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素賢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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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써니는 이 맘 때의 나무 빛을 사랑한다. 봄이 오면 무언가 알지 못할 기운에 이끌려 대지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듯이, 그렇게 몸이 순수하게 움직인다. 순함 속에 엮어지는 순간만큼 귀중한건 없다.
써니의 북까페는 큰 나무가 자리 잡은 하얀 벽돌집이다. 북한산에 접해 있어, 아침에 2층 창문을 열 때 마다 시원한 숲 냄새를 맡곤 한다. 오늘도 유리창을 닦다가 고개를 드니, 언제나처럼 저만치 구파발 너머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산은 바위와 소나무 같은 상록수들이 많아서인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 푸른 아침 하늘을 배경으로 늘 바라보는 봉이 보인다.
‘내 새끼들..’ 가지런히 늘어선 3개의 봉을 바라보며 써니는 생각한다. 몇 년 전, 한 스승을 만나 이곳 주변을 자주 오가게 되었다. 우연히 길을 지나다 만나게 된 하얀 벽돌집. 그리고 2층에서 창밖을 통해 다시 만난 새끼들. 그때 그곳에서, 써니의 ‘새끼’라는 표현은 모두를 울렸다. 한국의 어머니에게 자식은 언제나 새끼인 것이다. 살이 스러져라 아프고 온몸의 피가 하나하나 맺히고, 뼈가 사랑으로 부스러지는 살붙이, 피붙이인 것이다. 그날의 써니의 뜨거운 눈물은 후련히 살다 홀연히 사라지려는 삶의 한 부분을 받아들이게 했다. 새끼는 어미의 역사를 뛰어넘어 어미의 역사를 후세에 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써니의 개미어미처럼 내 자신도 온전한 벼룩의 어미로 살아가야 한다. 개미의 오장육부를 걷어내고 말갛게 씻겨서, 벼룩의 생애와도 같이 탈피를 거쳐야 한다. 진정한 한 마리 성충의 준수한 벼룩으로 새끼들 앞에 서리라.
북한산 중턱, 2층으로 자라 잡은 써니의 북 까페는 휴식과 치료가 함께하는 공간이다. 써니는 몇 년 전 연구원 ‘모모’의 리듬에 전염되어, 춤 떼라피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춤 떼라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접목하여 치료교육의 구체적 모색을 찾고 타진해 보기 시작했다. 한없이 부어오르는 벼룩의 간덩이는 계속해서 품되,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 가능한 삶으로 작게나마 북 까페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써니는 이 집에 "써니의 집" 이라는 작은 팻말하나를 예쁘게 걸었다. 시간이 되는 대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책과 자연을 통해 휴식 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산을 향해 열려있는 작은 마당에는 원예치료를 위해 여러 가지 식물과 꽃들을 곳곳에 심었다. 써니는 그들을 꿈꽃, 꿈나무, 꿈잔디라 이름 지었다. 그네들은 집의 분위기를 돋보임과 동시에, 간간히 식단과 치료에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 비빔밥에 허브꽃을 넣어 내놓으면, 모두 자지러질 듯 맛있게 식사한다. 저녁에는 각자의 상태에 맞게 적절한 농도로 맛사지도 즐기며 최상의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간간히 야생초들도 모아두었다가 약초나 차로도 활용을 하니, 하얀 벽돌집을 "써니 가든"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1층에는 열린 마당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유럽스타일의 넓은 주방과 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꾸몄다.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며 모아온 책들이 곳곳에 자태를 뽐내며 자리 잡고 있다. 경험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책을 통해, 공간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세계의 경험을 전달한다.
1층에는 써니에게 더욱 의미 있는 특별한 벽화 2개가 존재한다. 하나는 높은 천장에 자리 잡은 써니의 꿈. 꿈 전문 화가 정화가 써니의 꿈을 주제로 멋진 그림을 천장에 장식해 주었다. ‘따로 또 같이’의 써니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그리고 홀 한쪽 벽면에는 늘 그림에 목말라 하던 모모의 작품이 함께하고 있다. 흰 벽면에 그려진 해바라기는 써니의 에너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언니를 바라보면, 햇빛에 불타오르는 강렬한 해바라기가 떠올라.” 모모는 늘 이야기 했었다.
2층은 천창을 높게 드리우고 사방을 밝고 환하게 꾸몄다. 특히 통풍이 잘 되도록 설계하였다. 왜냐하면 침 치료와 뜸 치료, 무용치료, 연극치료, 명상등 역동적인 움직임을 요하는 작업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산을 바라보며, 자연과 함께 숨쉬며, 나를 찾아가는 기분이란, 글 쓰며 느끼는 뽕 맛만큼 진하고 깊다.
