 수습하느라고 또 다른 부수적 조직이 생겨났다. 그것이 변화의 고통이며 과정이라고 일러주는 상사도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저 일만 만들고 직원들의 시간을 빼앗아갈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이제 지쳤다. 그는 개선이 필요한 프로세스 안에서 필요 이상의 수고를 들이고 있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일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혼자 힘으로는 어찌 할 수도 없을뿐더러 조직이 돌아가는 형상으로 보아도 상사를 보아도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나오는 열정도 다 사그라들었다. 그의 눈에 이곳은 비전은 커녕 희망도 없어보인다.
그는 요사이 ‘내면적 자기 퇴직’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는 아무런 열정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해야 할 일만 수동적으로 대처한다. 퇴근 시간만 기다려진다. 그는 회사에서의 시간이 아깝다. 그의 진정한 생활은 퇴근 이후부터이다. 그는 기회를 보아 이직할 마음을 먹고 있다.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는 그의 친구 B, 그는 최근에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하였다. 그가 사내 동료 X군에 대해 한 말이 와전되고 와전되어 마치 험담을 한 것 처럼 되었다. 그 말이 B를 동료 깎아내리고 올라서려는 얄미운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어이가 없었지만 회사에서는 말 한 마디도 쉽게 하지 말라는 선배의 조언을 떠올렸다.
그것은 일시적 한 사건이었던 한편, 그는 회사에 있을 때는 언제나 가슴 한 켠이 답답하다. 특히 상사와 대화 할 때 그러하다. 그는 세모를 말하고 싶은데 네모를 말해야 한다. 상사가 원하기 때문이다. 세모가 아닌 동그라미를 말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다. 상사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려 한다. 그 세모와 네모가 전혀 다른 것일 때는 그도 그 괴리감에 불편하다. 하지만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홍길동이 생각나면서 이번도 웃으며 넘어간다.
책상 옆 벽에는 먼지 쌓인 액자가 있다. 회사의 비전과 사명이라고 하는 것들이 적혀 있다. 자세히 본 적은 없지만 참 여러 문장도 적혀 있다. 매주 아침 월요일 방송 조회 마다 나오는 말이지만 아직도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와 상관 없으니까.
의사소통 그런 것 좀 안되어도 이 곳은 있을만 하다. 별로 아쉽지 않다. 무엇보다 그는 그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 보수도 괜찮고 회사의 지명도도 꽤 있는 편이다.
같은 조직에 있지만 하는 업무는 다른 그의 동료 C, 그는 고객을 직접 대응하는 영업 업무를 하고 있다. 고객 대응하는 법, 판매와 구매 규약, 관행 등 이제는 그도 이곳에서 수년이 지난 터라 노하우를 어느 정도 터득했다. 또한 그는 이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전문적인 지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의 지식은 있어야 했다. 이미 이 업무를 한 지 여러 해가 지난 그는 이제 회사 제품에 대한 웬만큼의 정보와 지식은 섭렵하였다고 생각한다.
그가 시간을 지나고 돌이켜 보니, 그가 업무와 제품을 배우고 아는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었음에 쓴웃음이 피식 나온다. 그는 선임의 어깨 너머로 배우고 상사의 질책 속에서 배웠다. 고객도 천차 만별의 양상을 하고 있는지라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도 동의한다. 하지만 언제나 아쉬움은 있었다. 제품에 대한 지식도 그렇고 각종 규약이나 행태도 그렇고 체계적인 교육이 있었다면 조직이나 개인에게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라고.
물론 교육 과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배운 것은 없었다. 형식에 그쳤다는 인상 뿐이다. 조직에서는 얼마나 전달이 잘 되었는지 알려는 피드백은 전혀 없었다. ‘교육했다’라는 것만 중요한 모양이다. 그리고 계속 개발되는 제품에 대한 제품 교육은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는 이런 아쉬움을 선임에게 토로했다가 이런 핀잔도 들었다.
“여기는 학교가 아닙니다. 알아서 배우고 알아서 크는 거죠.”
그는 이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 건지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A와는 달리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는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회사일이 다 그런거지 뭐.’
천성적으로 밝고 낙천적인 그에게 아직 극한의 상황은 오지 않은 것인가.
그의 또 다른 동료 D는 요사이 심각함에 빠져들었다. 그가 하는 일이 그가 하는 업무가 도무지 비전있어 보이지 않았다. 최근 그 옆자리에 있던 선배 하나가 퇴사하였다. 외국에서 공부를 더 한 후 다시 돌아와 다른 일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의 구체적인 계획을 들어보니 그도 솔깃하였다.
그보다 10년쯤 앞선 상사들을 봐도 답답하기만 하다. 저 분들 지금 바로 퇴사하게 된다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이 비슷한 일을 받아주는 곳이 별로 없을텐데. IMF 구제금융 때 명퇴 당한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군상이 떠올랐다. 그는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지만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남들 하는 대로 학점 잘 따고 토익 점수 웬만큼 따고 남들 가는 이 곳에 입사하였다. 그만의 내재적 결정을 한 적이 없다.
이 회사의 다른 것에는 대체로 만족한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일이 자꾸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어쨌든 지금은 해야 하니까 한다. 뚜렷한 대안이나 계획 없이 선뜻 다른 것을 어찌하기도 두렵다.
이렇게 직원 상을 하나하나 그려보려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나는 ‘월드 클래스를 향하여’에서 인재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피고용 평범한 직원들이 어떤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지 어떻게 대응하는 지 몇 가지 예를 그려보고 싶었다.(조금 극단으로 몰고 간 부분도 있다.) 보통 경영서에서는 ‘이러하면 좋다, 이러하면 좋지 않다. 그러니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서술이 주를 이루지만, 그 전에 조금 보여주고 싶었다. 어려움들을 쓰고 보니 약간 어두움도 느껴진다.
사실 직업은 자신이 찾는 것이며, 직장에서 모든 길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사회는 계속 변하고 있다. 디지털 정보 기술이 중요해지며, 지식 기반의 사회로 옮아간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생성되고 어떤 직업은 자취를 감춘다. 직장보다 직업의 개념이 우선시된다. 직장 내에서는 수직적 구조가 점점 수평적 구조로 이행된다.
한 개인이 한 직원이 어떤 기업에 어떤 직업에 속해 있다고 할 때, 그 직원은 여러 요소를 접하고 있다. 직업(일), 보수, 복지, 교육, 인사, 고과, 프로세스, 상사, 동료, 부하직원, 근무시간 등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많다. 그리고 누구나 우선순위로 여기는 것들이 있어서 직장 직업 선정과 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처하는 직업적 현실은 모두 개인의 문제일까? 매우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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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이상해졌어요. 수습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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