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時田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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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이 찾아올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며, 필연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어느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세상이 '우르르 쾅쾅' 뒤흔들리고, 땅은 털썩 주저앉을 듯 크게 한숨을 내쉬고, 무언가가 양 어깨를 힘껏 움켜잡고 침대에서 놓아주지 않던 그런 아침이었습니다. 겨우 눈을 뜨니 하얀 천창이 이런 질문으로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넌 왜 눈을 뜨니?"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거려 보지만 그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고 제자리입니다. 머리 속은 양 입술을 꽉 깨물고, 이를 꽉 앙다문 채 고집을 부리고, 심장은 뜨겁게 달구어진 채 마구 날뜁니다. 마음은 그 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 저리 헝클어진 미로 속을 헤맬 뿐입니다.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아침, 저는 노트 가득 의미 없는 낙서와 함께 이런 글만 끄적거려 댔습니다.
"내 삶의 중심이 되는 열정은 대체 무엇일까?"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진 저는 투덜대며 출근을 했습니다. 물먹은 이불 솜처럼 무거운 하루가 집 없는 달팽이처럼 온 몸을 길게 끌며 느릿느릿 지나갑니다. 마음처럼 뿌옇게 흐린 하늘이 오전과 오후가 지나가는 텅 빈 공간들을 채워나갑니다. 그렇게 힘겹게 저녁이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가수 나윤선과 재즈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가 함께 하는 콘서트를 보기로 한 날입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새로 오픈한 종로의 어느 아트홀을 향했습니다. 울프 바케니우스의 깊고 조용한 기타 연주로 시작된 그 날의 공연은 나윤선의 신묘한 창법과 어울려 두 시간 동안 마음껏 날아다녔습니다. 오선지 밖의 음표들인 듯 격식을 벗어난 자유로운 재즈 음악과 함께 잔뜩 긴장된 온 몸의 근육들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Avec le temps(시간과 함께)'이란 레오 페레의 샹송과 톰 웨이츠의 'Jockey Full Of Bourbon(버본에 완전히 취해)'이란 곡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네요. 인생이란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거겠죠. 노래 가사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했던 시간들, 빗 속에서 함께 헤매던 시간들, '늦지 마세요', '감기 들면 안 돼요.'라고 서로에게 속삭이던 그 다정하던 순간들도, 시간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슬픔에 취해, 아픔을 못 이겨, 버본에 쩔어 쓰러지기도 하지만 우린 다시 잠에서 깨어나겠죠. 하루를 살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죠. 다시 사랑을 하고, 내일의 꿈을 꾸겠죠. 산다는 건 그렇게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인가 봅니다. 부드러운 나윤선의 노래 소리와 함께 흔들리던 마음 속의 파편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무언가 잃어버렸던 것이 제 영혼 속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저는 참 많은 것들에 갇혀 있었습니다. 세상이 만든 벽들도 모자라, 스스로 만든 벽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제 많이 서툴겠지만 상자 밖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문 밖의 문을 열고, 길 밖의 길을 걸어가야 할 때입니다. 자신 자신의 길은 그렇게 혼자서 찾아가야 하는 거라고, 춤추듯, 꿈꾸듯, 삶 속에서 직접 부딪히며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거라고 음악은 제게 일깨워주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종로를 잠시 걸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풍뎅이'라 별명 붙인 캠코더를 들고서, 술 취한 사람들 위를 비춰주는 불빛들을 담아보았습니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 더욱 밝게 반짝입니다.' 물론 우린 치열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삶의 중심이 되는 열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삶의 리듬에 몸에 맡기고 가만히 흘러가야 할 때도 있어야 하나 봅니다. 한 시인*이 노래하듯 "툇마루에 앉아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고, "문을 닫고" 누워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들어야 할 때도 있어야 하나 봅니다.
당신이 간절하게 그리는 미래가 있다면 너무 조급해하진 마세요. 당신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가슴 벅찬 꿈과 함께, 설레는 가을 바람과 함께 그 열정의 중심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으니까요. 때론 흔들리기도 하고, 술 취한 행인들처럼 비틀거리기도 하겠지만, 그 꿈의 시간들은 오늘 하루도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때론 천천히, 때론 불현듯, 난데없이 그렇게 하나 둘씩...
이상한 하루의 끝, 종로 거리의 불빛 사이에는 고은 시인의 시 한 수가 걸려 있었습니다.