또한 변경연의 많은 모임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모임이 있을 때 마다 특별요리를 선보이는 재동군의 재롱에 써니는 더욱 행복하다. 차분하고 듬직한 성격이 언제 봐도 든든하니, 각 기수마다 초청되어 써니 만큼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부님도 사모님과 함께 수시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예방 침 치료를 받는다. 자율보사가 되는 쑥뜸 치료가 좋아 중독이 된 듯 즐기시곤 한다. 하지만 뜸은 핑계이고, 써니의 밝음에 중독 되었으리라.
써니는 아침 신문이 담장을 넘어서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리창으로 비추이는 그녀를 바라본다. ‘이건 현실이 아니지요?’라고 묻는 써니의 표정. 피식 웃음이 온몸으로 흘러 나와 기지개를 켠다. 눈을 비비며 현관을 지나 마당으로 나갔다. 대문 앞 아침 신문이 떨어져 있다. 열린 마당에 놓여진 꿈의자에 앉아, 담요 속으로 몸을 깊게 맡기며, 신문을 바라본다. 어제 모모의 전시회 때 공연한 친구들의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다.
케오스 리듬에 맞추어 하늘 위로 치켜 올려져 있는 두 팔, 허공으로 높이 뛰어오른 두 발, 새의 깃처럼 허공으로 퍼져나간 머리카락. 그녀들은 분명 날개가 없는데도 날고 있다. 투명한 날개가 휘파람을 부는 것 같다. 그 휘파람 써니의 입으로 전해져, 어느새 휘파람의 노래 가락이 흘러나왔다.
나의 친구들, 그녀들이 북 까페를 처음 방문하던 때가 떠오른다. 누구는 날개가 없으면 날 수가 없다고 하였고, 누구는 나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녀들이 자신의 어깻죽지에서 솟아나는 나비의 가벼운 날개를 발견하고, 이렇게 멋진 공연을 해냈다. 그녀들은 장애 여성이다. 써니는 장애인을 위한 휴식과 치료를 위해 많은 모색을 하였다. 그 첫 번째 시도로 그녀들과 함께 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꿈을 춤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처음 프로그램은 특별히 구본형 선생님께서 직접 안내해 주었고, 춤 작업은 모모가 함께 작업해 주었다. 그리고 모모의 제안으로 모모의 개인전 ‘환한 상처’에서 특별 공연을 올리기로 하였다.
이때 써니의 꿈결 같은 시간을 현실의 세계로 돌려놓고 싶다는 듯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잘 잤어? 기사 봤어 언니? 우리 정말 멋지게 나왔지? 날개가 없이도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그렇게 멋진 날개를 가진지 처음 알았어.”
모모도 써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써니는 그저 침묵의 미소로 모모에게 답을 하였다.
써니는 다시 한 번 사진을 깊게 바라본다. 각자 다른 모양새로 춤을 추지만 하나의 멋진 그림을 그려내는 그녀들. 이것이 변경연이고 써니의 철학이며, 써니의 사명이다. 하염없는 행복과 무게를 뛰어 넘는 그녀들의 흘러넘치는 열정에 다시 한번 써니는 전율한다.
써니는 잔디를 스치는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든다. 낮은 담장 넘어로 꽃다발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이의 손이다. 써니는 그를 놀래키기 위해 살금 살금 다가간다. 순간, 그는 담장 너머로 얼굴을 들어내며, 가슴에 안고 있던 꽃다발을 내민다. 놀라 크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써니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얗게 머리 푼 억새 다발과 자주색 싸리꽃, 비슷한 알갱이가 촘촘히 박힌 산꽃들의 다발이다.
써니는 꽃다발을 유리 꽃병에 가지런히 담아 까페 입구에 놓는다. 오늘 하루, 이 야생 꽃다발 덕분에, 북 까페 안엔 은은하게 야생산 향기가 고이겠군. 써니는 빛나는 하루가 설레인다. 향을 깊이 들이 마쉬며, 그이와 함께 말없이 창밖을 내다본다. 생명력, 정적인 순간에도 모든 것은 생명력이 넘치는구나. 써니는 생각한다. ‘써니의 집’, 그 공간에 함께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생명의 리듬감이 옮아오는 것을 느끼게 되리라. 리듬감의 전염. 이것이 북 까페 ‘써니의 집’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써니는 이곳에서 따로 또 같이, 써니의 생명력을 다해 후련히 살다, 홀연히 사라지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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