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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9일 06시 25분 등록
월드 클래스 급 하루

오늘은 10월 9일 한글날이자, 우리 부모님 결혼 기념일이다.
어제 새벽기도를 다녀와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어머니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아빠랑 여행 가서 하루 자고 올 테니 미역국이랑 햇반 챙겨 먹어라”

내가 잠시 눈 붙인 사이, 가을 날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발길을 재촉하셨나 보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참 좋았다. 내가 여행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뿌듯한 그런 기분? 28년 전 오늘 같은 날이 있었기에 내가 존재하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어제 오늘은 전적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과 나만을 위한 공간 속에서 지낼 수 있었다. 서재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음악을 듣기도 하고, 그러다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 놓고 책을 보다 그 공간이 지루해지면 거실로 향한다. 텔레비전을 즐겨 보지 않는 편인데다 말하기 다소 부끄럽지만 우리 집 텔레비전을 켤 줄 모르기에(케이블 때문에 한 개 이상의 버튼을 눌러야 함) 평소에 잘 듣지 않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 뱃속의 시계가 꼬르륵거리면, 전자 레인지에 햇반을 돌려 어머니가 챙겨 놓고 가신 반찬을 곁들여 맛있게 배불리 먹고 후식으로 옥수수 2개를 먹는다. 그리고는 침대 속으로 직행해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들었다가 또 다시 책을 보다 꿈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잠시 눈을 감고 어떤 책을 쓸까 고민도 해보고, 이번 주 스케줄을 머릿속에서 정리해 보기도 하고, 저번 주에 들었던 유명인사들의 강연 내용을 되새김질 해보기도 한다. 중간 중간에 국화차도 마시고, 홍시도 맛보고, 식빵도 먹고, 군것질도 한다.

나에게는 오늘 같은 날이 월드 클래스 급 하루이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오직 나만이 주인이 되는 그런 하루 말이다. 그 어떤 것에도 끌려가지 않고 내가 주도할 수 있는, 내 마음대로 시간과 공간을 쓸 수 있는 하루.

여담이지만, 나는 소위 말하는 ‘명품’ 에 별로 관심이 없다. 나 스스로가 명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명품으로 치장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하면 너무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어쨌거나 나는 그렇다. 나 스스로가 명품이고, 나에게는 오늘 같은 하루가 월드 클래스 급 하루이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부모님이 여행에서 돌아올 텐데 근사한 곳에 가서 맛있는 밥 한끼 사들여야겠단 생각이 든다. 결혼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리고 월드 클래스 급 딸이 되기 위하여…….
IP *.6.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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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0.09 12:13:52 *.75.15.205
윤이만의 월드 클레스급 명품 식단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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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10.09 14:44:07 *.132.76.132
너무 이것저것 먹었나? ^^;;;;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오밤중에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그랬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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