"진실은 저녁에 온다. / 누구에게는 빈 가슴이고 / 누구에게는 어둠의 시작이다. / 그것은 / 너무 늦게 와서 하나 하나 이야기가 된다 // 벌써 술집 불빛들 서둘러 빛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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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남준, 다만 흘러가는 것을 듣다
** 고은, 저녁
IP *.249.162.56
어느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세상이 '우르르 쾅쾅' 뒤흔들리고, 땅은 털썩 주저앉을 듯 크게 한숨을 내쉬고, 무언가가 양 어깨를 힘껏 움켜잡고 침대에서 놓아주지 않던 그런 아침이었습니다. 겨우 눈을 뜨니 하얀 천창이 이런 질문으로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넌 왜 눈을 뜨니?"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거려 보지만 그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고 제자리입니다. 머리 속은 양 입술을 꽉 깨물고, 이를 꽉 앙다문 채 고집을 부리고, 심장은 뜨겁게 달구어진 채 마구 날뜁니다. 마음은 그 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 저리 헝클어진 미로 속을 헤맬 뿐입니다.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아침, 저는 노트 가득 의미 없는 낙서와 함께 이런 글만 끄적거려 댔습니다.
"내 삶의 중심이 되는 열정은 대체 무엇일까?"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진 저는 투덜대며 출근을 했습니다. 물먹은 이불 솜처럼 무거운 하루가 집 없는 달팽이처럼 온 몸을 길게 끌며 느릿느릿 지나갑니다. 마음처럼 뿌옇게 흐린 하늘이 오전과 오후가 지나가는 텅 빈 공간들을 채워나갑니다. 그렇게 힘겹게 저녁이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가수 나윤선과 재즈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가 함께 하는 콘서트를 보기로 한 날입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새로 오픈한 종로의 어느 아트홀을 향했습니다. 울프 바케니우스의 깊고 조용한 기타 연주로 시작된 그 날의 공연은 나윤선의 신묘한 창법과 어울려 두 시간 동안 마음껏 날아다녔습니다. 오선지 밖의 음표들인 듯 격식을 벗어난 자유로운 재즈 음악과 함께 잔뜩 긴장된 온 몸의 근육들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Avec le temps(시간과 함께)'이란 레오 페레의 샹송과 톰 웨이츠의 'Jockey Full Of Bourbon(버본에 완전히 취해)'이란 곡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네요. 인생이란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거겠죠. 노래 가사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했던 시간들, 빗 속에서 함께 헤매던 시간들, '늦지 마세요', '감기 들면 안 돼요.'라고 서로에게 속삭이던 그 다정하던 순간들도, 시간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슬픔에 취해, 아픔을 못 이겨, 버본에 쩔어 쓰러지기도 하지만 우린 다시 잠에서 깨어나겠죠. 하루를 살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죠. 다시 사랑을 하고, 내일의 꿈을 꾸겠죠. 산다는 건 그렇게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인가 봅니다. 부드러운 나윤선의 노래 소리와 함께 흔들리던 마음 속의 파편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무언가 잃어버렸던 것이 제 영혼 속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저는 참 많은 것들에 갇혀 있었습니다. 세상이 만든 벽들도 모자라, 스스로 만든 벽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제 많이 서툴겠지만 상자 밖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문 밖의 문을 열고, 길 밖의 길을 걸어가야 할 때입니다. 자신 자신의 길은 그렇게 혼자서 찾아가야 하는 거라고, 춤추듯, 꿈꾸듯, 삶 속에서 직접 부딪히며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거라고 음악은 제게 일깨워주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종로를 잠시 걸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풍뎅이'라 별명 붙인 캠코더를 들고서, 술 취한 사람들 위를 비춰주는 불빛들을 담아보았습니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 더욱 밝게 반짝입니다.' 물론 우린 치열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삶의 중심이 되는 열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삶의 리듬에 몸에 맡기고 가만히 흘러가야 할 때도 있어야 하나 봅니다. 한 시인*이 노래하듯 "툇마루에 앉아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고, "문을 닫고" 누워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들어야 할 때도 있어야 하나 봅니다.
당신이 간절하게 그리는 미래가 있다면 너무 조급해하진 마세요. 당신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가슴 벅찬 꿈과 함께, 설레는 가을 바람과 함께 그 열정의 중심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으니까요. 때론 흔들리기도 하고, 술 취한 행인들처럼 비틀거리기도 하겠지만, 그 꿈의 시간들은 오늘 하루도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때론 천천히, 때론 불현듯, 난데없이 그렇게 하나 둘씩...
이상한 하루의 끝, 종로 거리의 불빛 사이에는 고은 시인의 시 한 수가 걸려 있었습니다.
"진실은 저녁에 온다. / 누구에게는 빈 가슴이고 / 누구에게는 어둠의 시작이다. / 그것은 / 너무 늦게 와서 하나 하나 이야기가 된다 // 벌써 술집 불빛들 서둘러 빛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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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남준, 다만 흘러가는 것을 듣다
** 고은,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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